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③] 계급․인종․난민 그리고 피살, 둘로 갈라선 영국
  • 김경민 기자 (kkim@sisapress.com)
  • 승인 2016.06.17 18:0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브렉시트의 민낯...시리아 난민 포스터부터 하원의원 피살까지


영국의 유럽연합(EU) 잔류 및 탈퇴 여부(브렉시트)를 결정할 국민투표. 이제 일주일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투표의 향방을 가를 마지막 일주일, 국제 금융시장은 여전히 투표 결과를 점치는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출렁이는 중이다. 브렉시트 국민투표 결과가 영국의 정치․경제․사회 전반에 걸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자, 브렉시트 찬반논란은 영국 사회 내부로 파고들어 갈등을 빚고 있다.

급기야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생겼다. 6월16일(현지시각) 영국의 EU 잔류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던 여성 하원의원이 피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영국 BBC의 보도에 따르면 조 콕스 노동당 하원의원이 요크셔의 버스톨 지역에서 선거구민 간담회를 진행하던 중 한 남성의 총격을 받아 길에서 쓰러졌다. 그녀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BBC는 “괴한이 권총을 두 차례 이상 격발하고 사냥칼로 보이는 흉기로 다시 콕스 의원을 공격했다”고 보도했다. 현재 경찰은 용의자를 체포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범행동기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콕스 의원에 대한 공격 의도가 브렉시트 이슈와 관련 있다면 국민투표를 앞두고 영국 사회의 분열이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현직 하원의원이 피격됐다. 충격을 받은 영국 정치권은 일제히 “브렉시트 찬반 진영 모두 잠정적으로 국민투표 캠페인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6월23일로 예정된 국민투표가 이번 사건으로 보류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 사건 이후 글로벌 금융시장은 오히려 안정세로 들어선 분위기다. 영국의 EU 잔류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어서다. 미국과 아시아 등 전 세계 금융 시장은 일제히 상승세를 보였다.

하지만 영구 내부의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다. 이번 국민투표를 앞두고 유권자들의 사회계층, 출신지역, 지지 정당 등에 따른 투표 성향은 그대로 표출되고 있었다. 여기에 현역 의원 피살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이 변수로 더해졌다. 그동안 영국 내 여론조사를 보면 부유층일수록 EU 잔류를 지지하고, 노년층일수록 탈퇴를 원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런던에는 EU 잔류파가 많았고 영국 중동부에서는 탈퇴파가 많았으며, 북서부는 백중세가 유지됐다.

지금까지 탈퇴파(브렉시트 지지층)는 브렉시트를 이민자․난민 정책과 영국 고용시장 상황을 결합시켜 지지율을 이끌어내왔다. EU 때문에 받아들인 난민이 직장을 빼앗고 국내의 실업률을 높인다는 논리였다. 지난 5월 보리스 존슨 전 런던 시장과 마이클 고브 법무장관이 이민문제를 앞세워 탈퇴 지지율을 상승시켰다. 

 

 

 

지난해 1월부터 올해 3월까지 진행된 5개 온라인 여론조사 결과치를 평균해낸 브렉시트 여론 동향 그래프. 여론조사 초반에는 EU 잔류를 지지하는 의견이 10%가까이 앞섰으나 올해 1월 처음으로 여론이 역전됐다. 출처 크레딧스위스


 

여기에 시리아 난민들이 영국으로 대거 유입되는 사진을 사용한 브렉시트 투표 홍보용 포스터가 등장하면서 인종간, 그리고 계층간 갈등이 더해졌다. 해당 포스터는 ‘인종 차별’ 논란을 불러왔는데 영국 극우정당인 영국독립당이 6월16일(현지시각) 선보였다. 줄을 지어 슬로베니아 국경을 넘는 시리아 난민들의 사진 위에 붉은 글씨로 ‘한계점 - EU가 우리 모두를 무너뜨렸다. 우리는 EU로부터 자유를 되찾고 우리의 국경을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문구를 새긴 이 포스터는 공개되자마자 보수와 진보 진영을 가리지 않고 맹비난의 대상이 됐다. 나치 체제 때의 반유대인 홍보 영상과 흡사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니콜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행정수반은 이 포스터를 두고 “구역질 난다”고 비난했다. 해리엇 볼드윈 영국 재무부 장관은 “극도로 불쾌한 외국인 혐오”라며 맹공격을 퍼부었다. 이날 아침 웨스트민스터에서는 이 포스터가 공개되자마자 모든 하원의원들이 그 자리에서 비난과 야유를 퍼부었다.

브렉시트를 둘러싸고 영국 정가의 보수파와 영국 재정 정책의 중심인 영국중앙은행(영란은행, BOE) 간의 갈등도 깊어졌다. 마크 카니 영란은행 총재는 5월12일 분기별 인플레이션 보고서에서 “브렉시트 투표가 파운드를 급락시키고 세계 경제에 충격을 주면서 영국 경제를 기술적인 침체(technical recession)에 빠지게 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영국 재정정책을 결정하는 중앙은행의 첫 공식적인 발언은 영국 국내외의 관심을 모았다. 왜냐면 카니 총재는 브렉시트에 대해 중립적 입장을 취해왔기 때문이다.

카니 총재의 공식적인 입장은 브렉시트 찬성파 정치인들의 반발을 샀다. 브렉시트 지지파인 재무장관 출신의 노먼 라몬트와 니겔 로슨, 보수당 대표였던 이언 던컨 스미스 전 고용연금장관과 마이클 하워드는 공동 서한을 통해 브렉시트 국민투표에 대한 카니 총재의 견해를 비판했다. 중앙은행 관료가 특정 정책에 대해 입장을 밝히는 것은 국민투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버나드 젠킨 보수당 의원은 카니 총재에게 “국민투표일까지 공개 발언을 금지한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그러자 카니 총재가 즉각 반발했다. 카니 총재는 젠킨 의원에게 보내는 반박 서한을 영란은행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그는 “영란은행은 의회에 의해 운영상의 독립성을 부여 받은 기관으로서, 명확하게 정의된 구조 속에서 재정․통화 안정성을 추구하도록 돼있다. 영국 경제가 핵심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우리가 EU회원국일 때 지니는 효과를 평가해야할 의무가 있다”고 설명했다. 브렉시트가 영국 경제․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는 것은 영국중앙은행의 역할이며 정치논리로 이를 평가해선 안 된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영란은행의 독립성이 브렉시트 지지 측에 의해 침해받고 있다”며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도 카니 총재의 편에 섰다. 웨스트민스터 의회 역시 경계선이 그어지긴 마찬가지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