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우 기자의 If] ② “한 달 쉬고 싶어요” 직장인에게 방학이 있다면?
  • 이민우 기자 (mwlee@sisapress.com)
  • 승인 2016.07.04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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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하지 않으면 삶은 부패한다. 그러나 영혼 없는 노동은 삶을 질식시킨다.” 20세기 실존주의 문학의 대표작가인 알베르 카뮈(Albert Camus)는 이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독일의 철학자인 마르크스도 누구나 창조적 노동을 통해 자신을 더욱 발전시켜 나갈 수 있지만, 소외된 노동으로 인해 비인간적인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양면성을 강조했습니다. 

 


거창하게 글을 시작한 이유는 지난 부동산 관련 글에 이어 노동 이슈를 다루기 위해서입니다. 노동 이야기를 하지 않고 삶의 질, 행복 등을 이야기할 수 없을 테니까요. 카뮈나 마르크스의 말은 이 글을 관통하는 문제의식과도 같습니다. ‘일과 행복’ 사이의 어느 지점을 찾기 위한 노동 관련 글은 이번뿐 아니라 앞으로도 여러 차례 다루고자 합니다.

 

 



만성피로 쌓인 직장인 97.6% “방학을 달라”

한국의 직장인들은 아마도 불행한 듯합니다. 언론에서 나오는 수치마다 부정적 통계들이 넘쳐납니다. 지난 6월 한 언론사의 여론조사에서 ‘향후 5년 이내에 이직을 계획하고 있다’는 응답은 78.7%에 달했습니다. 지난해 10월 취업포털의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47.1%는 현재 재직 중인 회사에 만족하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만족 조건으로 36.5%는 연봉 문제를 꼽았지만, 복지나 교육 제도 개선도 27.9%로 뒤를 이었습니다.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 커질수록 ‘쉬고 싶다’는 욕구는 더욱 강해지는 추세입니다. 잡코리아가 6월28일 직장인 72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직장인들에게 ‘방학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묻자 97.6%의 응답자가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많이 자고 쉬어도 체력 회복이 안 된다(64.4%), 책상에 앉아 있지만 업무 진행은 하나도 안 된다(40.3%) 등이 이유였습니다.

 

 


이 조사 결과는 사실상 현재의 연차 휴가로는 휴식에 대한 욕구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현재 재직기간 1년 이상인 직장인들에게는 15일 이상의 연차 휴가가 보장돼 있습니다. 과거에는 연차 휴가조차 눈치를 봐야 하는 시절도 있었지만, 연차 휴가를 쓰지 않으면 수당을 지급하도록 하는 등의 정책적 노력으로 최근에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직장인 97.6%가 공감하는 방학 제도를 도입할 수는 없는 걸까요. 물론 현재도 회사와 노동조합의 노사협약, 회사와 개인의 취업규칙 등을 통해 도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시스템은 회사와 직원이 동등한 위치에서 협상할 수 없는 구조입니다. 이럴 경우 취업규칙이나 노사협약보다 우선 적용되는 근로기준법에 명시하는 방안을 고민할 수 있습니다.

 

  

 

 

원칙은 ‘무급(無給)’, 선택권은 근로자에게

하지만 직장인들이 무작정 쉬도록 보장하는 것은 회사 입장에서는 큰 부담입니다. 경영계의 반발이 불 보듯 뻔한 상황입니다. 때문에 양측의 손해를 최소화하는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정책적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유급휴가(월급을 지급하는 휴가)는 법적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그 이상의 휴가는 ‘무급(無給)’을 원칙으로 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물론 무급으로 한다고 회사 손해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퇴직급여 충당금이나 성과급, 노무관리비 등은 조금 더 늘어날 수도 있습니다. 쉬고 싶은 근로자와 수익을 내려는 회사 양측 모두 한 발씩 양보해 중간 지점을 찾자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무급휴직 신청권이 전적으로 근로자에게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회사에서 근로자를 강제로 쉬게 한다면 또 다른 사회 문제를 유발하게 됩니다. 직장인을 위한 제도가 회사 인건비를 절감하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어디까지나 근로자 본인이 무급인 것을 알고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쉬려는 사람과 월급을 계속 받아야만 하는 사람에게 선택지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최근에 비슷한 제도들이 속속 도입되고 있습니다. 지난 6월21일 국무회의에서는 5년 이상 재직한 공무원이 최대 1년까지 무급휴직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는 ‘공무원 임용령 개정안’ 등을 의결했습니다. 다만 자기개발 계획서를 제출한 뒤 심사를 거치도록 했습니다. 일종의 허가제로 운영되는 셈입니다. 일부 사기업에서는 출산·휴직에 무급휴가를 붙여 쓸 수 있도록 하는 사례도 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제도들의 한계도 있습니다. 보편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아주 극소수의 직원만 사라지면 같은 조직 내의 업무 부담이 늘어난다는 점입니다. 기간도 길어 경제적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돈 많은 사람들을 위한 정책이라는 우려도 나옵니다. 실제로 제도를 도입하려면 공공기관부터 300인 이상 기업, 100인 이상 기업 등으로 순차적인 대상 확대가 이뤄질 공산이 큽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합니다. 우선 ‘보편화’가 이뤄져야 합니다. 회사 조직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할 수 있을 정도로 활성화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아주 가끔 누군가 출장을 가서 자리를 비우는 경우와 한 자리가 꾸준히 비어 있는 경우 회사의 대안은 확연히 다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3년 이상 재직한 경우 매년 1개월씩 쉴 수 있도록 제도를 도입한다고 가정합시다. 대상자의 절반이 ‘무급휴직’을 선택할 경우 꾸준히 4~5%의 인적 공백이 발생합니다. 이 경우 일자리 창출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도 마련되어야 합니다. 직원의 무급휴직으로 절약된 인건비를 신규 채용으로 전환하기 때문에 회사 입장에서도 크게 무리가 되지 않습니다. 

 

 



“근로시간 축소보다 고용효과 커…회사 강제 부작용 우려도”

직장인 무급휴직 제도는 실업률 해소에도 기여할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시간제 근로제 확대를 통해 일자리가 확대되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현재 직장인들에게 쉴 기회를 부여하고 신규 일자리도 창출하는 일거양득인 셈입니다. 

 

 


현재 전체 종사자 가운데 300인 이상 대기업에서 근무하는 근로자는 233만명(2014년 기준)입니다. 이 가운데 무급휴직 대상의 절반이 1개월의 무급휴직을 택한다면 산술적으로 매년 약 7만~9만개의 상시적인 일자리 공백이 발생합니다.

 

 


100인 이상 기업까지 대상을 확대할 경우 고용 유발 효과는 더욱 커집니다. 100인 이상 사업체에서 일하는 근로자는 423만명까지 늘어납니다. 대상이 늘어났기 때문에 15만~18만개의 업무 공백이 생깁니다. 이를 채우기 위해 그만큼 신규 고용이 이뤄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외에도 부수 효과는 다양합니다. 직장인들이 장기간의 무급휴가 동안 재충전을 통해 업무 효율을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평일에 일하고 주말에 쉬는 직장인들이 보다 가족들에게 집중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는 현 정부의 정책 방향과 일치하는 셈입니다. 내수 활성화 등의 경제 효과 또한 기대됩니다. 지난 5월6일 임시공휴일에 직장인 절반이 하루 쉬는 데 경제효과가 1조3000억원에 달한다고 했으니, 직장인들이 돌아가며 한 달씩 쉬면 그 효과는 더욱 클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지만 우려되는 부분도 적지 않습니다. 우선 신청권을 근로자에게 준다 하더라도 회사에서 악용할 여지가 충분하다는 점입니다. 부서별로 휴가 일정을 지정하라거나 강제로 장기간 쉬게 하는 방식입니다. 과거 경영 사정이 악화될 경우 고통분담 차원에서 순환휴직을 실시하면 임금의 일부를 지원했습니다. 하지만 이 제도를 악용할 경우 무급으로 인건비를 아끼면서 순환휴직을 실시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회사 사정을 이유로 무급휴가를 권고 받는 사례는 현재도 많습니다. 한 취업포털 사이트가 자사 회원 623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재직 중인 회사에서 경기침체, 구조조정 등의 이유로 직원들에게 휴가를 독려한 적 있다’는 응답자가 30%에 달했습니다. 또 고통분담 휴가를 가게 된 근로자의 절반 이상은 무급이었습니다. ‘회사 사정이 좋아질 때까지’ 무기한 휴가를 제안 받은 경험자도 14%나 됐습니다.

 

 


과거 무급휴직 아이디어를 국회에서 근무하는 보좌진들에게 이야기한 적 있습니다. 열 곳의 의원실을 찾아가면 전부 ‘좋은 아이디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사회적 요구가 충분하지 않다”거나 “한 달 월급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라고 말합니다. 이들에게 저녁이 있는 삶, 주말이 있는 삶, 방학이 있는 삶은 아직 먼 훗날의 이야기로 여겨지는 것 같습니다. 정부 정책의 방향은 결국 사회 구성원들의 선택을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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