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가 ‘암살’을 택한 이유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6.05.26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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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의 탈레반 지도자 제거 작전, 득일까 실일까

 

미국의 정보기관은 아프가니스탄 반군 '탈레반'의 최고 지도자인 아후타루 만수르에 주목했다. 그가 이란에 있는 가족을 방문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난 이후였다. 과연 만수르가 무엇을 타고, 어떤 길을 택해 이란 국경을 넘어 파키스탄으로 돌아갈 지를 알기 위해 마냥 기다려야 했다. 공습을 하기 위해서였다.

N40 국도. 이 지역은 미국의 드론(무인기)이 비행하지 않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만수르는 이란과 파키스탄 발루치스탄주의 퀘타를 오갈 때 이 길을 종종 이용해 왔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미국 정보기관은 갖은 방법을 동원해 만수르를 추적했다. 5월21일 흰색 토요타 코롤라 승용차를 탄 만수르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이 국도를 달리고 있었다.

미군은 최적의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는 드론을 아프간 국경 너머로 날렸다. 파키스탄의 레이더망을 피해 저공비행을 하던 드론은 목표물의 근처에 다다르자 승용차를 조준했다. 그리고 주변에 장애가 될 만한 다른 차량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 헬파이어 미사일을 발사했다. 그렇게 표적은 ‘마무리’됐다. '마무리'는 드론에 의한 살인을 의미하는 은어다. 폭격 현장은 퀘타에 훨씬 못 미친 지점이었는데 아무래도 인구 밀도가 높은 퀘타라면 공격하기가 어렵기 때문이었다. 

만수르 제거 작전은 오바마 정부의 아프간 정책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고 있다. 오바마 정부는 그동안 아프간에서 평화 협상 추진과 군사 행동의 강화를 두고 저울질해 왔다. 동시에 이번 암살은 미국이 필요하다면 사전 협의 없이 파키스탄 영토에서 행동을 일으킬 수 있다는, 파키스탄 정부를 향한 메시지이기도 했다. 드론에 의한 공습이 끝난 뒤에서야 상황을 알게 된 파키스탄 정부는 당황했다. 당장 파키스탄의 칸 내무 장관은 5월24일, 이번 미국의 공격을 두고 "미국과의 관계에 심각한 영향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유엔 헌장과 국제법을 완전히 위반하고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보통 미국 정부는 이런 중요한 작전을 할 때 표적을 상시적으로 감시하기 위해 드론을 여러 대 상공에 띄운다. 하지만 만수르를 감시하고 있던 미 중앙정보국(CIA)의 드론은 단 한 대도 없었다. 그가 이동한 경로는 CIA의 드론이 활동하는 지역에서 벗어나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작전을 수행한 쪽은 CIA가 아닌 국방부였다.

원래 오바마 대통령은 아프간의 안정을 위해 만수르를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려고 했지만 최근 들어 암살로 방향을 틀었다. 오바마 행정부 내에는 만수르가 이전 탈레반 지도자이자 창립자인 물라 무하마드 오마르(2013년 사망)보다 평화 협상 자리로 끌어내기가 쉬운 상대일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 그러나 탈레반의 간부들 중 일부가 만수르를 최고지도자로 인정하는 것을 거부하면서 탈레반은 분열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되자 만수르의 장악력도 의심받게 됐다. 의심받는 지도자가 협상이라는 카드를 선택하기란 쉽지 않았다.

특히 4월19일의 사건이 미국을 움직이게 만든 결정타였다. 4월19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는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카불 중심가에서 정보기관을 노린 탈레반 반군의 폭탄 테러와 총격전으로 60명 이상이 사망하고 수백 명이 부상을 당했다. 미국은 이 공격을 통해 만수르가 협상보다는 군사 노선을 택했다고 확신하게 됐고 결국 '제거'라는 방아쇠를 당겼다. 

갑자기 하늘에서 나타난 여러 대의 드론, 그리고 발사된 헬파이어 미사일. 미사일은 정확히 차량을 공격했고 이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하얀색 차량은 까맣게 변했다. 까맣게 탄 시체. 파키스탄 정부는 DNA검사를 통해 이 사람이 만수르임을 확인해줬다. 지난 해 탈레반 최고 지도자로 세상에 자신을 알렸던 만수르의 최후였다. 

탈레반은 만수르의 사망을 인정했다. 그리고 곧바로 새 지도자를 뽑았다. 5월25일 새롭게 탈레반의 수장이 된 사람은 물라 하이바툴라 아쿤드자다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탈레반 자문위원회인 '슈라'의 멤버 전원이 아쿤드자다에게 충성을 맹세했고 새로운 성전의 길에 복종할 것을 다짐했다고 한다. 2015년 유엔 보고서에서 아쿤드자다가 등장하는데 1996년~2001년 아프가니스탄을 탈레반이 실제로 지배하고 있던 시기에 그는 샤리아(이슬람법)에 근거한 사법부 장관을 역임한 인물로 알려지고 있다. 

60세 정도로 아프간의 40% 정도를 차지하는 최대 민족인 파슈툰족 출신인 것으로 전해진다. 40대부터 대부분의 삶을 아프가니스탄에서 보냈기 때문에 국외로 나온 흔적은 거의 없다고 한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그가 강경파로 분류된다는 점이다. 군사 지도자보다는 종교 지도자 유형이라서 더욱 강경한 노선을 취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아프간의 평화를 위해 암살을 택한 오바마가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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