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 줄 ‘오바마’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셨던 ‘일본’
  • 이규석 동북아국제문제연구소 소장 ()
  • 승인 2016.05.30 13:14
  • 호수 138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원폭투하 사과 원했던 日…끝내 고개 숙이지 않은 美

오바마 미 대통령이 2016년 5월27일 히로시마를 방문한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과연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를 방문한 숨은 의도(노림수)가 무엇인가에 대한 설왕설래가 계속되고 있다. 

 

아베 총리를 비롯한 일본 정부 관계자들은, 원폭 투하 71년 만에 처음으로 피폭지(被爆地)를 방문한 미 대통령에게 매우 환영한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나아가 일본인들은 이번 오바마 방일을 기회로, 일본인들의 마음속 깊이 새겨져 있는 ‘미국에 대한 섭섭함’을 풀 수도 있다는 기대감을 표출하기도 했다. 즉 히로시마(?島), 나가사키(長崎)에의 원폭투하에 대한 미국의 사과를 받고 싶어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알려진 바대로 오바마는 원폭투하에 대한 사과를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무엇 때문에 오바마는 히로시마에 갔던 것일까. 오바마의 의도는  3가지 정도로 분석해볼 수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5월27일 일본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아베 신조 총리에게 원폭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를 표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日 히로시마 방문 속내

첫째, 원폭투하에 대한 시비(是非)의 판단을 재고해보겠다는 뜻이 아니다. 즉 사죄의 의미가 아니라, 미-일 공통의 미래에 대한 전망을 밝게 하기 위해 추도의 의미로 히로시마를 방문했다는 것이다. 

 

둘째, 오바마는 이번 방문을 기회로 ‘핵 없는 세계’ 실현의 메시지를 더욱 확실히 띄우겠다는 심사였다. 즉 핵 없는 세계를 향한 결의를 재확인하겠다는 오바마의 ‘노림수’였다. 오바마는 2009년 4월 체코 프라하에서 ‘핵 없는 세계’를 향한 신선한 메시지를 토해냈고, 그에 대한 평가로 그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그 후 핵 없는 세계를 위해 ‘핵 감축’으로 나아가는 단계는 정체됐고, ‘핵 폐절’은 요원한 피안(彼岸)의 과제처럼 인식되기조차 했다.  

 

따라서 퇴임을 앞둔 오바마로선, ‘핵 없는 세상’의 비전 제시로 받게 된 ‘노벨상 배지’를 마지막으로 히로시마에서 더 한 번 선전해보고 싶은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명박(MB) 전 대통령이 퇴임을 앞두고 독도에 가서 ‘퍼포먼스’를 펼치고 일정한 결과를 가져온 것과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셋째, 미-일 관계를 더욱 진전시키고 싶어 하는 게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의 또 하나의 목적이었다. 미-일 관계를 심화시키고 강고한 유대를 형성하는 게, 남중국해를 통해 태평양 진출을 노리는 중국과, 중국에 이은 미국의 ‘또 하나의 적국(敵國)’ 러시아를 견제하는 데 있어 미국으로선 불가피한 전략과제다.

 

그러면 오바마의 ‘핵 없는 세계’를 향한 메시지에 세계 각국은 어느 정도 호응해왔고, 지금 현재의 주요 관련국들의 핵무기 보유 상황은 어떤지 대략 살펴보자. 지금 세계의 핵탄두 수는 1만5850개 정도로 집계되고 있다. 이 중 NPT(핵확산금지조약)상의 핵보유국인 미국이 7260개, 러시아가 7500개, 영국이 225개, 프랑스가 300개, 중국이 260개를 보유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사실상의 핵보유국인 이스라엘이 80개, 인도가 90~110개, 파키스탄이 100~120개, 북한이 6~8개의 핵탄두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를 볼 때, 핵보유국들의 핵감축은 이뤄지지 않고 있고, 이란은 핵협상이 타결됐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전략적으로 모호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북한은 사실상 핵을 보유하고 있어 핵무기를 둘러싼 국제 환경은 더욱 험악해져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북한의 ‘사실상의 핵보유’로 인해 NPT는 그 기능이 더욱 약화됐다. 따라서 핵무기 감축과 ‘핵 폐절’에의 노력(?)은 허사가 되고 있고, 핵 없는 세계를 향한 진행은 정체 상태다. 북한의 핵개발, 중국의 핵전력 증강, 이란과의 핵합의의 모호성 등으로 핵무기를 둘러싼 대립이 더욱 격화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5월27일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을 방문, 원폭 생존자 모리 시게아키와 포옹하고 있다.

 

오바마, 노벨상 수상 선전하고 싶었나

 

이렇게 핵무기를 둘러싼 국제환경이 험악해져 있는 상황에서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이 이뤄졌다. 그러나 2009년 4월 ‘프라하 선언’에 이어, 그 연장선상에서 나온 2016년 5월의 이번 ‘히로시마 스피치’는 오바마 개인 수준의 소감을 말한 연설로서 국제사회에 큰 임팩트는 주지 못했을 것이라는 게 외교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프라하에 이어 이번 히로시마에서도 핵 없는 세계를 위한 오바마의 재천명이 있었지만 국제환경은 그다지 녹록지가 않다. 과연 오바마가 ‘핵 없는 세계’와 ‘핵폐절’을 향한 험난한 가시밭길을 헤쳐 갈 나침반을 제시해놓고 있는지 의문이다. 

 

그런데 핵 없는 세계를 처음 주창한 사람은 클린턴 정권 때 국방장관을 지낸 윌리엄 페리다. 이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은, 1853년 일본의 막부 말기(幕末) 때 흑선(黑船)을 타고 에도만(江戶灣)의 우라가(浦賀)에 들이닥쳐 결국 일본의 문호를 개방하게 만든 그 페리 제독의 후손이다. 클린턴 정권에서 국방장관을 지낸 윌리엄 페리는 그 후로도 핵군축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2007년에는 핵폐절을 주장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흐름을 타고 2009년 4월 오바마는 체코 프라하에서 ‘핵 없는 세계’를 목표로 하겠다는 센세이셔널한 선언을 해 세계를 놀라게 한 것이다. 오바마에게 대망의 노벨평화상을 안긴 체코 ‘프라하 선언’이었다. 이 오바마의 프라하 선언의 기반이 된 것은 물론 페리 등의 논문이다. 

 

지금도 미 안전보장 분야의 중진으로 대접받고 있는 페리는 이번에 히로시마를 찾은 오바마 대통령에게도 진지한 충고를 마다하지 않았었다. 페리는 오바마가 이번 히로시마 방문길에서 핵군축을 향한 구체적인 제안을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분명한 입장을 밝혔었다.   

 

한편, 오바마는 이번 일본 방문에서 또 하나의 숙제를 당면하게 됐다. 바로 미-일 간 ‘역사인식의 차이’다. 오바마로서는, 미국 정치인들과 일본 정치인들 사이, 그리고 양국 국민들 사이에 그대로 노정돼 있는 이 차이를 앞으로 어떻게 메워 나가야 할지 난감하기까지 할 것이다.  

 

오바마는 이번 히로시마 방문에서 원폭투하에 대해 사죄는 없고 원폭피해자들에 대한 추도만이 있을 뿐이라며 당초 생각대로 행동했지만, 일본 측에선 되도록 사과까지 받았으면 하고 내심 기대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는 히로시마가 세계 최초 유일의 피폭지로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고 하는 일본인들의 피해인식에서 비롯되고 있는 현상이다.

 

그래서 일본 측은 이번 오바마 방문을 계기로 미국 측의 사과를 받아내려 했지만, 진주만을 기습당한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는 적반하장인지라 사과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대신 오바마는 전쟁의 비참함에 대해 언급하며 전쟁은 서로가 서로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므로 예방?방지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취지의 말로써 ‘귀문(鬼門·꺼리는 부분)’을 비켜갔다.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도 “만일 원폭투하가 없었다면 일본 본토에서 더 많이 피를 흘리는 전투가 계속됐을 것”이라며, 원폭투하는 정당했고 따라서 미국은 사과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었다.

 

어쨌든 오바마는 이번 히로시마 방문으로 2가지 과제를 떠안고 있는 양상이다. 핵군축과 ‘핵 없는 세계’를 향한 구체적인 제안을 마련하기 위해 계속 노력해야 하는 일과, 역사인식에 있어 미-일 간의 차이를 메울 수 있는 방도를 찾는 일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