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는 않고 ‘감사’만 연발한 회계법인
  • 송응철 기자 (sec@sisapress.com)
  • 승인 2016.07.06 17:03
  • 호수 1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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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양대 회계업계 안진·삼일에 대한 고강도 검찰수사 초읽기… 회계업계 “터질 게 터졌다”

 

 

안경태 삼일PwC 회장

“조선업계뿐만 아니라, 일부 금융권에서도 이미 2014년부터 인지하고 있던 사실이다. 다만 언제 터질지, 그 시점만 지켜보고 있던 상황이다. 이런 사실을 회계사가, 그것도 국내 회계업계를 양분하는 대형 회계법인이 몰랐을 리가 없다고 본다.” 한 대형 조선사 직원은 대우조선해양 사태와 관련해 제기된 회계법인 딜로이트안진(안진)의 책임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또 이번 사태의 일차적 원인은 대우조선해양의 경영자와 실무자들이겠지만, 일을 키운 책임의 상당 부분은 회계법인에 있다는 의견도 내놨다. 

 

 

안진, 대우조선 이어 롯데 수사서도 거론

 

대형 회계법인 출신 회계사도 이런 주장에 무게를 실었다. 다음은 그의 말이다. “일단 대우조선해양의 ‘공사 진행률 조작’은 분식회계의 전형적인 수법이다. 또 재무제표상으로도 석연찮은 부분을 어렵지 않게 포착할 수 있다. 영업현금흐름은 통상 영업이익보다 높게 유지돼야 한다. 그런데 최근 대우조선은 수년에 걸쳐 영업이익의 경우 흑자를 기록한 반면, 영업현금흐름은 계속 마이너스였다. 그럼에도 감사 과정에서 분식회계를 잡아내지 못한 것은 단순한 실수로 치부하기 어렵다.”

 

대형 회계법인의 책임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기업의 부실을 감시하고 경고해야 할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힘을 보태준 정황도 나타나고 있어서다. 앞서 언급한 대우조선해양 사태와 관련해서만이 아니다. 안진은 롯데그룹 수사 과정에서도 거론되고 있다. 또 다른 대형 회계법인인 삼일PwC(삼일)는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현 유수홀딩스 회장)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사명이 거론되고 있다. 국내 회계업계의 ‘양대산맥’으로 분류되는 2곳이 동시다발적으로 검찰의 수사선상에 오른 것이다. 다만 현재 검찰 수사의 초점이 기업에 맞춰져 있는 만큼 회계법인들이 당장 수사의 핵심으로 지목된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사정기관 안팎에선 향후 강도 높은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먼저 안진은 6월8일 부패범죄특별수사단(특수단)의 대우조선해양 수사와 관련해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됐다. 이날 검찰은 검사와 수사관 150여 명을 동원해 서울 남대문로 대우조선해양 본사와 경남 거제시 옥포조선소, 서울 여의도동 산업은행 본점 및 안진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였다. 안진은 지난해 5조원이 넘는 적자를 낸 대우조선에 대한 회계감사를 벌인 결과, 2011년부터 줄곧 ‘적정’ 의견을 낸 바 있다. 그러다 3월이 돼서야 2015년 추정 영업손실 5조5000억원 가운데 2조여원을 2013년과 2014년 재무제표에 반영했어야 한다고 밝혔다. 감사 과정에서의 오류를 시인한 셈이다. 

 

특히 안진은 대우조선 사태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송가(SongaRig)’ 프로젝트 회계처리에 ‘적정’ 의견을 내기도 했다. 대우조선은 2011년 노르웨이 업체 송가 오프쇼어로부터 대규모 해양플랜트 공사를 수주한 바 있다. 이후 100차례가 넘는 잦은 설계변경과 재시공 반복으로 원가가 급증했다. 대우조선은 이를 미청구 공사대금으로 과다계상한 의혹을 받고 있다. 2013년과 2014년 1조원대 손실이 발생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안진은 업무상 발생한 실수라는 입장이다. 전체 공사예정원가와 장기매출채권의 회수 가능액을 잘못 추정한 결과라는 것이다. 

 

 

서울 중구 대우조선해양 사옥

 

 

삼일, ‘최은영 수사’ 이어 현대상선 의혹도

 

안진은 또 롯데그룹 수사 과정에서도 등장한다. 서울중앙지검 특수4부와 첨단범죄수사1부는 6월15일 롯데그룹 계열사들과 함께 안진에 대한 압수수색도 진행했다. 검찰은 롯데그룹 계열사들의 부적절한 인수합병(M&A) 과정에서 안진이 ‘역할’을 했다는 단서를 잡고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호텔롯데는 2013년 그룹 계열사들로부터 부여리조트와 제주리조트를 시세보다 현저히 낮은 가격에 인수해 수백억대 부당이득을 얻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당시 부여리조트와 제주리조트의 자산가치와 합병 금액을 평가한 곳이 바로 안진이었다. 검찰은 이 회계법인이 롯데 측의 요구를 받고 저가 인수의 명분을 제공했는지 확인키 위해 당시 평가 자료를 분석 중이다. 검찰은 안진이 롯데그룹의 또 다른 M&A에 관여한 단서도 잡고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삼일에도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에 대한 수사와 관련해 검찰의 칼끝이 정조준됐다. 최 전 회장은 한진해운이 자율협약 신청으로 주가가 급락하기 직전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본인과 자녀들의 주식 전량을 매각해 손실을 피한 혐의를 받고 있다. 삼일은 올해 초 한진해운을 예비 실사한 바 있다. 안경태 삼일PwC 회장은 이를 통해 입수한 미공개 정보를 최 전 회장에게 전달한 인물로 지목되고 있다.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은 최 전 회장이 안 회장과 연락을 주고받은 뒤 주식을 매각한 정황을 포착하고, 지난 5월 삼일과 안 회장의 집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안 회장은 이후 2차례에 걸쳐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돼 조사를 받기도 했다. 검찰은 최 회장에 대한 수사를 마무리하는 대로 안 회장이 관련 정보를 제공했는지에 대한 수사 여부를 검토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장 수사가 진행되고 있지는 않지만, 삼일은 현대상선에 대한 허위 회계감사 의혹도 받고 있다. 이 회계법인은 3월10일 감사보고서를 통해 ‘기업으로서 존속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은 바 있다. 그러나 현대상선은 그로부터 불과 8일이 지난 시점에 자금난으로 채권단에 자율협약을 신청했다. 이후 채권단 실사 과정에서 용선료 인하 협상에 성공하지 못할 경우 법정관리로 가야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회계업계에선 터질 게 터졌다는 분위기다. 회계법인이 감사 대상의 편의를 봐준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까닭에서다. 대형 회계법인 출신 회계사는 “최근 언론에 보도되는 회계법인들의 일탈은 정도가 심한 경우”라고 전제하면서도 “감사 대상 기업의 요구를 회계감사에 일부 반영하는 것은 관행적으로 벌어져 온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 회계사는 또 “사실 회계감사 수수료는 그리 후한 편이 아니다”라며 “그러나 자문 등 수십억원 규모의 컨설팅 일감을 수주하기 위해선 어떻게든 기업의 입맛에 맞출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검찰은 일단 기업 수사에 주력한다는 입장이다. 또 아직까진 회계법인들의 뚜렷한 범죄 혐의도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분식회계 등 비리에 공모하거나 묵인한 정황이 발견될 경우 회계법인 및 회계실무자들도 형사처벌 대상에 포함시키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검찰 안팎에선 회계법인들의 책임론이 불거진 만큼 향후 고강도 수사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를 진행하면서 여론을 반영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사실”이라며 “지금 정황상으론 회계법인들은 수사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회계법인 고르는 기업이 甲…회계법인은 구조적 乙

 

 

여의도 IDS홀딩스 사무실이 입주해 있는 IFC몰

 

 

 

회계법인은 ‘자본시장의 파수꾼’으로 불린다. 기업을 감시하고 견제한다는 의미에서다. 그러나 국내 회계법인들은 이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실제 한국은 2015년 스위스 국제경영개발(IMD)의 회계투명성지수 평가 결과, 평가 대상 61개국 가운데 60위에 오르는 불명예를 안았다. 회계업계의 권익을 대변하는 측에선 그 이유에 대해 회계 보수가 적기 때문이라는 볼멘소리를 하기도 한다. 보수가 적어 투입할 수 있는 인력이 제한적이다 보니, 회계감사의 정밀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에선 회계 보수를 늘려도 부실감사는 여전할 것이라는 지적이 비등하다. 기업이 회계법인을 선택하고 수수료를 제공하는 입장이다 보니, ‘갑을(甲乙)관계’가 형성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대기업 회계팀에 근무하는 한 회계사는 “회계법인이 공공성과 독립성을 지켜야 하는 것이 맞지만, 감사 보수를 제공하는 기업의 의사를 무시하기는 어렵다”며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감사를 진행하는 회계사들이 갑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구조적으로는 기업이 갑인 상황이어서 회계법인은 사실상 끌려 다닐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솜방망이 수준의 처벌이 이뤄졌다는 점도 그동안 부실 감사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한 이유로 지목된다. 대형 회계법인 출신의 한 회계사는 “부실감사 등의 문제를 일으킨 회계법인에 내려지는 징계는 회계감리 및 감사업무 제한, 회계사 직무정지, 과징금 부과 등의 수준에 그쳤다”며 “작정하고 부당이익을 챙기려고 하지 않은 이상 구속되는 경우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솜방망이 처벌은 대우건설 분식회계 사건 당시만 봐도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지난해 9월 대우건설의 분식회계 사건을 조사한 결과, 실제보다 축소됐다고 판단한 손실액은 3900억원에 달했다. 그러나 당시 외부감사를 맡았던 삼일에 부과된 과징금은 10억6000만원에 불과했다. 또 감사 업무를 담당한 회계사 2명에게는 1년간 상장사 감사 업무 제한 징계가 내려졌다. 이 때문에 한때 부실 감사의 처벌 수위를 높이자는 취지의 법 개정이 추진됐지만 업계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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