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별관회의’, 경제를 정치로 풀어온 그곳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6.06.10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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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와대로 1’ 청색 기와를 지붕에 얹은 청와대의 공식 주소다. 대통령과 그를 보좌하는 사람들이 일하는 대한민국의 중심이다. 이곳에서는 우리 사회를 좌우하는 여러 현안들이 논의된다. 경제의 큰 틀을 정하는 것도 이곳에서 협의된다. 특히 거시경제에 관한 정책을 논의하는 자리는 청와대 본관의 서편에 위치한 별관에서 열린다. 그래서 이 회의를 ‘서별관회의’라고 부른다.


‘서별관회의’는 독특하다. 일단 비공개다. 경제부총리가 주재하고 청와대 경제수석을 비롯해 우리 경제의 실세들이 참석하지만 공식적인 회의체가 아니다. 법적 근거가 없고 기록도 없다. 이런 비공식적인 회의체가 지금 주목을 받게 된 이유는 한 편의 인터뷰 때문이다. 홍기택 전 산업은행장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대우조선해양 지원은) 청와대와 정부가 결정한 일이고 산업은행은 들러리였을 뿐이다. 서별관회의에서 결정을 내리면 우리는 그냥 따르기만 하는 구조다”고 말했다. 그렇게 음지의 서별관회의는 양지로 떠올랐다. 홍 전 은행장은 “채권단에 전적으로 맡겼으면 지금과 같은 사태가 없었을 텐데 당국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했다”며 서별관회의에 책임을 돌렸다.

홍기택 전 산업은행장은
2000년에 있었던 일과 오버랩된다. 2000년은 현대나 대우 등 대기업이 연쇄적으로 부도가 나거나 유동성 위기가 생기면서 이에 대한 대책회의가 유독 많이 열렸던 때다. 따라서 서별관도 회의로 사람들이 자주 드나들었다. 당시 현대상선의 4900억원 대출건(4억달러 대북비밀지원건)과 관련해 엄낙용 전 산업은행 총재가 참석했다는 청와대 회의도 이 서별관회의였다. 서별관회의는 김영삼 정부 때인 1997년에 처음 시작됐다. 한미FTA 같은 통상 정책부터 조세와 부동산까지. 당시 경제와 관련된 여러 이슈들이 다루어졌는데 IMF 경제위기 이후에는 자주 열렸다고 한다. 

서별관회의가 정례화된 것은 이명박 정부 시절이었다. 이때는 참석자들이 도시락을 먹으면서 회의를 했기 때문에 ‘도시락회의’로도 불렸다고 한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중요 사안이 발생했을 때 일요일에 개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전 정부와 비교해서는 뜸해졌다. 특히 최경환 경제부총리 체제가 출범하자 서별관회의는 더욱 횟수가 줄었다. 직전 현오석 체제 때는 들어서자마자 곧바로 서별관 회의를 열어 추가경정예산 등에 관해 논의를 했다. 일각에서는 현오석 체제 때는 조원동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 조율사 역할을 했지만 최경환 체제의 경우는 본인이 강력한 컨트롤 타워 역할을 했으니 서별관회의가 필요 없었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그동안 이곳에서 나오는 말들은 기록으로 남지 않았다. 따라서 책임질 사람도 없었다. 경제 분야 실세들의 모임인데도 경제 논리보다는 정치 논리가 앞선다는 비판을 받았다. 동양그룹이 기업어음(CP)을 무더기로 발행해 개인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주었던 '동양사태' 때 정부의 '동양그룹 봐주기' 논란을 불러온 게 서별관회의였다. 4조5000억원을 지원받고도 결국 회생에 실패한 STX조선해양의 처리 방법을 결정한 것도 서별관회의였다. “산업은행의 대우조선해양 지원 방침이 지난해 10월 열린 서별관 회의 때 결정된 것”이라는 홍 전 은행장의 인터뷰는 여전히 서별관의 논의에서 정치 논리가 앞서고 있다는 증거가 됐다. 실업률이 늘고 경기가 나빠지고 민심이 악화될 것 등을 우려해 필요할 때 메스를 대지 못하고 국책 은행을 통해 시간 벌기에 나서는 결정이 되풀이 된 것이다.

그나마 밀실에서 이뤄지던 논의를 양지로 끌어올린 게 의미라면 의미일까. 당장 청와대 관계자는 "더 이상 구조조정과 관련한 논의를 서별관에서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조조정을 고민하던 서별관회의부터 구조조정 당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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