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어바웃 아프리카] 타잔의 밀림은 아프리카 어디쯤일까
  • 이형은 I 팟캐스트 ‘올어바웃아프리카’ 진행자 ()
  • 승인 2016.06.01 14:3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형은 팟캐스트 ‘올어바웃아프리카’ 진행자

타잔이 탄생한 지 100여년이 지났다. 타잔은 드라마, 영화, 애니메이션 등으로 꾸준히 제작돼 지금까지도 전 세계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밀림의 왕자 타잔, 그의 이름을 듣는 순간 그 특유의 고함 소리, “아아아”가 귓가에 울리는 것만 같다. 어릴 적 보았던 영화 속 그의 이미지는 시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강렬하게 남아있다. 


1914년에 출간된 소설 <유인원 타잔>은 아프리카 대륙을 단 한 번도 밟아 본 적 없는 미국인 소설가 에드거 라이스 버로스(1875-1950)의 작품이다. 작가가 살았던 시대는 사회적 다윈주의가 식민제국주의와 인종주의의 정당성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했다. 사회적 다윈주의는 생물학적 진화론을 사회에 적용시킨 이론으로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것은 자연의 원리라는 주장이다. 사회적 다윈주의는 버로스에게도 영향을 미쳤고, 작품 속에 사회적 다윈주의 시각이 그대로 노출된다. 


타잔이 살고 있던 밀림은 아프리카 어디쯤이었을까.
‘흰 피부’라는 의미의 이름을 가진 타잔은 아프리카인에 비해 육체적으로 월등하게 묘사된다. 그는 빠르고 강하며 영리하다. 타잔은 백인 우월주의의 상징이다. 작품을 접한 당시 독자들은 백인과 문명을 동일시하기에 충분했다. <유인원 타잔>에서 타잔은 제인에게 “이곳(아프리카 밀림)은 야수와 흑인들의 킬러인 타잔의 집이다”라고 소개한다. 버로스는 아프리카인들을 야만적이고 열등한 인종으로 묘사했다. 그의 작품 속에는 “N 워드 (Nigger)” 및 당시 만연했던 식민주의 및 인종주의적 시각이 가득하다. 작품 속 흑인은 야만적이고 미신을 믿으며, 식인습성을 지닌 미개하고 악한 타자로 그려졌다. 반면에 백인인 타잔은 동물들을 죽이고 서로를 죽이려는 미개한 아프리카인들을 막는 ‘슈퍼히어로’로 그려진다. 그러나 이 슈퍼히어로는 동물과는 친구가 될 수 있어도 흑인과는 될 수 없었다. 오직 백인의 안전만을 수호하는 히어로다. 

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 등의 슈퍼히어로가 등장하기 전까지 타잔은 슈퍼 히어로로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사실 타잔은 초인적인 능력을 갖고 있진 않다. 타잔의 능력은 인간의 지혜와 동물의 육체적 강인함의 결합에서 나온다. 그의 존재는 자연적 인간의 후손을 상징한다. 버로스는 장쟈크 루소(1712-1778)에게 관심이 많았다. 자연 상태로부터 격리된 인간은 인간의 본성과 강인함을 박탈되었다고 믿었던 장쟈크 루소의 믿음을 타잔이라는 가공인물에게 투영했던 것이다.

월트디즈니에서 제작한 만화영화에서는 타잔과 동물 친구들에게 초점이 맞춰져있다.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이야기이나, 그곳에 사는 흑인들은 나오지 않는다. 아프리카인의 부재는 인종주의 시각에서의 비판으로부터 면죄부를 얻을 수는 없다. 아프리카 대륙을 정복해 버린 제국주의적 태도에서 나타난 결과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한 세기 동안 타잔을 소재로 한 여러 작품들은 원작의 변주를 시도했지만, 기본적으로 원작의 사상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타잔을 소비한 이들은 무의식중에 이 작품의 영향을 받아왔다. 그 결과 사람들에게 아프리카는 거대한 대륙이라기보다 한 개의 원시국가 정도로 인식된다. 타잔은 백여 년 전에 아프리카를 야만으로부터 보호하고 계몽해야하며, 이를 위해 식민제국주의가 필요하다는 당위를 표현했다. 이후에는 아프리카에 대한 편협한 인식을 심는데 한 몫 했다.

타잔의 밀림은 어디인가

버로스 자신이 아프리카 땅을 밟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일까. 그는 타잔의 활동 무대에 대한 구체적 언급 없이 그저 ‘아프리카 밀림’이라고 기술했다. 이는 아프리카 대륙을 빈 캔버스처럼 탐험이 필요한 미지의 세계로 보았던 당시 시각이 반영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버로스에 의해 탄생한 타잔과 그의 아프리카는 한 세기 동안 비아프리카인들에게 아프리카에 대한 다양한 측면의 관심과 환상을 불러 일으켰다. 

그렇다면 54개 국가로 구성된 3220만㎢의 넓은 대륙에서 밀림의 왕자 타잔이 활동했던 곳은 아프리카 대륙 어디쯤일까.

많은 사람들이 아프리카 밀림이라는 미지의 장소를 적도선이 지나는 고릴라 서식지를 중심으로 콩고, 우간다, 르완다 등지로 유추한다. 특히 타잔의 밀림을 콩고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벨기에 황제 레오폴 2세의 식민 사유지였던 DR콩고에서 영화가 촬영된 적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타잔의 밀림이 어디인지 살피기 위해서는 그에 대해 살펴 볼 필요가 있다. 타잔은 영국 귀족의 아들이다. 그는 부모와 함께 비행기 사고로 아프리카 대서양 근처의 밀림에 불시착했다. 이후 부모를 여의고 유인원 ‘칼라(원작에서 칼라는 고릴라가 아닌 망가니라는 허구의 유인원종이다)’에게 길러진다. 타잔의 언어 능력은 탁월하다. 유인원과의 의사소통뿐만 아니라, 영어와 프랑스어, 독일어, 네덜란드어 등의 유럽 언어 외에도 아프리카 현지어인 스와힐리어와 그밖에 반투계통 언어에도 능숙하다. 

위의 대략적인 정보를 통해 타잔의 밀림은 ‘대서양을 끼고 있는 기니 만 근처의 적도선이 지나며 고릴라가 서식하고 반투어가 사용되는 곳’으로 좁혀진다. 그 지역을 중심으로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의 영향을 받았을 지역을 찾아야 한다. 

아프리카는 19세기 후반 영국 선교사 리빙스턴과 탐험가 스탠리에 의해 유럽에 알려졌다. 이후 서구 열강은 앞다퉈 아프리카에 진출, 이곳을 분할〮·점령했다. 20세기 초반 에티오피아와 리베리아를 제외한 아프리카의 모든 지역은 영국, 프랑스, 독일, 벨기에, 포르투갈 등에 분할됐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이 연합국에 패배하면서 아프리카의 독일 식민지는 영국이나 프랑스 혹은 그들에 의해 분할 통치됐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영국, 프랑스, 독일의 영향을 받은 곳이라면, 제1차 세계대전 전에는 독일 식민지였지만 독일의 패배와 함께 영국과 프랑스에 의해 분할된 지역을 의미한다. 독일의 식민지였지만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과 프랑스에 의해 분할 점령됐던, 콩고와 대서양 기니 만을 접경하고 있는 국가를 따져보면 카메룬이란 답에 도달하게 된다. 

필자는 아프리카 밀림을 현재의 카메룬으로 유추하지만, 사실 타잔의 밀림은 아프리카 땅을 밟아본 적 없는 미국인 소설가가 상상한 지역일 뿐이다. 앞서 언급했듯 버로스는 작품에 타잔의 아프리카 말림이 어디인지 구체적으로 기술한 적은 없다. 그에게 아프리카 대륙은 타잔이 혼자서 활보할 수 있을 정도 크기의 야생의 밀림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을 사랑한 많은 이들에게 타잔의 아프리카 밀림은 어디일까. 그리고 이 작품에 녹아있는 백여 년 전 버로스의 시각에서 여전히 아프리카를 보고 있을까.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