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 사태로 보는 협상의 기술 ③] 외국인 변호사 쓰는 이유? 면책 때문이다
  • 김경민 기자 (kkim@sisapress.com)
  • 승인 2016.06.03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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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상선 사태로 보는 협상의 기술 ①] 우리 패부터 까고 시작하는 정부

⇒ [현대상선 사태로 보는 협상의 기술 ②] 가격 후려치기엔 ‘결렬’로 대응해야 했다

 

지난 5월18일, 우리 측 변호를 맡은 마크 워커 변호사가 외국 선주들과 약 4시간가량 협상을 벌였다. 협상 장소를 나선 그에게 기자들이 전망에 관해 물었다. 워커 변호사는 “이제 시작 단계다. 할 수 있는 얘기가 없다”고 말했다. 올초 현대상선측은 외채협상 베테랑인 마크 워커 변호사를 긴급 투입했다. 워커는 미국 밀스타인 법률사무소의 대표 변호사로 국제금융과 기업채무 관련 업무만 30년 이상 해온 베테랑이다. 


국제비즈니스분쟁 컨설턴트로 활동 중인 박상기 교수(한양대 국제대학원 겸임교수)는 "왜 자꾸 외국인 변호사를 고용하는가. 안타까운 얘기지만, ‘면책(免責)’을 위해서다. 우리나라 경영진 가운데 제대로 협상을 배운 사람도 없거니와 그 누구도 ‘괜히 나서서 중요한 거래를 망쳤다’는 비난을 듣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고 꼬집었다.

현대상선 용선료 협상에서 우리 측 구원투수로 나선 마크 워커 변호사(오른쪽)의 머습.
마크 워커 변호사가 “이작 시작 단계”라고 한 이유는 뭘까. 

말 그대로 이제 시작이란 의미다. 협상은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다. 협상 테이블에서 본계약에 대한 협상이 타결됐다고 해도 협상은 끝난 게 아니다. 그때부터 ‘니블링(nibbling)’이란 협상의 또 다른 과정이 시작된다. 

니블링이란 말 그대로 야금야금 원하는 바를 계속 얻어내는 것이다. 크게 두 가지 방식이 있는데, 본계약 자체를 최종단계까지 가지고 가다가 계약 직전에 완전히 새로운, 계약 당사자가 혹할만한 내용을 제안하는 것이다. 자동차를 구입할 때 처음에 소형차를 사려던 고객이 있다고 치자. 판매자는 그보다 고급 사양의 중형차를 추천하며 여기에 여러 가지 우대 조건을 끼워준다. 실질적인 지불금액은 소형차를 제 돈 주고 사는 거나 다름없다고 강조한다. 결국 고객은 몇 백만원을 더 주고 ‘훨씬 더 좋은’ 중형차를 구매하기로 한다. 그러자 중형차 구매가 성사되기 직전, 판매자가 새로운 제안을 내놓는다. 고급세단에 여러 가지 우대를 끼워주며 "이걸 사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한다. 

이런 식으로 판매자는 야금야금, 고객이 실제로 지불해야 하는 가격을 높여간다. ‘여기까지 왔는데 이만큼만 더 쓰시죠’라는 전략이다. 현대상선의 경우 협상목표치를 언론에 다 공개해버렸기 때문에 상대편에서는 이걸 협상카드로 사용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이 정도까지 하기로 한 것 같은데, 그럼 이건 양보하고 아예 이렇게 하시죠’라는 식으로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니블링의 또다른 방법은 본 계약서에 담긴 내용이 아닌, 다른 추가 요구를 제시하는 것이다. ‘당신들이 원하는 것을 우리가 이만큼 양보해 들어줬으니 이건 좀 이렇게 하자’는 전략이다. 한국 정부가 협상을 시작하기도 전에 언론에 흘린 협상 목표 사항이 타깃이 될 공산이 크다. 이미 언론을 통해 외국 선주들에게 출자전환 지분을 주겠다고 흘러나갔다. 아마 그들은 지분을 먼저 챙기고 추가로 요구 사항을 들이밀 것이다. 기본 협상 내용은 챙기고 기타 다양한 추가 요구사항을 하나하나 챙겨 나가는 게 전통적이고 표준적인 협상전략이다. 흔히 ‘이면 계약’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여기에 해당한다.

이번 현대상선 용선료 인하 협상 뒤에 어떤 이면 계약이 오고갈지 벌써부터 우려된다. 일단 처음 정부가 공표한 용선료 인하율은 28%에서 20% 초반이 됐다. 이미 선주들 쪽에 유리한 방향으로 하향 조정됐다. 하지만 대폭 인하는 아니다. 때문에 선주들은 선심쓰는 척하며 추가 사항을 요구할 게 뻔하다. 초기 거부 전략으로 일관하던 그들이 협상테이블로 나왔다는 건 이미 우리측 제안이 수용할만한 제안이란 걸 방증한다. 

우리측 변호를 맡아 용선료 협상을 벌이고 있는 이는 미국인 변호사 마크 워커다. 우리나라 정부나 국책은행이 개입한 협상인데 외국인 변호사를 사용하는 부분은 문제가 없을까.

우리나라 해운업에 문제가 생기면 누가 돈을 벌까. 바로 영국과 미국의 법률회사다. 큰 협상거리만 있다면 우리나라 정부나 기업들은 외국 로펌의 전문 변호사에 의뢰하기 바쁘다. 외국 상대 협상에서 외국인 변호사를 고용하는 것은 장단점이 있다. 일단 그들의 국제 비즈니스 협상의 역사는 길다. 때문에 협상 스킬도 다양하고 무엇보다 네트워크가 방대하다. 그들이 가진 네트워크를 활용해 상대방의 정보를 수집할 수 있고 보다 효과적인 협상전략을 짜는데 중요한 요인이 된다.

단점은 아무래도 그가 외국인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의 조국에 해가 가는 일은 결코 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전력을 다해 상대로부터 우리의 가치를 지키려고 하진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외국 로펌 변호사들이 주도적으로 진행한 우리나라 협상 가운데 제대로 이겨본 사례가 없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개인적으로는 외국인 변호사에게 우리 협상의 지휘권을 맡기기보다는 부분적으로 고용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럼 왜 자꾸 외국인 변호사를 고용할까. 안타까운 얘기지만 ‘면책(免責)’을 위해서다. 우리나라 경영진 가운데 제대로 협상을 배운 사람도 없거니와 그 누구도 ‘괜히 나서서 중요한 거래를 망쳤다’는 비난을 듣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협상대응력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한국인들이 협상 테이블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게 뭘까. 바로 ‘협상 결렬’이다. 하지만 협상은 결렬 게임이다. 협상은 결렬에서 시작하며 결렬을 통해 원하는 것을 달성할 수 있다. 상대방이 가격을 후려치는 등 터무니없는 제안을 하거나 마감시한 등의 약속된 조항을 어겼을 때 사용할 수 있는 전술이 결렬이다. 협상 결렬을 선언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오면서 이 오퍼를 무효화해버리는 전략도 쓸 수 있다. 그래야 이후 협상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사실 전략으로서의 ‘결렬’은 국제 협상계에서 매우 오래되고 진부하다. 이런 전략을 함부로 구사했다가는 다음 수까지 읽혀 역공을 당하기 마련이다. 문제는 이런 전략이 여전히 한국에서만은 먹힌다는 것이다. 한국 입장에서 협상 결렬은 불가능한 옵션이다. 특히 이번 현대상선처럼 정부와 국책은행, 채권단이 끼어든 경우라면 결렬은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선택이다.
 
현대상선은 계약상의 갑이다. 을인 외국 선주들에게 변경사항을 제안하면 상대는 (물론)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거꾸로 우리에게 ‘이 제안은 수용할 수 없으니 다시 제안을 해라’고 요구한다. 이때 우리가 구사할 수 있는 전략이 기존 제안을 철회하고 협상 결렬을 선언하는 것이다. 그들의 터무니없는 제안에 무응답으로 일관하고 협상 테이블을 떠나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인 경우가 많다. 우리는 상대방이 우리 제안을 거부하고 다른 제안을 요구할 때 당황한다. 더 심한 경우 상대가 결렬을 선언해버릴 수도 있는데 결렬이란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우리다.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 스스로 제시가격을 낮춰 그들에게 유리한 제안으로 바꾸면서 협상의 주도권을 내주고 만다.

지금부터라도 협상의 주도권을 가지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나.

일단 협상의 기본 전제인 '갑'과 '을'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한다. 또 이번 협상에서 ‘등가교환의 법칙’이 얼마나 잘 구현되고 있는지도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현대상선 협상 과정을 보면 우리측이 너무 성급하게 일을 진행하고 있는 것 같다. 협상에서는 서두르는 쪽이 진다.

이번 협상은 개인적인 협상이 아니다. 수십만명의 생존과 어쩌면 국가적 위기가 걸려 있는 게임이다. 이번에 협상이 실패(결국 협상은 타결되겠지만 우리가 원하는 조건에서 대폭 양보해야 한다면 이는 실패나 다름없다)하면 결국 손해보는 사람은 누가 될까. 국민이다. 현대상선이 잃은 손실은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하게 될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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