복잡한 투표 제도와 빈부격차가 샌더스를 버렸다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6.05.20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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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과 민주당의 대선 후보는 사실상 도널드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으로 좁혀지고 있다. 두 후보는 이제 곧 대의원 '매직넘버'에 도달할 예정이다. 트럼프는 62명,  클린턴은 89명만 대의원을 더 얻으면 각 당의 대의원 과반수(공화 1237명, 민주 2383명)를 확보해 대선 후보로 결정된다. 

 

트럼프는 공화당의 경쟁 후보들이 모두 사퇴해 공화당의 유일한 대선 주자로 홀로 달리는 중이다. 경선이 남은 주들에서도 지지율이 높아 매직넘버를 무난히 달성할 전망이다. 클린턴은 완주를 다짐한 버니 샌더스가 경쟁자로 나서고 있지만 '힐러리 대세'로 판세는 굳어졌다. 힐러리의 누적 대의원 수는 2294명이지만 샌더스는 1523명을 얻고 있다.

 

4월19일, 뉴욕에서 패배한 샌더스는 "후보자 지명을 받는 것은 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이야기"라며 완주와 별개로 패배를 내비치는 발언을 했다. 동시에 그가 강조한 것은 선거 제도의 복잡성, 그리고 그로 인해 빈곤층이 투표층에 가기 어려운 현실적인 문제들이었다. 

 

 

 

뉴욕에서 열린 민주당과 공화당의 예비 선거. 민주당 후보에게 뉴욕은 247명의 대의원과 44명의 슈퍼대의원을 지닌 '목장'과 다름 없는 곳인데, 이곳에서 클린턴은 약 58%의 득표율을 기록해 42%를 기록한 샌더스를 제쳤다. 이 시점에서 클린턴의 대의원 수는 1428명, 샌더스의 대의원 수는 1153명인데 슈퍼대의원 715명 중 500명 이상이 클린턴을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격차는 훨씬 크고 사실상 게임이 끝난 셈이다.

 

 

(* 민주당의 대의원은 둘로 나뉜다. 하나는 당원 대회(코커스)나 국민 경선(오픈 프라이머리) 등 예비 경선을 통해 선택되는 '선언 대의원', 다른 하나는 선거 없이 자동으로 선택되는 '슈퍼 대의원'이다. '선언 대의원'은 민주당 당원으로 민초의 뜻을 반영하지만 슈퍼 대의원은 상원의원, 하원의원, 주지사 등 자격과 구성 면에서 잘 나타나듯이 민주당의 엘리트 집단(Establishment)을 대변한다) 

 

샌더스는 뉴욕에서 선거제도를 문제 삼았다. 뉴욕 주 선거 규칙을 보자. 실제로 선거의 복잡함이 샌더스를 방해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뉴욕 주에서는 4월19일에 실시되는 예비 선거를 두고 먼저 유권자가 민주당원 또는 공화당원 중 하나에 등록을 해야한다. 등록일은 지난해 10월9일. 그리고 올해 3월25일까지 유권자 등록을 마쳐야 투표를 할 수 있다. 

 

이런 예비 선거의 규칙은 주마다 다르다. 어떤 주는 선거일까지 유권자 등록을 받는 곳도 있고 민주당원 뿐만 아니라 무당파가 민주당 후보에 투표해도 상관없는 주도 있다. 올해 들어서 샌더스 바람이 불며 무당파의 정치적 관심, 그리고 투표를 이끌었지만 뉴욕에서 당원으로 등록해야 할 작년 10월 시점으로 돌아가보면 그런 바람은 없었다. 결국 올해 분 바람에 뉴욕 주에 거주하는 무당파는 당원 등록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투표를 할 수 없었고 그런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복잡한 제도도 문제지만  뉴욕 주 선거관리위원회의 부실함도 요즘 비판 받는 중이다. 뉴욕시의 경우 브루클린 지역을 중심으로 약 12​만5000명의 민주당원 이름이 유권자 명단에서 실수로 삭제됐고 이들은 투표를 할 수 없었다. 뉴욕 주 법무장관과 뉴욕시 감사는 이번 선관위의 실책에 대해 조사하겠다고 말했고 뉴욕주 선관위는 브루클린 지역 책임자에게 정직 처분을 내렸다. 유권자 명단에서 이름 삭제가 의도적으로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도 조사가 이뤄질 예정이지만, 이미 끝난 일이라 샌더스 진영에서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샌더스는 이런 가운데 본격적으로 미국의 격차와 투표의 상관관계를 지적하는 중이다. 미국 NBC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선진국 중 최저 수준의 투표율을 기록하고 있다. 이번 선거 활동에서 우리는 저소득층의 정치 참여를 유도한다는 점에서 일정 부분 성공을 거두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지난번 선거(2014년 중간 선거)에서는 무려 저소득층의 80%가 투표하지 않았다. 이것은 미국이 안고있는 큰 문제다"고 말했다. 저소득층은 샌더스의 지지 기반이다. 

 

미국 사회에서도 격차는 커다란 사회 문제로 자리잡았다. 격차를 시정하기 위해 저소득층이 직접 투표로 바로잡는다? 현실로 이루어진다면 민주주의의 큰 원칙을 완성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겠지만 그런 그림은 이상적이다. 현실에서 수많은 미국의 저소득층은 경제적 이유로 투표장을 외면하고 있다. 

 

미국 통계국의 조사에 따르면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연소득 2만달러 이하의 유권자는 약 48%만이 투표를 했다. 반면 연소득 7만5000달러 이상 유권자의 투표율은 78%였다. 이 해 미국 내 연간 소득 2만 달러 이하의 유권자는 약 1430만 명이었는데 유권자 등록을 한 사람은 약 890만명이었고 실제로 투표한 사람은 약 680만명이었다. 투표 의사를 내비치며 등록을 했더라도 사정상 투표를 하지 못한 유권자가 200만명 이상이라는 얘기다. 

 

연소득 2만 달러 이하의 미국 유권자 가운데는 적지 않은 숫자가 투잡 이상을 뛰고 있는 점은 투표율 하락과 직접 연결된다. 미국의 대선 투표일은 보통 화요일인데, 우리와 달리 임시공휴일로 지정되지 않는다. 부유층이 사는 지역일수록 투표소의 준비가 잘 돼 있는 점도 눈여겨 볼 일이다. 뉴욕대 로스쿨의 브레넌 사법센터가 메릴랜드, 플로리다, 사우스캐롤라이나 등 3개 주를 조사했는데 소득이 적은 소수 민족이 사는 구역일 경우 투표소 직원이나 투표 장비 등의 숫자가 부족했다. 이 지역 유권자들은 다른 지역보다 대기 시간이 훨씬 길었다.

 

결국 이런 이론대로라면 격차가 큰 지역일수록 힐러리가 유리하고 샌더스가 불리하다는 가설을 세울 수 있다. 실제로 이번 민주당 경선에는 격차의 법칙이 작동됐다. 미국에서 격차가 심하다는 17개 주 중 무려 16개 주에서 클린턴이 승리를 거뒀다. 반면 최근 월스트리트저널과 NBC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응 클린턴을 호의적으로 보지 않는다고 답한 응답자가 56%로 부정적 의견이 절반을 넘겼지만 샌더스는 고작 36%에 불과했다. 샌더스에 대한 높은 호감이 경선 결과로 좀처럼 연결되지 않는다는 얘기이고 선거 제도의 복잡함과 유권자의 격차가 기여하는 바가 있다는 뜻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미국보다 한국이 격차에 따른 투표율 편차가 더 크게 나타난다는 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회원국의 소득 상위 20%와 하위 20% 투표율 격차는 평균 13%p 정도다. 반면 한국은 이 격차가 29%p까지 벌어진다. 미국은 23%p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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