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개헌론’ 방아쇠를 당기다
  • 이승욱 기자 (gun@sisapress.com)
  • 승인 2016.06.20 11:23
  • 호수 1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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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의장 등 개헌론자들 잇따라 개헌론 제기

“개헌 논의는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이나 다름없다. ‘87년 체제’의 산물인 지금의 헌법을 시대상황에 맞게끔 바꿔 보자는 취지는 공감한다. 그런데 개헌 논의가 시작되면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하나둘이 아니다. 게다가 개헌을 추진하다 자칫 삐걱대면 논의를 주도했던 이들이 받는 정치적 상처도 클 수밖에 없다. 그런 판도라의 상자를 누가 함부로 열 수 있겠나.” 

 

지난 19대 국회 시절 이재오 당시 새누리당 의원이 개헌 추진 단체를 결성하는 등 개헌 논의를 위한 가시적인 움직임을 보일 때 만난 여당 중진 의원의 말이다. 대통령제로 인한 과도한 권력 집중이 논란거리가 될 때마다 개헌 필요성을 제기하는 주장이 빈번히 나왔다. 하지만 앞선 여당 중진 의원의 말처럼 개헌 논의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제대로 열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 점에서 최근 정치권에서 일고 있는 개헌 논의의 움직임은 과거와 그 무게감이 다르다. 비현실적으로만 여겨졌던 개헌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것이다. 개헌 논의 진원지는 20대 국회다. 

 

 

6월1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가전략포럼이 주최한 ‘개헌, 우리 시대의 과제’ 특강이 열리고 있다.

 

정세균 의장 “개헌은 의지의 문제” 

 

개헌 논의가 급물살을 탄 것은 정세균 국회의장이 취임하면서다. 정 의장은 6월13일 개원사에 이어 16일 취임 기자회견에서도 개헌 필요성을 연거푸 강조하면서 정치권을 뒤흔들어 놨다. 그는 “지금까지 개헌 논의가 지지부진했던 이유는 권력의 관점에서만 유불리를 따져왔기 때문”이라면서 “개헌은 이제 더 이상 논의의 대상이 아니라 의지의 문제”라고 말했다. 정 의장은 구체적인 논의 시한까지 언급했다. 정 의장은 “20대 국회에서 개헌 문제가 매듭지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면서 “시기를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20대 국회 전반기에 하자는 것이 희망사항”이라고 말했다. 

 

정 의장의 연이은 개헌 관련 발언이 단순히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는 점은 국회 사무총장 인선에서도 드러났다. 정 의장은 ‘개헌 전도사’로 불리는 우윤근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신임 국회 사무총장으로 내정했다. 정 의장의 개헌 관련 발언에 힘이 실리는 인선이었다. 우윤근 내정자는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 시기를 내년 4월 재보선 때로 규정하는가 하면, 국회 내 개헌특위 구성을 해야 한다는 등 정 의장보다 한걸음 나간 언행을 보이고 있다.  

 

국회 내에서 개헌 논의가 급물살을 타는 데는 제3당인 국민의당이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것도 한몫하고 있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개헌 논의는 블랙홀이 아닌 미래를 향한 문이고, 지금이 개헌 논의의 적기”라고 주장했다. 야당 몫의 국회부의장으로 선출된 박주선 국민의당 의원 역시 개헌 논의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일부 이견이 존재하지만 ‘여소야대(與小野大)’ 국면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고 있는 국민의당이 적극성을 보이면서 개헌 추진에 더욱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일부 대권 잠룡들도 개헌 논의에 발을 담그는 형국이다. 개헌 논의는 2017년 말 대선 전까지 정국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사안이다. 여권의 대권 잠룡으로 분류되는 남경필 경기지사는 “개헌의 권력구조 개편이 중요하다. 정치가 이대로 가선 경제도 잘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수도권 광역단체장으로서는 다루기 민감한 소재인 수도(首都)의 세종시 이전을 위한 개헌까지 언급했다. 개헌은 미래 권력의 구조를 재편하는 정치적 의제다. 결국 나머지 대선 예비후보들도 자의든 타의든 개헌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 그만큼 향후 개헌 논의가 확산될 수밖에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6월13일 오전 20대 국회 개원식에서 축하 연설 후 정세균 국회의장의 배웅을 받으며 국회를 나서고 있다.

이해 맞물린 개헌 논의 관건은 ‘시간’ 

 

개헌 논의의 일차적인 장애물은 집권여당인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의 심중(心中)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1월 기자회견에서 ‘개헌 블랙홀’이라고 언급하는 등 개헌 논의 자체에 대해 시종일관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정진석 원내대표도 6월16일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개인적으로 ‘87년 체제’가 한계에 도달했다는 점을 공유하고 있다”면서도 “지금 곧바로 개헌 논의에 들어갈 만큼 국민적 관심과 합의가 이뤄져 있는가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며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새누리당 비박계 일각에서 공개적으로 개헌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지만, 대통령의 심중을 중시하는 친박(親박근혜)계가 장악한 현재 당내 역학구도에선 개헌 논의에 선뜻 참여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새누리당 혁신비대위가 20대 총선을 앞두고 탈당했던 유승민 의원 등 탈당파를 복당시키기로 결정하자 친박계와 비박계가 또 충돌했다. 청와대에 끌려가고 있는 새누리당이 박 대통령이 금기시하는 ‘개헌’이라는 두 글자를 쉽게 꺼내기는 쉽지 않은 양상이다. 

 

그러나 정작 개헌 논의에서 더 큰 난관은 ‘시간’이다. 개헌을 현실화하기 위해 남은 시간은 길게 잡아도 2017년 대선까지 1년6개월가량이다. 지금까지 정치권에서 거론되고 있는 개헌론은 과도한 권력이 집중되는 대통령제를 개선하기 위한 권력 분점에 맞춰져 있다. 하지만 이 또한 대통령은 외치(外治), 총리는 내치(內治)를 나눠 맡는 ‘이원집정부제’, 그리고 대통령이 재임할 수 있는 ‘대통령 4년 중임제’, 대통령과 부통령 후보가 러닝메이트로 출마하는 ‘정부통령제’ 등 다양한 형태가 거론되고 있다. 거기다 이번 기회에 중앙과 지방정부 간 분권, 경제민주화 반영 등을 통합적으로 논의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쏟아지고 있다. 개헌 필요성이 국민적인 공감을 얻는다고 하더라도, 한정된 시간 안에 진행하는 개헌 논의가 자칫 탁상공론으로 그칠 가능성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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