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해운사 부실사태? 회계법인이 을(乙)된 탓이다”
  • 박준용 기자 (juneyong@sisapress.com)
  • 승인 2016.06.10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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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총희 청년공인회계사회 대표 인터뷰

 

 

자본주의의 ‘파수꾼’은 이제 거대 자본의 ‘방관자’ 또는 ‘공모자’라는 오명을 쓸 판이다. ‘조선․ 해운사 부실사태’에 대형회계법인이 사실상 공모했다는 지적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대우조선해양의 수조원대 분식회계 의혹에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이 관계된 정황을 수사하고 있다. 더불어 삼일회계법인은 한진해운을 부실실사했다는 논란에 휩싸였고, 수장인 안경태 회장은 미공개정보를 최은영 한진해운 회장에게 알려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기업과 회계법인의 검은 공생 관계가 주목받는 상황이 됐다.

젊은 회계사들의 모임을 이끄는 이총희 청년공인회계사회 대표는 회계법인이 거대자본의 ‘방관자’나 ‘공모자’가 될 수밖에 없는 지금의 상황에 ‘쓴소리’를 던졌다. 그는 "한국은 기업이 멋대로 하기 좋은 나라“라면서 “기업인은 이제 더 이상 ‘을’ 신세인 회계사의 감사를 무서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기업이 회계법인을 입맛대로 바꿀 수 있게 되면서 회계법인은 기업의 부정을 눈감아야하는 ‘을’이 됐고 이것이 부실감사로 이어진다는 지적이다. 이 대표는 기업인과 회계사들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분식회계 사태의 근본 원인이라고 짚었다. 

대우조선해양 압수수색 때 나온 엄청난 박스 더미의 자료들

조선․해운사 부실사태에 회계 검증을 제대로 못한 회계법인의 책임론이 일고 있다. 
조선․해운사의 부실에 회계법인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개별 회계법인들의 윤리문제로 몰아가기에는 기업과 감독당국의 구조적 책임이 크다. 우리나라는 회계투명성을 어겼을 때의 이익이 비용보다 크다. 미국은 회계비리를 저질렀을 때 수십년 징역형을 산다. 천문학적 벌금까지 내야한다. 그걸 기대하지 않더라도 투명한 회계 의무를 다하지 않았을 때 기업에게 강한 처벌을 하면 그나마 낫다. 

미국과 우리는 많이 다른가.
우리는 그렇지가 않다. 일례로 자산총액 1000억원 이상 기업 11%가 재무제표제출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해 감독당국은 기업들에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재무제표 미제출은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중요한 사안이다. 올해는 감독당국이 규정대로 하겠다고 하지만 그 ‘규정대로’가 경영진이 아니라 회사에 대한 제재만 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칼이 있어도 휘두르지 않으니 아무도 무서워하질 않는 거다. 감독당국도 무서워하지 않는 기업 경영진이 감사비용이 낮아져 ‘을’ 신세가 된 회계법인의 감사에 신경이나 썼을지 의문이다.

기업 경영진과 감독당국이 회계 법인에 책임을 떠넘긴다는 얘긴가.
그렇다. 재무제표 작성의무를 소홀히 한 최고경영자(CEO),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처벌했으면 회계투명성 향상을 위해 기업들이 노력했을 것이다.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하는 한 감독당국은 회계부정 사태의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회계법인이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분식회계를 기업에게 해주는 것이 아니질 않는가. 기업의 경영진은 뺀 채 징계의 대상을 회계법인으로 한정했던 것은 감독당국의 직무유기다. 

분식회계 관련 기업에 불이익을 주는 등 대책이 논의되는데. 
분식회계에 연루된 기업인에게 강한 처벌을 해야 한다. 기업인은 항상 용서의 대상이다. 감독당국은 회계투명성을 가볍게 여기다 못해 무시하는 기업의 오너, 임원들에 대해서 매번 봐주기식으로 대응한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이런 솜방망이 처벌이 계속되면 기업인들은 분식회계로 거액의 이득을 편취하고, 그 회사를 떠나면 그만이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서 분식회계를 저지른 임원의 취업을 제한하는 법 개정안이 나왔지만 이마저도 규제개혁위원회에서 후퇴시켜버렸다. 분식회계에 대한 처벌이 규제라고 하며 기업들에게 봐주기로 일관하는 정부가 분식회계를 조장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일선 회계사 뿐 아니라 삼일회계법인의 수장까지 ‘미공개정보’이용 의혹에 연루됐다.
안경태 삼일회계법인 회장의 경우 2015년 일선 회계사들이 미공개정보 이용으로 차익을 얻었을 때 “조심하라”는 공지를 직원에게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수사결과가 나와 봐야 하겠지만 이번에는 본인이 미공개정보 유출 혐의에 연루돼 있다. 이는 그 정도로 이 문제가 회계사, 애널리스트, 세무사 등 기업의 정보를 다루는 관련 직군에 만연해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회계사 뿐 아니라 미공개정보를 취득할 수 있는 전문직군의 주식거래를 일괄 규제하는 것도 검토해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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