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경영권 승계 과정 '정당성'에 치명상 입을까
  • 한광범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6.02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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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물산, 합병 전 고의 주식 저평가"…서울고법 결정 '파장'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당시 삼성물산 주식이 낮은 가격으로 관리됐을 수 있다는 서울고법 결정이 파장을 낳고 있다. 삼성물산 합병은 그룹 승계 문제와도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어 대법원에서 이번 결정이 확정될 경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지배체제에 대한 정당성에도 여파를 미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국민연금이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상식적이지 않은 행태를 보였다는 점도 확인돼 국민연금 기금운용 불투명성도 드러났다.

서울고법 민사35부(재판장 윤종구 부장판사)는 일성신약 등 삼성물산 주주들이 제기한 삼성물산 주식매수가격결정 신청에서 주식 1주당 매수 가격을 6만6602원으로 결정했다. 이는 삼성물산이 주주들에게 매수청구 금액으로 제시한 5만7234원보다 16.37%가량 높은 금액이다. 앞서 1심은 삼성물산 제시 금액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반면 항고심 재판부는 합병을 앞두고 구 삼성물산 주가가 낮은 가격으로 관리된 정황이 있다고 지적했다. 합병 당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일가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지분을 각각 42.19%, 1.41% 보유하고 있었다. 구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지분 4.06%를 보유한데 반해 제일모직은 보유 지분이 없었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에 비해 주식 가격이 높으면 높을수록 총수일가의 삼성전자 지배력을 높일 수 있는 구조였다. 

재판부는 이 같은 상황에서 삼성물산이 이상하리만큼 매출 부진을 겪고 이것이 주식 가치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상반기에 주택경기 회복 등으로 건설업종 주가가 크게 상승했음에도 삼성물산만 하락했던 점도 지적했다. 지난해 1월2일과 이사회 합병 결의 직전인 5월22일 종가를 비교했을 때 주요 건설회사인 현대건설, GS건설, 대우건설, 대림산업이 17.2~33.3% 상승한 반면 삼성물산은 오히려 8.9% 하락했다. 재판부는 이 같은 주가 흐름 원인으로 합병 계획에 따른 저평가와 함께 '실적부진'을 이유로 들었다. 

특히 실적부진의 경우 경영진의 고의성을 강하게 의심했다. 지난해 상반기 주택경기 회복으로 주요 건설사들이 주택신규공급을 대폭 늘리는 와중에도 삼성물산만 신규공급을 확대하지 않았다. 삼성물산 측은 이에 대해 "2014년 초부터 주택사업 추진전략을 수정해 기존 보유 물량 사업화에 집중하고 있다"며 "신규 수주는 강남권 등 사업성이 확인된 프로젝트에 주로 참여하기로 했다"고 항변했다. 실제 삼성물산의 지난해 상반기 신규주택 공급은 300여 가구에 그쳤다. 하지만 합병 결의 이후 서울 8곳에 1만 가구 아파트 공급 계획을 밝히며 본인들 주장을 스스로 부정했다. 

또 삼성물산은 지난해 상반기 대형 신규 수주 발표가 없었다. 하지만 삼성물산은 이사회 결의 전인 지난해 5월 중순 공사대금 2조원인 카타르 복합화력발전소 공사 제한착수지시서를 받고도 이를 낙찰통지서 수령 이후인 7월말에야 공개했다. 2조원은 삼성물산의 2014년 해외 수주액의 약 25%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삼성물산 측은 "낙찰통지서를 받지 않으면 계약무산이므로 받은 후 공개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삼성물산은 지난 2011년 사우디 쿠라야 복합화력발전소 공사 수주 당시엔 제한착수지시서만 받은 상태에서 수주 사실을 공개한 적이 있다.

아울러 합병 발표를 앞두고 그룹 내 공사를 삼성엔지니어링이 맡게 된 것도 매출에 영향을 끼쳤다. 삼성물산 측은 과거에도 삼성엔지니어링이 계열사 공사를 수행한 적이 있다며 해당 현황 자료를 공개했지만 합병과 무관하다는 근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재판부는 삼성물산 주식이 낮게 책정될수록 총수일가 이익이 커지고 총수일가가 삼성물산 경영에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점 등을 종합해 "실적부진이 총수일가 이익을 위해 누군가에 의해 의도됐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주식매수가격 결정 시점을 제일모직 상장 하루 전인 2014년 12월17일로 봐야한다고 결정했다. 재판부는 제일모직 상장을 "합병 가능성이 구체화되기 시작한 시점"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아울러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투자에 대해 "정당한 투자 판단에 근거한 것이 아닐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지난해 7월 주총 합병 표결 전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미래전략실 임원진을 만난 사실을 같은 해 9월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밝힌 바 있다. 

삼성물산은 이번 결정이 확정될 경우 당초 예상보다 347억원 정도를 일성신양 등에게 지급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 서울고법 재판부 판단은 삼성그룹(혹은 총수일가)이 안정적인 삼성전자 경영권 확보를 위해 합병과정에서 고의적으로 탈법을 저질렀다는 것을 인정했다는 측면에서 더 큰 의미를 가진다. 이는 삼성물산 최대주주인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문제와도 연결돼 있어 탈법 승계 논란을 야기할 가능성도 있다.

김기식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번 결정은 삼성물산 합병 결정 과정에서 합병 비율 결정이 총수일가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됐다는 걸 확인시켜준 것"이라며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 과정에 대해 도덕적으로, 시장 내 명성 면에서 굉장히 큰 타격을 입었다"고 평가했다. 김 전 의원은 국민연금 투자와 관련해서도 "절차도 생략해버린 전형적인 삼성 봐주기가 확인됐다"고 지적했다.

삼성 측은 이번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지난달 31일 재항고했다. 최치훈 삼성물산 사장은 지난 1일 서울 서초동 삼성사옥에서 수요사장단회의 출근길에 취재진에게 "1심과 2심은 다르다"며 "(2심 결정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합병 당시 제일모직 사장이었던 윤주화 삼성사회공헌위원회 사장도 항고심 결정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주장했다. 이 부회장은 같은 날 서울 순화동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호암상 시상식 행사 후 기자들의 관련 질문에 대해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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