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름 30cm 투박한 원형 플라스틱’ LP의 경이
  • 이경준 | 대중음악 평론가·음악웹진 ‘이명’ 편집장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7.08 19:45
  • 호수 1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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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불어닥친 LP 열풍···시니어는 향수 찾아, 주니어는 개성 찾아

‘LP(바이닐)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이젠 CD조차 사형선고를 받았다 해도 과언이 아닌 마당에 LP라니.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말이다. 분당 33과 3분의 1 회전하는 바이닐은 1948년 컬럼비아 레코드사에 의해 처음 공개돼, 1950년대부터 1980년대 사이를 풍미했다. 그러다가 1990년대 들어 사실상 사멸했다. 1980년대 등장한 CD에 의해 설 곳을 잃었기 때문이다. 국내의 모든 공장은 문을 닫았고, 팬들은 모두 CD로 눈을 돌렸다. 그런데 최근 바이닐이 돌아왔다. 놀랍게도 열풍의 진원은 바이닐을 제대로 접해보지 못한 젊은 세대들이다. 


대기업까지 바이닐 시장에 뛰어들면서 '음반은 죽었다'는 명제는 전면으로 거부되는 모양새다.
2010년부터 재전성기…판매량 매년 증가세

6월18일과 19일, 6회째 행사를 치러낸 레코드 마켓 ‘서울레코드페어’는 국내에 바이닐 레코드의 바람을 일게 한 축제의 장(場)으로 자리 잡았다. 철저하게 바이닐 위주의 행사인 서울레코드페어에선 ‘9와 숫자들’ ‘블랙 메디신’·원더걸스·라디오헤드 등 장르와 국적을 불문한 다양한 뮤지션들이 인기를 끌었다. 소위 ‘꾼’들은 진작부터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정보를 교환했고, 재고 여부를 체크했으며, 품절 소식에 안타까워했다. 

바이닐의 재전성시대가 개막된 건 2010년을 전후로 해서다. 음반업계에 따르면, 이때부터 바이닐의 판매량은 매년 눈에 띄는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러다 보니, 최근엔 대기업들도 LP 시장에 발을 들이고 있다. 실제 현대카드는 최근 서울 이태원에 지상 2층 규모의 대형 LP음반매장을 오픈한 바 있다. 이처럼 바이닐 시장은 ‘음반은 죽었다’는 명제를 전면으로 거부하는 모양새다. 

이는 국내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분기점은 2000년대 중후반. 서구를 중심으로 이른바 ‘바이닐 리바이벌’이 일어나고 있다. 2007년부터 증가세를 타던 바이닐 매출은 2010년 초에 이르러 급격히 상승했다. 2015년의 한 보고에 의하면, 2009년보다 대략 260% 높은 수치를 보였다. 아델의 2015년 음반 《25》의 바이닐은 11만6000장이라는 경이적인 판매고를 올렸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음반이 뒤를 잇는다. 지금 언급된 음반은 모두 아티스트들의 최신작을 말한다. 흘러간 음반뿐만 아니라 신작을 바이닐로 거침없이 발매할 수 있다는 건, 바이닐 레코드 시장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지분’을 갖추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도 CD라는 포맷에 제약되지 않고, 바이닐로 신보를 내는 뮤지션의 수가 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마치 ‘시간을 탈구(脫臼)시킨’ 것 같은 기이한 현상. 여기에 바이닐의 가격이 CD의 2배를 상회함에도 사람들이 바이닐 레코드를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앞서 젊은이들이 핵심부에 있다고 했는데, 물론 과거 ‘LP 세대’들도 반가이 바이닐을 집어 든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설명이 부족하다. 기성세대의 ‘향수’나 ‘추억’ ‘재테크’ 같은 단어만 가지고는 이 현상을 온전히 해석하기 힘들다. 젊은 세대의 어떤 욕망이 투사돼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남들과 다르고 싶은 욕망이다. 지름 30cm에 이르는 투박한 물체의 덮개는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다. 손바닥만 한 사이즈의 CD 커버와는 차원이 다르다. 겉 비닐을 벗기지 않더라도, 그래서 음반이 아닌 장식품이 될지언정, 커다란 둥근 판의 케이스는 자신의 정체성을 타인과 구분해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원형 플라스틱으로부터 소리가 난다는 건 하나의 경이(驚異)다. 턴테이블에 놓인 음반 위로 차분히 바늘이 내려와 돌아갈 때, 어떤 10대 친구는 이루 말하지 못할 행복감에 젖는다고 말했다. 누군가는 오르골 뚜껑을 열었을 때의 기분과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건넨다. 둘 다 바이닐을 수집하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학생들이다. 큼지막한 커버에 붙들려 바이닐을 사게 되었고, 괴이한 감상의 제의에 매료돼 바이닐의 포로가 된 이들이다. 어쩌면 그들에게 바이닐 감상은 시각·촉각·청각을 다 활용하는 복합 감각의 결정체일지도 모르겠다. 

바이닐 감수성을 체화(體化)한 젊은 세대의 수가 늘고 있다. 번화가의 골목에 위치한 LP바에서 대학생을 비롯한 어린 바이닐 팬들을 만나는 건 이제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김광석이, 유재하가, 들국화가 울려 퍼진다. 옛 이름들만 흐르는 건 아니다. 인디음악 ‘브로콜리 너마저’, 김오키, ‘김사월X김해원’도 울려 퍼진다. 음악팬 모두가 인지하고 있지는 않지만, 2016년 바이닐 레코드는 이곳저곳에서 회전한다. 

일각서 한때의 ‘거품’이란 반론도 제기

그런데 이 열풍이 언제까지 수명을 이어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대립한다. 한쪽에선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주의가, 다른 한쪽에선 거품이라는 반론이 제기된다. 솔직히 단정하기 힘들다. 어떤 면에서, 레코드페어에 몰려드는 인파나 한정판 LP 품절사태를 보면 불씨가 더 확대될 여지가 있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바이닐 생산시설의 부재(현재 국내엔 단 한 군데도 바이닐 레코드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이 없다), 아이템의 절대적 부족 등 변수를 감안해보면, 아직 그런 말을 하긴 요원하다 싶기도 한 것이다. 

대중문화 유행의 저 지난(至難)한 역사에서, 자신의 죽음을 부정하고 돌아왔던 유령들은 꽤 많았다. 당연하게도, 그들은 다시 종적을 감췄다. 본디 ‘리바이벌’이란 그렇지 않았나. 그렇게 본다면, 생각보다 바이닐의 생명은 더 오래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한편으론 역설일 수도 있다. 음악이 영상의 BGM(배경음악)으로 전락하고 있는 이 시기에, 한편에선 이런 정반대의 흐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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