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유엔 사무총장 8명, 그들의 퇴임 뒤의 삶
  • 김경민 기자 (kkim@sisapress.com)
  • 승인 2016.05.25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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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은 5월24일 “유엔 사무총장의 퇴임 직후 정부직 진출을 제한하는 결의를 공식 채택했던 사실이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유엔은 창설 직후인 1946년 1월24일 제1차 총회에서 ‘유엔 회원국은 사무총장의 퇴임 직후 어떠한 정부직도 제공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무총장 자신도 그러한 (정부) 직책을 수락하는 것을 삼가야 한다’는 권고를 담은 ‘결의 11(Ⅰ)호’를 채택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대권 잠룡’으로 거론되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게 영향을 줄만한 문구다.

 

 

 

그럼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전의 역대 유엔 사무총장들은 퇴임 이후 어떤 행보를 보였을까. 반 사무총장 이전의 7명의 유엔 사무총장들의 퇴임 이후를 보니, 3명은 정계에 복귀한 것으로 드러났다. 퇴임 이후 5년 만에 고국의 대선에 출마해 대통령직을 수행하기도 했다. 때문에 유엔 총회에서 채택됐던 ‘유엔 사무총장의 퇴임 직후 정부직 진출을 제한 결의’는 사실상 큰 효력을 갖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정계로 진출하지 않은 퇴임 사무총장 4명 중 한 명은 유엔사무총장 재임기간 중 사망을 했다. 나머지 3명은 퇴임 이후 고국의 정계 대신 시민단체나 정책연구소 등에서 활동하며 국제무대에서 여전히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반 사무총장은 역대 8번째 사무총장으로 지난 2006년 첫 임기를 시작해 2011년 재임됐다. 그의 임기는 올해 말 종료된다. 유엔 사무총장은 후보자들이 거부권을 가지고 있는 안보리 5개 상임의사국의 추천을 받아 유엔총회에서 지명된다. 

 



1. 트뤼그베 브단 리(1896~1968)│재임기간 1946~53│퇴임 후 정계 복귀

노르웨이 정치인 트뤼그베 리는 “유엔 사무총장 자리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직업”이라는 말을 남겼다. 미·소 냉전시대였던 1946년 초대 유엔 사무총장으로 선출된 그는 1950년 재임된 후 1953년 소련의 압박으로 중도 퇴임하기 전까지 사무총장직을 수행했다. 


그는 유엔을 떠난 뒤에도 활발하게 정치에 몸을 담았다. 사무총장 퇴임 2년 뒤부터는 노르웨이 오슬로․아케르스후스 주지사(1955~1963)를 지냈다. 이후 산업부 장관(1963~1964), 통산선박장관(1964~1968)을 거치며 정치원로로 꾸준히 목소리를 냈다.
 

리 전 사무총장은 퇴임 직후인 1954년 유엔에서의 7년간의 기록을 담은 저서 <평화를 위하여(In the Cause of Peace: Seven Years with the United Nations)>를 발간해 냉전시대 초강대국 간의 경쟁구도에서 유엔이 가진 책무와 제한된 실권 사이의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2. 다그 함마르셸드(1905~1961)│재임기간 1953–61│


스웨덴 외교관 출신 다그 함마르셸드는 역대 최연소 사무총장이었다. 1961년 사무총장으로 임무를 수행하던 중 비행기 사고로 순직하며 불행하게 생을 마감했지만, 지금까지도 그를 두고 ‘최고의 유엔 사무총장’으로 꼽는다.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은 생전의 함마르셸드를 두고 “우리 시대 위대한 정치가”라고 찬사를 보냈다. 사망 직후 그는 1961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3. 우 탄트(1909~1974)│재임기간 1961–71│


미얀마 외교관 출신인 우 탄트는 비유럽권 출신의 최초 유엔 사무총장으로 지명된 인물이다. 1961년 초임에 이어 1966년 재임에 성공했다. 미국과 소련을 위시한 강대국들 사이에서 적절하게 균형을 잡으며 세계 평화에 일조했다는 평을 받는다. 그는 유엔총회 퇴임 연설에서 “주요 직책에서 물러나니 이제야 해방감을 느끼며 엄청난 안도감이 몰려온다”고 말했다. 그간 느껴온 부담감이 엄청 컸음을 암시했다. 


사무총장에서 물러난 뒤 미국에 자리한 아들라이 스티븐슨 국제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있으면서 정책 개발에 힘썼다. 그는 정계에 진출하지 않고 유엔 사무총장 시절 골몰했던 세계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고자 정책연구자로서의 길을 걸었다.

4. 쿠르트 발트하임(1918~2007)│재임기간 1972–81│퇴임 후 정계 복귀│


외교관 출신의 쿠르트 발트하임은 사무총장에서 물러난 뒤 고국인 오스트리아로 돌아가 대통령에 당선(1986~1992)됐다. 퇴임 후 5년이 지난 뒤였다. 그는 유엔 사무총장에 임명되기 직전인 1971년 이미 한 번 대권에 도전했다 고배를 마신 전력이 있었다.
일각에서 ‘최악의 사무총장’으로 꼽는 발트하임은 유엔을 떠난 뒤 대통령 선거 운동 중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협력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역대 사무총장 가운데 논란의 중심에 가장 많이 선 인물이기도 했다.

5. 하비에르 페레스 데 게야르(1920~ )│재임기간 1982–91│퇴임 후 정계 복귀│


라틴아메리카 출신으로 첫 유엔사무총장에 임명된 하비에르 페레스 데 게야르는 1986년 재임에도 성공했다. 사무총장 초임기에는 냉전시대였고, 재임기에는 탈냉전시대를 경험했다. 사무총장에서 물러난 뒤 고국으로 돌아가 정계에 복귀한다. 1995년 페루 대통령 선거에서 페루 연합당 후보로 출마하지만 낙선했고, 이후 총리(2000~2001)를 지냈다. 2004년 프랑스 주재 페루대사관 대사로 지낸 이후 페루 정계의 원로로 남았다.

6.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1922~2016)│재임기간 1992–96│


여섯 번째 유엔사무총장에 오른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는 아프리카권 또는 아랍권으로서는 첫 유엔 사무총장에 올랐다. 그는 이전 사무총장과 달리 유엔의 ‘독립성’을 강조하며 여러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사무총장 재임에는 실패했지만, 이후에도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유지하며 비정치적 활동을 이어갔다. 프랑스어권 국가들간 협력관계를 조직·지휘하는 기관인 국제 프랑코포니 초대 사무총장(1997~2002)직을 수행했다.

7. 코피 아난(1938~ )│재임기간 1997–2006│


2001년 유엔과 노벨평화상 공동수상자로 선정된 코피 아난은 “뛰어난 중재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코피 아난은 고국으로 돌아가 정치활동을 하는 대신 2006년 사무총장에서 물러난 뒤 비영리기구를 세워 국제평화활동을 지원하고, 유엔특사로 활동하는 등 왕성하게 국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독립 비영리기구인 코피 아난 재단을 창설해 비영리 민간 활동을 지원하는 한편 2007년 케냐 사태, 2012년 시리아 사태 등에 특사로 파견돼 분쟁을 해결하고자 중립자적인 입장에서 노력을 기울였다. 2011년엔 선거·민주주의·안보 고위 세계위원회(Global Commission on Elections, Democracy and Security)에 의장으로 취임해 비정치적이고 비정파적인 행보를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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