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Insight] 북한에도 ‘모바일 혁명’ 일어날까
  •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6.23 14:27
  • 호수 1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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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북한, 휴대폰 370만 대 보급”…개혁·개방 앞당길지 주목

 

북한 평양시내에서 주민들이 휴대폰을 사용하고 있다. 국가정보원은 2015년 기준 북한의 휴대폰 보급량이 370만 대에 이른다고 밝혔다.

북한의 휴대폰이 진화하고 있다. 2002년 첫 서비스 시작 때 ‘손전화’로 선보인 이후 최근엔 ‘평양타치’란 이름의 스마트폰으로까지 변신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에서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평양타치는 화면 액정을 살짝 건드리는(터치) 방식으로 작동하는 최신형 스마트폰이다. 젊은이들이나 일부 부유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면서 2013년 출시된 ‘아리랑’폰을 대체해가고 있다는 게 북한 내부 사정에 밝은 인사들의 귀띔이다. 지난 5월 북한 노동당 7차 대회 때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이 스마트폰을 손에 든 채 등장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김정은도 집무실 책상 위에 휴대폰을 올려놓고 회의를 주재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활용범위도 넓어지고 있다. 단순히 음성통화를 하거나 짧은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던 데서 전자결제와 모바일 거래 기능까지 가능해졌다는 게 북한 당국의 설명이다. 모바일로 물건을 살 수 있는 쇼핑몰 ‘옥류’에서 상품을 고른 뒤, 지불카드인 ‘나래’로 계산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북한 측 영상자료에 따르면, 평양 금성식료공장의 단팥빵은 한 개가 78원40전에 거래되고 오렌지주스나 우유·초콜릿 등을 휴대전화를 이용해 살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우리처럼 인터넷을 이용한 상거래나 금융결제가 이뤄지는 것은 아니지만 초보적 형태의 전자상거래가 도입된 것으로 볼 수 있어 북한 경제를 들여다보고 있는 전문가들은 추이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카카오톡 등 사용 주민은 반역자로 체포”

 

스마트폰 방식의 휴대폰이 보급되면서 카카오톡 같은 소통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북한을 자주 방문하는 한 재미교포는 최근 서울에서 평양의 지인과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고 말했다. 평양의 휴대폰이 와이파이에 연결돼 있기만 하면 외부와 소통하는 건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한국과 서방세계에서 쓰이는 앱을 깔거나 사용하는 건 북한에서 불법이다. 특히 김정은이 북한으로 밀반입된 중국 휴대폰 등을 이용한 내부 정보유출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6월 초 대북 전문 매체인 데일리NK는 “최근 카카오톡·라인 등을 사용하는 주민들을 반역자로 현장에서 바로 체포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적발되면 꼼짝없이 적선(敵線) 연계 간첩혐의로 수용소에 끌려가야 한다”고 전했다. 

 

양적인 면에서도 북한의 휴대폰 보급은 폭발적 추세다. 지난해 10월 국가정보원은 국회 정보위를 통해 북한에 370만 대의 휴대폰이 보급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의 인구가 2400만 명인 점을 고려하면 놀라운 수치다. 북한에서 휴대폰이 태동한 건 태국 업체인 록슬리 퍼시픽의 이동통신사업자 선넷(Sunnet)이 2002년 평양에 2G 방식의 서비스를 시작하면서다. 당시엔 노동당과 내각 등의 고위 간부들을 중심으로 서비스가 이뤄졌다. 또 무역 등 외화벌이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도 인기를 끌었다. 대도시를 중심으로 2만 명 안팎이 이용하는 극히 제한적 수준에 머물렀다. 이러다 보니 휴대폰은 권력과 부를 상징하는 수단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북한의 휴대폰이 대중화의 길로 들어선 건 2008년 지금과 같은 3G 방식의 이동통신 서비스가 나타나면서다. 당시엔 이집트의 통신사 오라스콤이 팔을 걷어붙였다. 북한 체신성과 합작해 고려링크라는 통신사를 평양에 세웠고 이를 통해 품질이 향상된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억눌렸던 휴대폰 사용 욕구가 되살아나면서 2012년 2월 보급대수 100만 대를 돌파하는 폭발적 증가세를 이뤘다. 이듬해 5월 200만 대를 넘긴 휴대폰 숫자는 현재 400만 대에 육박하거나 이를 넘어섰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휴대폰이 한동안 퇴출당했던 ‘흑역사’도 있었다. 2004년 4월 평북 용천역에서 대폭발 사고가 발생했을 때 북한 국가안전보위부가 정밀조사를 벌인 결과, 휴대폰을 이용해 원격조종을 했다는 점이 밝혀졌다고 한다. 당시 폭발은 중국 방문을 마치고 국경도시 신의주 지역을 지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겨냥한 것이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이때부터 4년 정도 북한 전역에서 휴대폰 사용은 엄격히 금지됐다.

 

 

 

중국에서 휴대폰 전량 수입

 

폐쇄적인 북한 체제의 특성상 휴대폰 370만 대 보급은 이례적인 현상이란 게 우리 정부 당국과 대북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감청활동 등 철저한 통제체제를 가동한다고는 하지만 수백만 대의 휴대폰을 일반주민들까지 이용한다는 건 체제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는 측면에서다. 북한은 남한 영화나 드라마·가요를 비롯한 한류문화의 유입을 철저히 막고 있고, 적발 시 가혹하게 처벌하고 있다. 그렇지만 유독 휴대폰만큼은 통제를 풀고 비교적 느슨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를 두고 장롱 속 화폐를 끌어내기 위한 북한 당국의 고육책이란 지적이 제기된다. 휴대폰 판매를 통해 정권 차원의 대규모 건설공사나 체제유지를 위한 자금을 마련하고 있다는 얘기다. 북한은 중국에서 휴대폰을 전량 수입하고 있다. 완제품에 북한 브랜드를 붙여 판매하는 방식이다. 대북정보 관계자는 “김정은이 북한의 휴대폰 공장을 방문한 사진이 노동신문에 실린 적이 있지만 조작에 가깝다”며 “상표부착이나 포장을 바꾸는 수준의 작업라인에 서서 마치 휴대폰을 자체 생산하고 있는 것처럼 비치게 연출한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산 휴대폰은 50달러 안팎에 수입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당국은 이를 200~300달러에 주민들에게 공급하고 있다. 통신요금을 제외하고도 최소 5억5500만 달러에서 9억2500만 달러에 이르는 차액을 남겼을 것이란 계산이 가능하다.

 

대중화 수준으로 보급됐지만 북한의 통신요금은 만만치 않은 수준이다. 요금제는 분기(3개월)마다 북한돈 3000원을 내면 한 달에 200분의 통화를 할 수 있게 하는 방식이다. 추가 통화를 하려면 10만~20만원의 선불카드를 따로 구입해야 한다. 일반 노동자의 평균 월급이 3000원이란 점을 감안할 때 굉장히 큰 부담이다. 

 

휴대폰 보급 확산이 김정은 체제의 개혁·개방을 앞당기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주민들 사이의 소통이 확대되고 무엇보다 외부세계의 정보에 눈뜨게 될 것이란 측면에서다. 하지만 북한의 통제체제가 여전히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고, 주민들도 이를 의식해 체제 순응적 활용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휴대폰을 통한 자유화 물결인 이른바 ‘M(모바일) 혁명’은 쉽지 않을 것이란 견해도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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