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당신이 유일한 통합 리더”, 고심하던 반 총장 출마 결심
  • 김지영 기자 ()
  • 승인 2016.05.30 15:49
  • 호수 1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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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장 취임 이후 국내 정치 자문해온 K씨 등 확인, “지인들의 한결같은 권유에 달라졌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대선출마 시사(示唆).’

 


한국 언론들이 5월25일, 일제히 톱뉴스로 반 총장의 2017년 대선 출마 관련 소식을 전했다. 그의 국제적 위상 때문에 외신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 즉시 한국의 정치권은 요동쳤고 여진(餘震)은 계속 이어지는 중이다. 사안의 성격상 ‘여진’은 쓰나미가 돼 한국 정치판을 덮칠 수도 있다.

‘출마 시사’라는 제목은 한국을 방문 중인 반 총장이 “유엔 사무총장에서 돌아오면 국민으로서의 역할을 생각하겠다”고 밝힌 데서 비롯한다. 출마 선언이 아닌 ‘시사’임에도 언론이 주목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무엇보다 오랜 기간 차기 한국 대통령 후보군을 대상으로 한 각종 여론조사기관의 지지율 조사에서 선두를 달리던 반 총장이 처음으로 출마 가능성을 내비쳤기 때문이다. ‘반기문 대망론(待望論·기다리고 바란다)’에도 불구하고 반 총장은 단 한 번도 ‘5·25 발언에 대한 해석’을 낳을 수 있는 언급을 한 적이 없었다. 그저 어떤 경우, 어떤 자리에서도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말을 결코 입에 담지 않았고, 이런 게 대선 출마를 점치게 하는 단초였을 따름이다. 그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임기 중 총장으로서 소임을 다할 것” “국내 정치 관심 없다” “여론조사에 포함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등 원칙론만 표명해왔다. 이처럼 반 총장이 핵심을 피해가는 데 답답해한 언론은 반 총장을 가리켜 ‘기름뱀장어(까다로운 질문을 잘 빠져나간다는 의미)’ ‘반반(半半·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다)’이란 별칭까지 붙였다. 언론이 비아냥거림 내지 조롱하듯 질문을 던져도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이랬던 반 총장이 의중의 일단을 공개한 것이다. 게다가 발언 내용이나 수위뿐 아니라 발언 장소, 시점, 정국 상황 등 하나하나가 의미를 더하고 있다. 발언 자리는 제주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국 중견언론인들의 모임인 관훈클럽 주최 간담회다. 허투루 말할 상대가 아니라는 말이다. 동시에 신문·방송·인터넷 등 언론 매체를 통해 가장 확실하게, 가장 강력하게 메시지를 파급시킬 장소라는 얘기다. 발언이 나온 시점은 4월 총선에서 괴멸(壞滅)한 여권이 중심을 잃고 흔들리고, 차기 대권주자에 목말라 하는 때다. 

이럴 즈음 반 총장이 엄청난 파고와 파장의 동심원(同心圓)을 그리게 될 ‘출마’라는 돌을 던졌다. 반기문 대망론에 대해선 “자생적(自生的)으로 나온 대망론”이라며 “헛되게 살지 않았구나 하는 자부심을 갖게 된다”고 했다. 특히 “(사무총장 임기가 종료된 후) 내년 1월1일이 되면 한국 사람이 되니까 그때 결심하겠다”고 한 대목은 결정적이었다. “누군가 대통합 선언을 하고 솔선수범해야” “미국 대선후보도 76세” “친박 후보 운운하는데 기가 막힌다”는 등은 자신의 강점을 부각시키고 장애가 될 요소를 제거하기 위한 발언으로 해석하기에 충분했다. 통합은 자신이 적임자라는 점을, 미국 대선 후보 나이는 자신의 나이(내년에 73세)가 하등 문제될 게 없다는 것을, ‘친박’ 부정은 자신이 특정 계파를 업고 나서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시사저널은 반 총장의 5월25일 발언이 나오기까지의 배경과 2017년 대선의 최대 관심사로 떠오른 ‘반기문 출마’가 현실화될 지 등을 점검했다. 이 과정에서 만난 언론계 출신의 정치평론가 K씨와 재미 기업인 H씨 등의 확인이 주효했다. K씨는 반 총장이 유엔 총장에 취임한 이래 줄곧 국내 정치 부문을 조언해왔다. H씨는 금융·부동산 관련 사업가로서 유엔본부가 있는 미국 뉴욕 현지에서 반 총장을 돕고 있다.

 

K씨 “반 총장, 대선 출마는 ‘운명’”

“반 총장은 2017년 대선에 출마한다.” K씨는 반 총장의 출마를 단언했다.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도 했다. ‘출마가 반 총장 본인의 말이냐’는 기자의 질문엔 “일부러는 아니지만, 굳이 (이 질문엔) 답변을 하지 않겠다”면서 “출마를 말하는 게 추측만으로 가능하냐”고 반문했다. K씨는 반 총장의 이번 방한 직전에도 반 총장 발언 수위, 면담 대상 등 전반을 협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시점을 딱히 말하기는 쉽지 않으나 마음을 굳힌 것은 지난해 연말쯤으로 보면 틀리지 않다. 사실 반 총장은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최선을 다하고 명예롭게 퇴임하는 것을 소망했다. 반 총장 부인 유순택 여사와 두 따님들이 적극 이런 길을 강력히 주장했다. 또 반 총장의 멘토인 노신영·한승수 전 총리 등도 반 총장이 흙탕물을 뒤집어쓸 게 명약관화한 대선 가도에 뛰어드는 것을 걱정했다. 이렇듯 반 총장을 아끼는 이들 상당수가 부정적이었던 게 사실이다. 지난해 중반까지 한참 나돌던 ‘퇴임 후 장기 휴식 여행’ 소문도 아주 틀린 얘기는 아니다. 한국 국내 정치에 초연(超然), 일정기간 휴식을 취한 뒤 총장으로서의 경험을 살려 지구환경 보호 문제 등에 기여하는 방안 등을 심도 있게 검토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은 ‘출마 불가피’로 기울었다. 반 총장은 이런 자신의 처지를 ‘운명’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어떤 극적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반 총장의 출마는 분명하다는 K씨의 전언이다. 사무총장 임기 만료일인 올해 말까진 불필요한 시비를 차단하기 위해 공식 발표는 않겠지만 이후는 달라질 것이라 는 예고다.

2006년 12월14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취임 선서를 하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세계적 지도자의 반열에 올라선 반 총장은 연임에 성공하면서 한국의 차기 대권주자로 주목받고 있다.

 

가족·멘토들도 대선 뛰어드는 것 걱정했다. 

“많은 이들은 반 총장이 그간 어떤 경우에도 ‘출마 않겠다’는 말을 하지 않은 것을 아주 못마땅해하는데 거기엔 사연이 있다. 여러 지인들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는 미래를 단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누누이 당부했기 때문이다. 대충 요약하면 ‘반 총장 당신께서 유엔의 수장이 된다고 생각하거나 기대한 적이 있는가. 하지만 총장이 됐다. 그러니 미리 자신의 발목이나 잡을지 모를 공언을 하는 것은 현명치 않다’는 것이다. 

자신의 말을 철저히 지키는 반 총장은 이런 조언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다른 복안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모든 게 불확실한 상황에서 스스로를 옥죄는 것은 피하겠다는 판단이 ‘(대선 출마하지) 않겠다’는 말을 하지 않게 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대신 반 총장은 국내 정치에 휘말리는 것을 피하기 위해, 최소한의 잡음이라도 막기 위해 한국 정계 인사들과의 만남도 극구 자제했다. 꽤 많은 정치인들을 만난 것처럼 알려지고 있으나 헛소문이다. 당사자들로부터 섭섭하다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피했다. 국회의장단이나 정당 대표 정도는 예의상 만났다고 보면 된다. 오히려 정치와 무관한 지인들은 시간이 허락하는 한 만났다. 원체 바빠 실제 만난 이들은 얼마 되진 않는다. 

그렇다면 언제, 왜, 무엇이 출마 쪽으로 기울게 했느냐고 물을텐데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했기에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일각에선 ‘지지율 1위’가 컸을 것이라고 짐작하는데 그건 아니다. 물론 그 점이 반 총장을 ‘몰고 간’ 간접적 이유임은 분명하다. 그를 지지하는 이들이 ‘무슨 영달을 추구하라는 말이 아니다. 세계의 대통령이라는 총장을 했는데 무엇을 더 바라라고 하겠나. 하지만 한국 사회가 계층·지역의 갈등으로 고통 받고 있는데 본인이 쌓은 역량을 통합을 위해 쏟아부어야 마땅하다. 당신에 대한 지지율 1위가 괜한 게 아니다. 외교와 통일 전문가로서 당신을 기대하는 게 아니다. 통합이다. 때 묻지 않은 당신을 기대하는 것이다.
정파 놀음에 지친 국민들은 진정한 국민대통합을 실현해줄 인물을 갈구하고 있다. 그러니 일신의 안녕만 추구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는 게 요지다.”

K씨는 ‘일신의 안녕이나 추구’ 운운하는 지적이 반 총장을 자극한 측면도 없지 않다고 했다. 또한 걸핏하면 ‘고건 전 총리’에 비유하면서 권력의지가 없느니, 맷집이 없느니 하는 비아냥거림이 되레 결심을 굳히는 요인이 됐을 수 있다고 전했다. 

“반 총장은 그런 말이 나오면 ‘욕먹을 일 안 했고, 그래서 그들 말처럼 안 맞아 봤으니 맷집이 약할지 모르지’하며 귓전으로 흘려 넘기곤 했다. 그런데 누구로부터 무슨 말을 들었는지 달라졌다. 반 총장의 ‘7년 넘게 차관 자리에 있던 사람이 2급 심의관 자리인 (한승수) 유엔 총회 의장 비서실장으로 따라나섰다’는 회고는 어떤 어려움도 감내하고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다른 표현이었다.” 

K씨는 반 총장이 청와대와의 어떤 교감을 부인한 마당에 무슨 말을 덧붙이겠냐고 하면서도, 새누리당을 포함한 ‘여권’으로부터의 ‘러브콜’은 인정했다. 반 총장이 뉴욕을 떠나기 직전에도 새누리당 중진인 K의원이 찾아왔었다. 반 총장과 뉴욕 유력 한인들과의 모임을 주관하는 H씨는 “여러 사람이 반 총장에게 ‘본인의 영달이 아닌, 조국의 장래를 위해 책임을 회피해선 안 된다’고 주문했다”면서 반 총장이 연임한 이후 점차 달라진 게 사실이라고 했다. H씨는 그러나 반 총장은 ‘큰일’을 대비하기 위한 참모진용의 확대 개편 권유에 응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실제 반 총장을 직접 보좌하는 한국 외교관은 얼마 안 된다. 김원수 유엔 사무차장이 비서실장 역할을 겸하고 외교부에서 파견한 장욱진 비서관과 여직원 몇 명이 전부다. 이런 빈약한 보좌 그룹도 반 총장이 한국 정치에 휘말리지 않으려는 노력이 얼마나 절절한가를 말해주는데, 김원수 차장의 경우는 박원순 서울시장과 고교 동기동창생이어서 걸핏하면 구설수에 오른다. 하지만 성실파인 데다 자기관리가 엄격해 반 총장의 신임이 공고하다.

이렇듯 진용이나 겉모습은 대권 준비와 무관해 보인다. 하지만 국내에는 수를 헤아리기 어려운 다양한 모임들이 활동하고 있다. 1위의 지지율이 저절로 나온 게 아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많은 모임들이 반 총장 참모들의 지휘 통제와는 전혀 상관없다. 반 총장 비서실이 얼마나 되는 수의 모임이 어떻게 활동하는지 모르는 게 당연하다. 반 총장이 5월25일 “자생적으로 나온 대망론”이라고 했듯이 대개가 ‘자생적’ 단체나 모임이기 때문이다. ‘반 총장 측’이 파악하는 단체는 아주 일부다. 

한승수 전 총리가 중심이 돼 가동 중인 모임은 대중 조직과는 거리가 멀다. 싱크탱크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곳의 실무책임은 새누리당 당료 출신인 L씨가 관장하고 있다. 직능과 지역별 모임을 함께 운용하는 G포럼과 같은 단체는 많지 않다. G포럼을 통괄하는 K씨는 한 전 총리 측과도 수시로 접촉하며 정보를 교환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충북에는 이경재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반 총장과 동향인 윤진식 전 의원이 상당수 회원을 가진 조직을 정비 중이지만 나서지 않고 있다. 일반에 많이 회자된 충청포럼 등도 나서는 게 결코 도움이 안 된다는 판단 아래 물밑 움직임을 유지한다. 김경재 자유총연맹 중앙회장이나 성일종 새누리당 의원, 신영균 전 의원 등도 반 총장의 ‘국내 데뷔’와 관련해 주목되는 인물들이다.

 

정진석 새누리 대표와 ‘파이프라인’ 개설할 듯

반 총장은 방한 중 친정인 외교부 전·현 장·차관과 조찬을 가졌다. 개인적 면담을 가진 이는 노신영·한승수 전 총리와 유종하 전 외교부 장관, 박수길 대사 등이다. 반 총장은 노·한 전 총리가 미국을 방문할 때면 공항 전송을 나갈 정도로 예를 다하는 대상이다. 외교부 쪽 인물들로는 유엔대표부 대사를 지낸 김숙·박인국(한국고등교육재단 사무총장)을 비롯해 윤여철 청와대 의전비서관, 임재홍 유엔 거버넌스센터 원장, 박준우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이 망라돼 있다. 

반 총장은 그러나 공연한 잡음 발생을 저어해 정계 인물들과의 접촉은 최대한 자제하고 있는데, 다만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와는 향후 각별한 ‘파이프라인’을 개설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 총장과 동문 등의 인연을 가진 이유로 새누리당의 홍문종 의원, 김광림 정책위의장, 박진 전 의원 등이 거명되고 있으며 개별적으로 반 총장과 교분을 유지하는 의원들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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