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족이 그랬더라도 어떻게 감싸고도나”
  • 조해수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6.06.13 11:03
  • 호수 1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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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여교사 집단 성폭행 사건, 정적에 휩싸인 사건 현장

 

 

전남 신안군의 한 섬.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홍도와 함께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의 대표적인 경승지(景勝地)로 손꼽히는 곳이다. 울창한 산림으로 섬 인근이 푸르다 못해 검게 보인다. 이 아름다운 섬에서 있어서는 안 될 범죄가 일어났다. 학부형 2명과 마을주민 1명이 초등학교 여교사를 집단 성폭행한 것이다. 옆집 숟가락 개수까지 알 법한 인구 5000명이 채 되지 않는 섬에서, 그것도 자기 자식을 맡긴 교사를 학부형이 주도해 ‘계획적’으로 성폭행했다. 인면수심(人面獸心)의 범죄에 국민적인 공분이 터져 나왔다.

분노는 피의자들을 넘어 이 섬을 향했다. 신안군청 홈페이지는 밀려드는 네티즌들의 민원으로 수차례 다운됐고, 일각에서는 관광은 물론 신안군 특산물인 소금에 대한 불매운동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후폭풍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섬 주민들은 물론 군 의회까지 나서 부리나케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 섬을 향한 분노는 수그러들 기미조차 없다. 언어폭행에 가까운 무차별적인 비난에 추측성 의혹까지 줄을 이으면서 이 섬은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서해 최남단에 위치한 외딴섬이 지금은 대한민국의 중심에 있다. 

 

경찰 “은폐 의혹은 근거 없는 루머”

 

기자가 이 섬으로 향한 6월8일은 이번 사건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극에 달해 있을 때였다. 이번 사건은 목포경찰서가 수사를 맡고 있다. 경찰 측은 이번 사건에 대해서 극도로 말을 아끼는 모습이었다. 경찰에 사건이 접수된 것은 사건 직후인 5월22일이다. 증거물인 옷과 이불, CCTV 영상과 통화내역 등을 확보했기 때문에 곧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라는 것이 경찰의 입장이었다. 실제로 경찰은 6월10일 피의자 3명을 강간치상 혐의로 검찰에 넘겼다. 피의자들은 6월4일 구속됐는데, 당시만 해도 강간치상이 아닌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유사강간과 준강간 혐의를 받았다.   

 

국민적인 분노가 집중된 사건이다 보니 경찰도 여러 가지 오해를 받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현지 경찰이 사건을 은폐 내지는 축소하려고 했다는 루머였다. 목포경찰서 소속 A 경찰관은 “해당 파출소 직원이 사건을 덮으려고 했다는 얘기가 사실처럼 인식되고 있다. 피해자가 현지 경찰관을 믿지 못해 그 섬에서 홀로 나와 목포경찰서에 직접 사건을 신고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면서 “피해자는 5월22일 112를 통해 피해사실을 신고했고, 현지 파출소 경찰관들이 즉각 출동해 옷과 이불 등 증거물을 직접 확보했다. 또한 피해자를 파출소로 데려와 보호했고 목포로 나오는 배에도 동승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신안경찰서에서 사건을 덮으려고 해서 목포경찰서에 왔다는 얘기가 있는데, 신안경찰서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신안군민들이 신안경찰서 신설을 촉구해왔지만 예산문제 등으로 설립되지 않았고, 신안군은 목포경찰서가 관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사건이 언론에 알려진 것은 사건이 발생한 지 일주일가량 지난 후였다. 피해자의 남자친구가 사건발생 다음 날인 5월23일 온라인 커뮤니티에 “도와주세요. 여자친구가 윤간을 당했습니다”라는 글을 올렸고, 이 글이 인터넷에 퍼지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됐다. 이 때문에 경찰이 이번 사건을 공표하지 않고 조용히 마무리하려고 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와 관련해 A 경찰관은 “사건이 언론에 알려지기 전인 5월27일 피해자 3명에 대한 체포영장을 검찰에 신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검찰은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고 판단해 영장을 기각했다”면서 “경찰은 신속한 초동수사로 증거물을 확보하는 등 사건 발생 직후부터 범행을 입증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고 강조했다. 

 

관광객 “성폭행 모른다…알았어도 상관없다”

 

서울에서 KTX로 2시간30여 분을 달려 목포에 도착한 후 다시 뱃길로 2시간을 가면 이 섬에 닿을 수 있다. 목포에서 이 섬으로 가는 배편은 하루에 2~3회 정도 운항 중이다. 여행객들에게는 천혜의 해양 관광지로 알려진 곳답게 연간 관광객이 20만 명을 넘어선다고 한다. 이번 사건이 터지면서 여름 휴가철을 앞두고 관광객이 급감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6월8일 이 섬으로 가는 쾌속선은 빈자리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관광객이 넘쳐났다. 관광객들은 대부분 단체여행을 온 사람들로 초등학생부터 50~60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아이들은 웃고 떠들며 장난치기에 바빴고 나이 지긋한 어른들은 가수 이미자의 히트곡 《흑산도 아가씨》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섬마을 성폭행 사건으로 전국이 들썩이고 있었지만, 이 배 안에서는 당혹감이 들 정도로 밝은 분위기가 흘러 넘쳤다. 초등학교 동창 모임에서 단체여행을 왔다는 60대 B씨에게 섬마을 성폭행 사건에 대해서 묻자 “신문을 통해 그 사건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 (그런데) 어디서 일어난 건지는 몰랐다”면서 오히려 자세한 자초지정을 되물었다. 함께 여행을 온 C씨는 “어디서 그 사건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었다”면서 “그렇다고 여행이 꺼려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런 패륜범죄는 도시에서 더 발생하고 있지 않나”라고 말했다.

 

문제의 섬 항구는 관광객을 태우려는 관광버스와 밴택시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배에서 쏟아져 나온 관광객들은 버스와 택시에 나눠 타고 순식간에 항구를 떠나갔다. 시끌벅적했던 항구가 30여 분 만에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항구에는 2~3개의 모텔과 음식점이 전부였는데, 그마저도 단체관광객이 떠나면 일찍 문을 닫았다. 이 섬이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대표적인 유배지였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는 정적이었다.   

 

 

6월9일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섬 지역 교사들의 거주여건 등을 점검하기 위해 전남 신안군을 방문했다.

 

지역주민 “부끄럽고 죄스러울 뿐”   

 

섬에서는 또 다른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이번 성폭행 사건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침묵이 그것이다. 이번 사건을 크게 개의치 않았던 관광객들과 달리 주민들은 매우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이었다. 항구 인근에 있는 여관이나 음식점 주인들은 이번 사건에 대해 묻자 하나같이 “잘 모른다”고만 대답했다. 술자리가 벌어졌던 횟집이나 심지어 학교의 위치에 대해서도 한결같이 “모른다”는 답변만 했다. 사건 자체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어렵게 입을 연 항구 인근 식당 주인은 “(이 사건에 대해) 외지인, 특히 언론에 말하는 것이 두렵다”면서 “(일부 언론에서) 마치 주민들이 피해자들을 옹호하는 것처럼 보도한 것을 봤다. 절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주민으로서 더 부끄럽고 죄송스럽기만 하다. 내 가족이 그런 짓을 했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감히 감싸고 돌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사건이 벌어진 관사는 피해자가 근무하는 학교 인근에 위치하고 있다. 학교는 항구 오른편으로 2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관광객으로 붐비는 항구와 전혀 다르게 적막감만 흐르고 있었다. 피의자들이 피해자에게 술을 먹인 횟집은 항구 왼편에 위치하고 있다. 피해자는 동료교사들과 홍도 여행을 가기로 했으나 표를 구하지 못해 5월21일 저녁에 이 섬 항구에 도착했다. 관사로 들어가기 전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찾은 곳이 항구 인근에 위치한 피의자가 운영하는 횟집이다.

 

여기에서는 또 다른 분위기도 감지됐다. 실제로 성폭행 사건 피의자의 가족은 일부 주민들의 서명을 받아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지난 6월4일 법원에 제출했다. 관사 인근에서 만난 한 주민은 “탄원서를 냈다는 얘기만 들었다. 나는 서명한 적 없다”면서도 “(서명을 해준 사람들은) 서로 평생을 알고 지내온 처지인데 매몰차게 거절할 수 없어서 마지못해 해준 게 아니겠느냐. 죽을죄를 저질렀지만 그 사람들도 다 가족이 있고…”라면서 말끝을 흐렸다. 

 

관사의 방범시설은 사실상 전무하다시피 했다. 변변한 울타리는 물론 CCTV도 찾아볼 수 없었다. 현관문은 철문으로 돼 있지만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전자식 도어락이 아닌 열쇠로 열고 닫는 수동식 문이었다. 방범시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방범창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만약 관사에 CCTV가 있었더라면, 이번 사건 같은 대담하고 뻔뻔한 사건을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목포경찰서 한 관계자는 “이번 사건을 두고 이 섬의 문제라거나 섬마을 등 벽지의 문제로 몰고 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 섬이라는 공간의 문제라기보다는 범행을 저지른 사람의 문제에 주목해야 한다”면서도 “그러나 최소한의 방범시설이라도 갖춰져 있었다면 범행을 예방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도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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