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인디음악 세계를 품다
  • 이경준 대중음악 평론가·음악웹진 ‘이명’ 편집장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6.10 17:48
  • 호수 1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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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비나이’, ‘단편선과 선원들’ 등 거대 자본과 프로모션 없이 ‘실력’만으로 해외진출

 


 

어떤 움직임이 있다. 떠들썩한 움직임은 아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도 없다. 하지만 그 어떤 흐름보다 열정적이고 독립적인 움직임이다. 거대 자본과 프로모션의 힘을 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 인디음악의 해외진출 이야기다. 현상이라 부르기엔 아직은 소박하다. 수줍다. 그러나 물꼬는 트였다. 주목하는 시선도 늘고 있다. 

 

지난 6월2일과 3일, 스페인에서 열린 세계 최고의 음악축제 중 하나인 프리마베라 사운드 페스티벌에 3팀의 한국 인디밴드가 초청됐다. ‘위댄스’ ‘디티에스큐’ ‘데드버튼즈’. 이 중 데드버튼즈의 1집 는 영국에서 발매된 바도 있다. 4인조 록밴드 ‘단편선과 선원들’은 영국 브라이튼에서 개최된 ‘더 그레이트 이스케이프 2016’의 무대를 장식했다. 유력 일간지 가디언으로부터 “분노에 찬 바이올린과 거침없는 프런트맨의 입담으로 증폭된 연주”라는 찬사를 듣기도 했다. 자리를 함께했던 ‘잠비나이’는 ‘최고의 공연 13팀’에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이들의 움직임은 더 많은 사람을 들썩이게 할 준비를 마쳤다. 

 

유튜브에 외국어 댓글이 한글 댓글 압도

 

단초가 있었다. 문을 연 팀은 국악기를 바탕으로 한 3인조 포스트메탈 밴드 ‘잠비나이’다. 2013년 5월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월드 빌리지 페스티벌’을 통해 해외 팬들에게 첫선을 보인 이들의 음악은 국내 팬들보다 해외 팬들이 더 사랑하는 아이템이 됐다. 유튜브에 들어가 이들의 뮤직비디오 클립에 달린 댓글을 보면 된다. 외국어 댓글이 한글 댓글을 압도하는 진기한 광경이 보인다. 더구나 호평 일색이다. 해외 디렉터들이 이런 반응을 놓칠 리 없다. 밴드는 2015년 플레밍 립스 등 세계적인 밴드들이 소속돼 있는 인디 레이블 ‘벨라 유니온’과 계약했다. 6월17일 이들은 벨라 유니온을 통해 정규 2집을 전 세계 동시 발매할 예정이다. 같은 날, 이들은 프랑스 낭트에서 열리는 최대 규모의 헤비메탈 페스티벌 ‘헬페스트’에도 선다. 한국 뮤지션이 이 페스티벌에서 공연하게 된 건 사상 처음이다. 

 

 

국악기를 바탕으로 한 3인조 포스트메탈 밴드 잠비나이

 

잠비나이의 쾌거는 작은 불씨였다. 음악만 잘 만든다면 충분히 해외시장을 공략할 수 있다는 좋은 선례가 되었다. 그사이 해외와 국내를 이어주는 채널도 성장했다. 그 대표 격인 ‘서울국제뮤직페어’(뮤콘)는 어느덧 한국 대중음악의 해외진출을 돕고, 세계 음악관계자들이 한국 대중음악을 주시하게 할 수 있는 가장 큰 마켓으로 입지를 굳혔다. 해외 페스티벌 디렉터들과 음악 관계자들이 한데 모이는 이 행사는 인디 뮤지션들에게 더 큰 무대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물론, 그 모든 면을 좋게만 평가하긴 어렵다. 하지만 이런 채널을 통해 인디 뮤지션들이 해외진출을 모색할 수 있는 장(場)이 더 넓어졌다는 점만큼은 부인할 수 없다. 

음악가 본인이 루트를 개척하는 사례도 있다. 얼마 전 영국으로 떠난 ‘레이브릭스’와 ‘57’이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미리 짜인 동선이나 거창한 계획 따윈 없었다. 근사한 초대장도, 든든한 연줄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휙 떠났다. 프로모터도 로드 매니저도 없는 밑도 끝도 없는 투어다. 발품을 팔고, 인사를 건네고, 매몰차게 거절당하기도 하는 고된 여정이었다. 그렇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의외의 수확도 생겼다. 이메일함에는 현지 관계자들의 섭외 메일이 쌓여갔고, 그중 한 사람은 레이브릭스의 음악을 듣고 “당신들의 음악이 나의 인생을 바꿨다”며 극찬하기도 했다. 현지에 와 직접 부딪쳐보지 않았다면 놓쳐버렸을 피드백이다. 이런 우연한 가능성들이 모여 큰 사건을 일으킨다는 걸, 대중음악의 역사는 몸소 증명해왔다. 

 

사실이다. 과거에 비해 한국 인디음악의 수준은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여기서 ‘좋아졌다’는 말은 말 그대로 음악의 질이 향상됐다는 의미도 되지만, 장르의 품이 넓어졌다는 의미도 되고, 독창적인 해석이 늘어났다는 의미도 된다. 몇 단계만 더 올라서게 되면 ‘월드와이드 레벨’로 올라설 수 있겠다 싶은 싹들도 보인다. 이렇듯 뛰어난 음악성을 가진 동료들의 해외진출은 타 아티스트에게도 자극으로 작동하고 있다. 시기하거나 부러워하는 차원에 머물지 않고, 적극적으로 노하우를 물어보고 자신의 음악을 업그레이드하는 계기로 삼는 뮤지션들이 곳곳에서 목격된다. 긍정적인 신호다. 

 

‘한류’로 묶으려는 시도는 바람직하지 않아

 

하지만 조심스럽다. 이 일련의 흐름을 ‘한류’(혹은 한국적인 것의 승리)나 ‘K팝의 저변확대’로 바라보려는 시도들이 보인다. 일부이긴 하지만 그런 견해가 필자로선 좀 불편하다. 무엇보다 ‘한류’라는 정체불명의 용어로 막 싹을 틔우려는 이들의 움직임을 제한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한국적인 것을 찾아내는 게 성공의 지름길”이라는 보도가 나올까 두렵다. 잠비나이의 사례가 보여주듯, 몇몇 밴드들이 인정받는 건 철저하게 그들이 가진 ‘음악적 역량’ 때문이지 ‘한국성’에 대한 집착 때문이 아니다. 실제로 해외 리뷰를 보면 ‘국악기’에 관한 말보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무드와 장르적 완성도에 대한 언급이 압도적으로 많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아울러 ‘K팝의 저변확대’라는 말은 어불성설 그 자체다. 애초 발생 층위와 방향성, 자본의 투입 정도와 겨냥하는 팬층이 달랐던 아이돌과 인디의 흐름을 한데 엮으려는 건 가능한 시도도, 바람직한 시도도 아니다. 

 

결론은 “그들을 내버려두자”이다. 지원을 하지 말자거나 관심을 끄자는 말이 아니다. 예술의 ‘흐름’은 언론이나 관(官)이 주도한다고 형성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중요하게 새겨졌던 예술 사조들은 모두 그것이 출현한 다음, 필요에 의해 ‘사후적’으로 이름 붙여진 것일 뿐이었다. 어디까지나 그 흐름의 주체는 예술가 자신이었다. 주도권을 빼앗으려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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