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공항 전쟁 2017 대선 판도 흔든다
  • 남상훈 세계일보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6.21 10:21
  • 호수 1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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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 의원들, 밀양 선정 시 TK와 정치적 결별 태세

 

 

 

6월14일 부산 중구 광복로에서 열린 가덕 신공항 유치 기원 궐기대회(왼쪽 사진)와 2011년 1월26일 대구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에서 열린 ‘영남권 신공항 밀양 유치 범시도민결사추진위원회 발대식’
정치권의 영남권 신공항 유치 전쟁이 새누리당 텃밭인 영남을 두 동강 냈다. 오는 6월24일쯤으로 예정된 영남권 신공항 입지 선정 발표를 앞두고 부산 의원과 일부 경남 의원들은 가덕 신공항을, 대구·경북 의원들은 지리적으로 인접한 밀양 신공항을 지지하고 있다. 신공항을 둘러싼 집안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최근 부산 가덕도보다 경남 밀양 유치 가능성이 높다는 ‘밀양 낙점설’이 나돌자 부산 의원들이 강력 반발하고 있다. 10년 안에 포화상태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는 김해공항을 보완할 신공항의 입지를 두고 ‘TK(대구·경북)와 PK(부산·경남)는 수년째 사활을 건 유치경쟁을 지속해왔던 터다.

 


지난 6월1일 부산지역 의원들이 ‘김해공항 가덕 이전 시민추진단’과 함께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를 면담하자, 이튿날 대구지역 의원들이 정 원내대표를 찾아가 맞불을 놓았다. 부산시와 부산지역 새누리당 의원들의 저항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이들은 6월9일 서울 여의도에 있는 호텔에서 당정협의를 열었다. 10조원 이상의 국비가 투입될 영남권 신공항 입지선정 발표를 앞두고 정부를 압박하기 위한 시위 성격이었다. 서병수 부산시장은 “(입지 선정 과정의) 불공정한 증거가 드러날 경우 그 즉시 불복을 선언할 것”이라며 선전포고를 했다. 그는 ‘보이지 않는 손’을 거론하며 “국토부의 입지 선정 정책 라인에 대구 출신 인사들이 많이 포함돼 있어 부산시민들이 의구심을 갖고 있다”고 경고했다.


‘밀양 낙점설’에 부산 의원들 강력 반발


서 시장은 이어 “혹시 다른 정치적인 이유로 결정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에 부산시민들은 진정하지 못할 정도”라고 밝혔다. 부산에선 가덕도 신공항 유치가 무산되면 민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은 셈이다. 서 시장은 2014년 지방선거에서 “부산이 선정되지 않으면 시장직을 사퇴하겠다”고 공약해 배수진을 친 상태다.


대구 의원들은 부산 의원들의 집단행동에 강한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윤재옥 새누리당 의원은 “객관적으로 공정하게 정부에서 결정할 수 있도록 유치경쟁을 하지 않는 것으로 합의했으니까 그 기조를 당 차원에서 지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부산 의원들이 시위를 통해 정부의 심사에 압력을 가하는 행위는 부당하다는 것이다.


영남 정치권의 신공항 전쟁은 여권의 차기 대통령선거 구도와 뗄 수 없는 함수관계를 갖고 있다. 친박(친박근혜)계는 충청 출신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내세워 ‘TK·충청 연합론’을 펴는 대선 전략을 구상하고 있다. 친박이 8월 전당대회에서 최경환 의원을 밀어 당권을 장악한 뒤 반 총장을 대선 후보로 사실상 추대하는 방식으로 갈 것이란 시나리오도 떠돈다.


방한한 반 총장이 5월29일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TK지역을 방문한 것도 친박의 행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반 총장의 TK행은 친박이 구상해온 ‘TK·충청 연합론’ 실현에 시동을 건 것이란 관측이다. 


신공항이 밀양으로 결정될 경우 반기문 대망론의 토대인 ‘TK·충청 연합론’이 탄력을 받을 것이란 관측이다. 한 친박 의원은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여러 경쟁력을 갖춘 밀양 신공항이 선정되는 것이 당연하고, 정치적으로 보면 충청을 기반으로 한 반 총장의 정치적 기반을 TK로 확장시키는 데도 밀양 신공항 선정이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친박의 정치적 계산은 박근혜 정부 후반기로 접어들며 TK와 충청 의원을 주축으로 활기를 띠고 있는 ‘친박 패권주의’와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당 내외 세력 규합을 통해 박 대통령이 퇴임 이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친박 핵심인 조원진 의원이 4·13 총선 때 “박 대통령이 대구에 선물 보따리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한 것은 이미 박근혜 정부의 마음이 (대구와 가까운) 밀양으로 기운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기도 했다. TK를 영원한 박 대통령의 우군으로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 작용할 것이란 얘기다.


가덕도가 신공항으로 낙찰될 경우 박 대통령의 임기말 정권 운영에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는 친박의 우려도 작용하고 있다. 친박 인사는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높은 TK가 가덕도 신공항 선정으로 등을 돌린다면 임기말 국정운영이 불가능해지는 레임덕에 급속히 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지역 의원들은 밀양 신공항 선정 시 TK와의 정치적 결별을 불사하겠다는 결사항쟁의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단순한 정치적 압박으로 들리지 않는다. 김세연 부산시당 위원장 직무대행은 “새누리당이 신공항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하면 부산에서 완전한 지지 철회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밀양 선정되면 ‘반기문 대망론’도 탄력”


야당과 제3세력과의 결합설도 나온다. PK발(發) 정계개편론은 두 가지로 분류된다. 영호남 화합 차원에서 PK(부산·경남)와 호남을 하나로 묶자는 ‘PK·호남 연대론’과 중도 성향의 정치세력을 총결집하는 ‘중도세력 빅텐트론’이다. 빅텐트론은 PK를 중심으로 안철수 대표의 국민의당, 새누리당 내 비박(비박근혜)계, 더불어민주당 비노(비노무현)계를 총망라하는 ‘신 3당 합당’이다. 과거 김영삼(민주), 노태우(민정), 김종필(공화)의 3당 합당을 뛰어넘는 정치권의 빅뱅을 예고하는 시나리오다.


영남 정치권의 균열을 야기한 신공항 전쟁은 19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부산시는 김해공항의 포화상태를 대비해 신공항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부산도시기본계획에 처음 썼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후 2006년 신공항 검토 지시를 내렸다. 이때만 해도 신공항 문제는 부산지역의 현안이었다.


그러나 집안싸움으로 비화하기 시작한 것은 2007년 대선에서 경북 포항 출신의 이명박 전 대통령이 ‘영남권 신공항’을 약속하면서다. 김해공항 확장용이 아니라 유치 지역을 지정하지 않으면서 유치 가능성을 부산과 대구, 경북, 울산, 경남까지 확대했다. 당시 5개 지자체장은 신공항 건설을 위한 공동건의문을 채택했고 이 전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였다. PK는 바다를 메워 공항을 만들어야 하는 가덕도를, TK는 산을 깎아 건설하는 밀양을 선택하면서 민심이 들끓기 시작했다.


영남 정치권이 가세하면서 PK와 TK는 10조원 사업을 따내기 위해 죽기 아니면 살기로 덤볐다. 2011년 3월 이 전 대통령은 전면 백지화를 선언했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영남이 분열되면 정권 재창출에 불리해질 것이란 정치적 판단에서다. 하지만 신공항 전쟁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이 2012년 대선에서 신공항을 약속하면서 신공항 전쟁이 다시 발발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6월 프랑스 파리공항공단엔니지어링에 용역을 맡겼다. 그 결과는 1년이 지난 6월 말께 나올 예정이다.


신공항 전쟁이 내년 대선판을 흔들 변수로 부상했다. PK와 TK지역의 ‘동조화(같은 후보 지지)’ 현상을 크게 약화시킬 수 있어서다. 1992년 14대 대선에서 PK 출신인 김영삼 당시 민자당 후보가 “우리가 남이가”라며 대구시민의 지지를 호소한 뒤 각종 선거에서 나타났던 TK·PK 연대가 깨질 위기에 봉착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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