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팔마스에 온 한국인들, 시간 갈수록 역할 부각되고 있다”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6.05.23 19:12
  • 호수 1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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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원양어선 선원들 스페인 라스팔마스 정착 50주년…마누엘 비달 한-스페인 해양수산협력센터 자문위원 인터뷰

서아프리카에 위치한 스페인 카나리아 제도의 중심지 라스팔마스. 유럽과 아프리카, 그리고 아메리카 대륙의 허브라고 할 수 있는 해양·수산·물류의 전략적 요충지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기 전 선박을 수리한 곳이 바로 여기다. 1966년 경제적으로 어렵던 시절 돈을 벌기 위해 이역만리 바다로 나간 한국 원양어선이 어업 기지로 삼아 정박한 곳이기도 하다. 

 

한국인 선원들이 라스팔마스에 정착한 지 올해로 50주년을 맞았다. 1970~80년대 수산업계가 활황일 때는 한국 국적 선사가 40곳이 넘었다. 그만큼 많은 외화를 벌어 고국으로 송금했다. 1966년부터 20여 년간 벌어들인 외화가 8억7000만 달러(약 1조362억원)에 이른다. 1970년대 초반 독일에 파견됐던 광부와 간호사 2만여 명이 15년 동안 고국에 송금한 액수와 비슷하다. 라스팔마스의 한국인 선원들이 경제역군으로서 역할을 톡톡히 한 것이다.

 

이처럼 반백 년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지녔지만 그동안 파독 광부나 간호사만큼 국내에서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5월19일 오전 서울시 서초동에 위치한 아리랑국제방송 로비에서 만난 마누엘 비달(Manuel F. Vidal) 한-스페인 해양수산협력센터 자문위원은 “라스팔마스에 온 한국인들이 그만큼 잘 정착하고 생활했기 때문이다”며 “시간이 갈수록 언론의 조명을 받고 또 그 역할이 부각되고 있다”고 밝혔다.

 

“라스팔마스 한인 사회는 정말 잘 운영되고 있다. 50주년을 맞아 기념행사가 많이 열릴 예정이다. 9월에만 대전시립무용단 40여 명이 라스팔마스에서 공연을 갖고, 문화 행사와 연계한 해양통상신기술포럼이 열린다. 2년에 한 번씩 라스팔마스 어머니회에서 한국음식으로 바자회를 여는데 입장료 전액을 불우이웃돕기에 쓴다. 상당히 인기가 높은 행사다. 또 해마다 11월이면 태권도·합기도 시범대회가 열린다. 여기 입장료 역시 불우이웃돕기에 쓰인다.”

 

 

 

“스페인, 한국과의 협력 희망하고 있다”

 

국가언론인상을 수상한 기자 출신의 마누엘 비달 위원은 1995년부터 2012년까지 라스팔마스 항만청에서 공보부장으로 일했다. 기업사회환원부서 책임자 역할을 맡기도 한 그는 선박회사, 철강·수리 중소기업협회, 벙커링 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언론 컨설턴트로 활약했다. 2013년 9월말 설립된 한-스페인 해양수산협력센터 자문위원을 맡게 된 것도 이러한 전문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과 라스팔마스 국립대가 함께 설립한 한-스페인 해양수산협력센터는 한국 기업의 아프리카 진출을 지원하고 있다.

 

마누엘 비달 위원의 한국 방문은 이번이 다섯 번째다. 한국인 아내 김길선씨와 결혼할 때 처음 한국을 찾았다. 김씨는 라스팔마스 한국학교에서 교장을 지냈다. 지금도 교사로 활동 중이다. 이후 아내가 임신했을 때, 딸 수아가 세 살 때, 장인이 돌아가셨을 때 한국에 왔다. 이번에는 한국국제교류재단에서 마련한 세계 언론인 초청 행사에 초대를 받았다. 그는 “라스팔마스 공관에서 영광스럽게도 초청을 했다. 라스팔마스 공관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외교 영사관 중 하나다. 스페인 대사관이 들어서기 전에 라스팔라스 영사관이 먼저 설립됐다”고 설명했다.

 

“라스팔마스에서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는 상당히 좋다. 보통 해양수산 관계자들의 이미지는 그리 좋지 않다. 그렇지만 한국인은 적응을 잘해서 지금은 현지인과 다를 바 없다. 유럽에서 제일 중요한 한인 사회 중 하나가 바로 라스팔마스다. 유럽에서 태권도 학교가 제일 먼저 세워진 곳도 여기다.”

 

한국 해양수산의 발전을 가까이서 지켜봐온 마누엘 비달 위원은 “스페인은 한국과의 협력을 희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통적인 해양수산산업은 하락 추세다”며 “해양수산 분야도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 돌파구를 제3세계인 아프리카에서 찾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아프리카 국가를 도울 필요가 있다. 이미 중국은 아프리카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은 다른 국가가 가지지 못한 해양수산 분야의 발달된 지식을 갖고 있다. 이번에도 해양수산부 관계자와 라스팔마스 세계양식대학원과 한국의 부경대가 교류 협력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내는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의 선진 해양수산 기술로 아프리카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그 가교 역할을 라스팔마스가 할 수 있다.”

 

“한국어 배우고 한국문화 알려는 현지인 늘어”

 

지난해 11월초 라스팔마스 공동묘지에 있던 한국 선원들의 유골 4기가 국내로 돌아와 화제가 됐다. 해양수산부가 추진 중인 ‘원양선원 해외묘지관리 및 이장 지원 사업’의 일환이었다. 2014년부터 외국에 묻힌 유골을 유가족이 원하며 국내로 이송하는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1970년대 산업역군으로 대서양을 누비다 순직한 선원들이 40여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것이다.

“예전에는 유족도 그렇고 선사도 그렇고 (유골을) 본국으로 송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 시스템이 없었다. 하지만 라스팔마스의 경우 한국원양산업협회에서 1970년대부터 한인 묘지를 만들어 관리를 해왔다. 선원위령탑과 납골당 관리가 잘되고 있다. 정부와 한인 사회 차원에서 관리를 잘해 항상 정리정돈이 잘돼 있다.”

 

아내 김길선씨, 딸 수아와 함께 한국을 방문한 마누엘 비달 위원은 “한국 정부가 라스팔마스 한인 사회에 더욱더 신경을 써줬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라스팔마스의 경우 일찌감치 한국학교가 들어섰다. 1976년 토요학교로 문을 연 뒤 지금까지 우리말과 한국문화를 가르치고 있다. 그는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문화를 알려는 현지인이 늘고 있다”며 “70명 학생 중 절반인 35명이 현지인이다”고 밝혔다. 끝으로 한-스페인 해양수산협력센터의 역할에 대한 기대감을 재차 밝혔다. 마누엘 비달 위원은 “앞으로 많은 기회가 찾아올 것이다”며 “이 기회를 구체적으로 잡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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