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대선주자 반기문이 성공하려면
  • 박영철 편집국장 (everwin@sisapress.com)
  • 승인 2016.06.05 03:09
  • 호수 1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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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어렸을 때 유엔은 정의의 화신이었습니다. 초등학교 때 배웠던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도 대한민국이 가진 자유민주주의 헌법보다는 유엔이 승인한 한반도의 유일 합법정부라는 게 주된 근거였습니다.

유엔이 한국인에게 강렬한 인상을 준 것은 한국전쟁이 결정적입니다. 미국 등 16개국 병력으로 구성된 유엔군의 개입이 없었으면 지금쯤 한반도는 공산국가가 돼 있겠지요. 이 탓에 한국인의 유엔 사랑은 각별했습니다.

1945년 10월24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유엔이 조직된 것을 기념하는 ‘유엔의 날’(10월24일)은 한때 공휴일로까지 지정됐다가 1976년에 폐지됐습니다. 팔각형 성냥통에 성냥을 담은 ‘UN성냥’이라는 제품은 아직도 판매되고 있습니다.

유엔 이야기를 이렇게 장황하게 꺼내는 까닭은 아시다시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때문입니다. 그는 5월25일 제주도에서 열린 관훈클럽 간담회에서 대권 도전을 강력히 시사하는 발언을 해서 국내외적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언론에서 주요 기사로 일제히 보도하자 다음 날 그는 ‘그런 뜻이 아니었다’는 취지의 해명을 내놨습니다. 그러나 이를 믿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일련의 제주 발언 이후 ‘대선주자 반기문’은 이제 기정사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다만 여권과 야권의 반응은 차이가 큽니다. 경쟁력 있는 후보가 전멸한 새누리당은 열렬환영입니다. 반면 야당들은 뭐하러 나오느냐는 식의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진보매체들은 반 총장을 공격하는 기사를 싣기 시작했습니다. 이 모두가 4·13 총선이 빚은 결과입니다.

유엔 사무총장 임기가 끝나는 내년 1월1일 이후 ‘자연인 반기문’이 택할 수 있는 길은 현재로선 새누리당 후보가 가장 유력합니다. 그가 새누리당 대선후보로 결정되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혹독한 검증 과정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야당 측에서 그의 비리가 담긴 파일을 확보해두고 그가 나오기만 하면 폭로하겠다고 벼르고 있다는 설(說)도 나돌고 있습니다.

대다수 언론들이 제기하는 그의 권력의지는 오보(報誤)로 보입니다. 지금까지 그의 인생역정을 살펴보면 권력의지는 대선주자급으로 손색없을 만큼 강합니다. 정치력을 문제 삼는 지적도 많지만 유엔 사무총장은 세상에서 가장 정치적인 자리 중의 하나라는 것을 감안하면 별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는 이 자리를 10년간 해왔습니다. 다만 그가 직분을 잘 수행했느냐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의 대선 출마를 두고 유엔 사무총장까지 지낸 사람이 출신국 현실정치에 뛰어들어서야 되겠느냐며 말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중립적으로 말하면, 그가 글로벌 무대에서 닦은 경륜을 조국 대한민국을 위해 쓰겠다는 것 자체는 좋아 보입니다. 지금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그가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올해 마지막 날까지 혼신의 힘으로 직분을 잘 수행해 유종(有終)의 미를 거두는 것입니다.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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