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세진 ‘脫서울’ 바람에 ‘1000만 시대’ 마감
  • 이민우 기자 (mwlee@sisapress.com)
  • 승인 2016.06.16 13:21
  • 호수 1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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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폭등에 전·월세 치솟아 ‘굿바이 서울’…“삶의 질 개선에 집중해야”

 

 


“아자씨, 돈 징허게 많이 벌어 꼭 부자 되시씨요이.” 조정래의 장편소설 《한강》에서 전남 강진을 떠나온 유일민은 서울역에 도착한 전라도 남자에게 이렇게 인사한다. 불안과 두려움을 안은 채 갓 상경한 이들의 흔한 대화였다. 누군가에게 서울은 ‘눈 감으면 코 베어간다’는 두려움의 대상이자 미지의 도시였다. 농산물값 폭락과 고리대금의 늪에 시달린 이들에게는 유일한 탈출구였다. ‘말 새끼는 낳아서 제주도로 보내고, 자식은 낳아서 서울로 보내라’는 말처럼 누군가에겐 성공의 필수조건처럼 인식되기도 했다.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사람들은 그렇게 서울로 모여들었다.

 


무작정 상경한 이들은 봉천동 판자촌, 옥수동 달동네를 만들었다. 빈민촌에서 지게를 등에 지고 석탄을 나르며 일용직 노동자로 사는 이들의 목적은 ‘연명’이었다. 하루에 50환을 벌기 힘든 상황에서 55환짜리 연탄은 다른 세상 사람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들의 생존 본능은 제2한강교(현 양화대교)와 서울대교(현 마포대교)를 만들었고, 지금의 여의도를 탄생시켰다. 6·25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서울은 점차 도시의 모습을 되찾았다. 


서울 ‘인구 1000만 시대’ 마감


1965년에서 1970년 사이 서울의 인구는 300만 명에서 500만 명으로 늘었다. 서울은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을 치르면서 ‘메가시티(인구 1000만 명 이상의 거대 도시)’로 성장했다. 한강을 중심으로 아파트들이 올라섰고, 오늘날 부의 상징이 된 강남이 형성됐다. 산자락에 위치했던 판자촌은 점차 사라졌다. 한강의 기적이었다.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이 인구 1000만 명 시대의 막을 내렸다. 1988년 인구 1000만 명을 돌파한 지 28년 만이다. 행정자치부의 주민등록통계에 따르면, 올해 5월 말 주민등록 기준 서울의 인구는 999만5784명으로 집계됐다. 1955년 실시된 인구총조사에서 157만 명을 기록한 뒤 서울로 모여드는 인파로 인해 1992년 1093만 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탈(脫)서울’ 바람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서울 인구의 전월 대비 감소폭은 올해 들어 1월 3644명, 2월 4276명, 3월 4673명, 4월 6609명, 5월 7195명으로 점점 커지는 추세이다. 15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서울로 들어온 사람보다 서울 밖으로 벗어난 사람이 8만 명 더 많았다.


서울의 인구가 줄어드는 것은 정부의 인구분산 정책과 수도권 규제에 따라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다. 인구과밀 억제 정책의 효과가 주효했다. 그동안 정부가 추진해왔던 신도시 개발, 광역 교통인프라 구축, 공공기관 지방 이전 등 정부사업이 효과를 보고 있다는 얘기다.


서울의 인구는 1기 신도시 개발 이후 꾸준히 줄었다. 1990년대 일산·분당 등 베드타운 역할을 하는 1기 신도시의 입주가 시작되면서 67만 명 줄었다. 2000년대 후반 잠시 인구가 늘었다가 2010년 이후 동탄·판교 등 2기 신도시 조성, 중앙부처의 세종시 이전 등으로 더욱 감소했다.


서울의 인구는 대부분 경기도가 흡수했다. 통계청의 1~4월 인구이동 현황에 따르면, 서울에서 나온 전출자 20만5696명 중 12만230명(58.5%)이 경기도에 전입신고를 했다. 덕분에 경기도의 인구는 5월 말 기준 1259만4829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서울 인구의 1.26배에 해당하는 규모다.


1992년 경기도 인구는 661만3094명으로, 서울(1093만5230명)의 60.4% 수준이었으나, 2003년 1020만6851명을 기록해 처음으로 1000만 명을 돌파하면서 서울을 제쳤다. 2007년에는 1100만 명, 2012년에는 1200만 명을 돌파했다. 지금도 매년 15만 명 안팎으로 급증하고 있어, 2020년 안에 1300만 명에 도달할 가능성이 크다.

 

 


그들은 왜 서울을 떠났나

 


물론 서울시의 인구가 감소하는 것은 과밀해소 차원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그 속사정을 살펴보면 마냥 박수 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비자발적으로 이주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에서 다른 시·도로 빠져나간 인구 중 61.8%는 서울을 떠난 이유로 전·월세 등 주택 문제를 꼽았다.


특히 본격적으로 내 집 마련에 나서야 하는 30·40대가 느끼는 부담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서울시를 빠져나간 사람의 상당수는 아직 부(富)를 형성하지 못한 젊은 층이다. 지난해 서울시 인구 이동을 보면 30대의 순유출(전출에서 전입을 뺀 인구수) 인구가 4만8397명으로, 다른 연령층에 비해 감소폭이 가장 컸다. 이어 40대 2만6902명, 50대 2만5462명, 10대 이하 2만4686명, 60대 1만9868명, 70대 이상 1만1807명이 서울을 빠져나갔다. 반면 20대는 1만7790명 늘었다.


서울 인구 감소의 배경에는 왜곡된 부동산 시장이 자리 잡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과 한국감정원에 의하면, 1970~80년대 실질 임금은 2배 올랐지만, 서울 강남의 땅값은 200배나 올랐다. 이후 부동산 투기의 신화가 이어졌고, 왜곡된 시장을 만들었다. 통계청 관계자는 “전입신고서에 나타난 이사 이유 중에서 주택 때문이라는 답이 가장 많다”며 “과거 서울 인구 증가에는 출생이 상당한 기여를 했는데 최근 저출산 기조 탓에 서울의 인구 변화는 거의 이동(전출입)으로 결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주택과 전세 가격이 큰 폭으로 떨어지지 않는다면 서울 인구가 감소하는 흐름을 되돌리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서울 광진구에 살다가 지난 4월 결혼한 심영근씨(남·36)는 올해 경기도 부천으로 이사를 갔다. 도저히 서울에서 신혼집을 마련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취업한 김형섭씨(남·29)는 경기도 일산에서 출퇴근하기로 결심했다. 직장은 서울이지만 월급에서 오피스텔 월세 등 주거비를 빼고 나면 저축할 돈이 거의 없다는 계산에서였다.


이들이 서울에서 살아가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서울 아파트의 평균 매매가격은 5억5130만원에 달한다. 한 달에 세후 350만원을 버는 사람이 한 푼도 쓰지 않고 13년간 모아야 하는 돈이다. 전세도 마찬가지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2012년 7월부터 올해 5월까지 47개월 연속 올랐다. 역대 최장 기록이다. 서울지역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2014년 4월 3억515만원에서 올해 5월 4억408만원으로 2년 만에 약 1억원(32.4%)이나 올랐다. 어렵사리 전세를 얻어도 계약기간이 만료된 후 오른 전셋값을 감당하지 못해 쫓겨나는 현상도 이어지고 있다.

 

 

6월8일 서울 동작구 사당역 환승센터에서 시민들이 경기도로 향하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1000만 붕괴’가 던지는 메시지

 


전문가들은 서울 인구 1000만 명 회복은 사실상 어렵다고 보고 있다. 은기수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서울 주민등록인구 1000만 명이라는 상징적 숫자가 무너진 것은 새로운 변화”라며 “전국적인 저출산에 따른 절대 인구 감소와 턱없이 높은 주거비 때문에 서울 인구 1000만 명 회복은 앞으로도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려도 적지 않다. 우선 인구와 산업체가 동시에 빠져나갈 경우 장기적으로 시 재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희 서울시립대 교수는 “경제력이 탄탄한 지역은 인구가 유지되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 교육·의료 서비스가 특정 지역에 집중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버블 경제가 가라앉은 뒤 동·서 간 지역 격차가 벌어진 일본 도쿄(東京)의 사례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다.
젊은 층의 복지 부담도 가중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맥킨지 글로벌 인스티튜트의 세계 소비자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서울의 만 60세 이상 인구는 18%에 불과했지만 2030년에는 31%까지 치솟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물론 긍정적인 시각도 있다. 정문기 성균관대 교수는 “대기 오염과 교통 체증이 줄어들고 전국 균형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두섭 한양대 교수는 “서울을 빠져나간 사람들이 인접 도시에서 잠만 자고 대부분의 시간을 서울에서 보내기 때문에 오히려 서울의 외연은 확장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울시는 인구 감소 자체에는 별다른 위기의식을 갖지 않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인구 감소가 반드시 경제력 후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며 “오히려 소폭의 감소는 그동안 과밀로 인해 발생한 주택 부족, 교통 혼잡, 환경 악화 등의 문제를 해결해 도시의 쾌적도와 삶의 질을 높인다는 긍정적 시각도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서울 인구 ‘1000만 시대’의 마감은 대한민국에 하나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국민들의 삶에 생기를 불어넣어야 한다는 주문이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보여준 이웃 간의 정은 사라진 지 오래다. NASA(미국항공우주국)에서 미세먼지 연구의 적합지로 꼽을 만큼 서울은 잿빛 도시로 변해 있다. 123층의 초고층 빌딩을 짓던 시기에 인근 지하 단칸방에서는 딸의 만성 질환과 어머니의 실직에 시름하던 세 모녀가 영원히 잠들었다. 서울시는 지금 주거·환경·교통·교육·복지 등의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숙명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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