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집 교수의 시사유감] 김홍영 검사와 삼성, 그리고 상명하복 조직의 폐해
  • 권상집 동국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7.07 16:2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압식 복종 문화가 빚어낸 김홍영 검사의 비극, 그리고 삼성의 문화 개선

 

 


 

수업을 통해서 학생들에게 항상 이야기하지만 갈등과 스트레스라는 건 기본적으로 사람과 사람이 만날 때 발생한다. 수많은 신입 및 경력사원이 ‘조직의 브랜드를 보고 입사한 후 조직에 있는 골치 아픈 사람 때문에 나온다’라는 말을 자주 내뱉는다. 2014년 tvN에서 방영돼 모든 직장인에게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미생≫이란 작품에 등장한 악독한 상사인 마부장과 성대리에 더 많은 직장인이 공감을 표현한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현실에는 안타깝게도 드라마 속 마부장과 성대리보다 더 심각한 상사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기 때문이다. 

 


벌써 두 달 전인 5월19일 장래가 촉망되던 김홍영 검사 역시 33세의 젊은 나이에 부장검사의 인격모독과 무차별적인 폭언을 참지 못하고 끝내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저버리는 비극을 선택했다. 지난해 9월에도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30세의 젊은 직원이 대기업 부장에게 폭행당했다는 글이 올라와 많은 직장인들의 분노를 산적이 있다. 대한민국 특유의 복종과 통제 문화를 언제나 ‘건설적인 위기의식’이라는 미명 아래 포장할 수는 없다. 구성원들을 관리하고 억압하던 방식이 이미 구시대 유물이 된 지 한참인데도 2016년 현재 상명하복의 문화가 여전히 국내 조직에 횡행하고 있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까지 대한민국은 급속도의 성장을 이뤄냈다. 그 시절 대한민국이 이른바 ‘모방형 혁신’, ‘추격형 성장’을 추진하면서 집중적으로 조직 구성원들에게 강요한 건 리더의 명령과 방향 설정 아래 모든 구성원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학습하는 것이었다. 경영자 또는 조직의 리더가 끊임없이 건설적인 위기의식을 조성하면 구성원들은 그 틀 안에서 이른바 문제해결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지식의 흡수능력을 높여 고도의 발전을 이뤄냈다는 것이 수많은 경영학 연구를 통해 밝혀진 국내 조직의 성과에 대한 결론이다.


그러나 교과서에서 지겹도록 강조되고 있듯이 경제가 산업경제에서 지식경제, 창조경제로 전환되며 산업화 과정에서 한국이 보여줬던 성공방정식은 이미 아무도 따라 하지 않는 구시대 퇴물 전략이 됐다. 단순 모방으로 기업이 성과를 낼 수도 없고 복종과 강압으로 창조적인 문제해결력을 보여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내 조직의 리더들은 일사불란한 방식과 상명하복을 지속적으로 조직 구성원에게 강조한다. 국내에서 창조경제를 거의 최초로 주장한 윤종록 전 미래창조과학부 차관조차 오죽하면 통제와 상명하복식 문화를 강조하는 군대가 우리나라의 창의성을 가로막는다고 했겠는가.


젊은 검사의 죽음으로 또 다시 검찰의 폐쇄적이고 수직적인 조직문화가 도마 위에 오르내리고 있다.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모든 검사는 하나’라는 이 희한한 검사동일체 원칙은 전국 2000명 검사들의 언행을 통제하는 강력한 수단으로 지금까지 작용하고 있다. 1995년 SBS에서 방영한 ≪모래시계≫에서 보여준 소신 있는 검사의 기개는 이미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영화 ≪부당거래≫부터 최근 종영한 KBS의 ≪동네변호사 조들호≫까지 방송 및 영화 전반에서 이제 검찰은 비리의 몸통으로만 묘사되고 있다. 수많은 해외 검찰의 위용을 볼 때마다 왜 국내 검찰은 저런 면모를 보여주지 못하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1974년 미국의 닉슨 대통령을 사임케 한 아치볼트 콕스 특별검사는 대통령의 해임 협박에도 불구하고 철저한 수사를 통해 닉슨을 대통령에서 물러나게 했으며, 1976년 다나카 전 총리가 연루된 사건이 일본에서 터져 나왔을 때도 다케시 당시 검사총장(검찰총장)은 후배 검사들에게 ‘그 어떤 어려움과 압박에도 굴복하지 말라’는 단호한 명령으로 정치권의 압력을 물리치고 전 총리를 비롯한 거악(巨惡)들을 구속시켰다. 정치권력에 예속되지 않고 고고한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는 도쿄지검의 일화가 안타깝게도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점이라는 건 한 번 더 우리의 속을 쓰리게 한다. 미국 및 일본, 이탈리아 등 독립된 검찰의 위상을 보여주는 국가에서 통제와 강압 위주의 조직문화를 강조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필자는 들은 바가 없다.


이 와중에 삼성이 그간 보여줬던 ‘관리의 문화’를 버리고 ‘개방적이고 유연한 문화’를 표방하며 조직문화 혁신을 단행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특히 삼성전자가 직급 호칭을 버리고 ‘님 호칭’을 사용하고 여름철 ‘반바지’ 사용을 허락한 건 대중의 높은 주목을 받고 있다. 더욱이 SK그룹조차 캐주얼 복장 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은 이들 대기업의 절박한 인식을 보여준다. 2015년 취업검색엔진 잡서치가 취업포탈 파인드잡과 공동으로 취업준비생을 대상으로 설문했을 때도 가장 입사하고 싶은 기업은 공기업(30.2%)이 수위를 차지했고, 그 비율은 무려 대기업(16.6%)의 두 배에 육박했다. 단언컨대 이제 젊은이들에게 국내 대기업은 그렇게 원하고 바라는 곳이 아니다. 


이미 글로벌 기업의 조직문화를 평가하는 사이트에서 삼성전자는 최악의 기업으로 평가 받고 있고, 유능한 인재들은 상사의 격려, 자율적 업무환경, 개방적인 조직문화가 유지되고 있는 기업과 조직으로 더 많이 몰리고 있다. 10년 후 사라질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위기의식에서 비롯된 삼성의 조직문화 혁신은 ‘유능한 인재는 더 이상 통제와 강압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웨스트(West)와 사크라멘토(Sacramento)가 2012년 공동으로 연구한 결과, 창의성과 혁신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상사의 지원과 격려였다. 또한 세계적인 경영학술지(Academy of Management Journal)에서 진행된 장(Zhang)과 바톨(Bartol)의 2010년 연구에서도 자율적 업무환경 하에서 조직 구성원이 스스로 의사결정 할 수 있다고 인지할 때 창의적인 성과와 내적인 동기부여가 가장 높았고 과업에 더 쉽게 몰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많은 연구가 상사의 격려와 지원, 자율적 업무환경, 개방적 문화에서 가장 높은 성과와 구성원들의 만족도, 몰입이 높아진다고 강조하지만 여전히 한국의 상당수 리더들은 이런 당연한 팩트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있다.


삼성이 도입할 예정인 ‘님’ 호칭은 이미 2002년 CJ가 국내에서 최초로 사용했고 그 이후 많은 벤처기업 및 대기업이 이 제도를 뒤이어 도입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실상 이 제도를 성공시켰다고 인정받는 기업은 아직까지 하나도 없다. 여전히 간부들 사이에서는 ‘직급’을 불러줘야 그 사람의 권위와 위상이 살아난다고 믿는 분위기가 팽배했기 때문이다. 특히 회장님에게 ‘이름+님’을 부른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김 검사의 죽음은 이렇듯 국내 조직에 만연된 상명하복식 억압과 비상식적인 리더의 통제로 발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2의, 제3의 김 검사와 같은 피해자가 또 다시 발생할 수 있다는 필자의 주장에 많은 직장인들은 공감할 것이다. 


삼성이 최근 ‘님’ 호칭과 ‘반바지’를 강조하면서 조직문화를 혁신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 문화 혁신이 성공할 것으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여전히 조직문화 개선의 초점이 최고경영자와 임원들이 아닌 사원들에게만 주로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젊은 김 검사의 죽음이 강압적인 리더 때문이라는 점을 삼성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조직 내에 유연 문화가 확산되려면 그룹 최고의 리더가 권좌에서 나오는 제왕적 권위를 대폭 내려놓고, 무엇이 진짜 유연하고 개방적인 모습인지 솔선수범을 보여야 한다. 누구나 말은 쉽게 할 수 있다. 대신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는 건 그 무엇보다 어렵다. 이제 선택은 이재용 부회장에게 달렸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