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섭의 ASSA 아세안] 스펙스, 인도네시아서 ‘국민 브랜드’로 사랑받는 이유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press.com)
  • 승인 2016.07.18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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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아세안은 인구 6억3000만명인 거대 시장입니다. 지난해 말 아세안경제공동체까지 출범하면서 중국·인도를 뛰어넘는 경제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전히 국내에는 아세안과 관련한 많은 소식이 다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앞으로 ‘송창섭의 앗싸! 아세안(ASEAN)’에서는 재미있는 동남아시아(아세안) 소식을 다룰 계획입니다. 10개국으로 구성돼서 그런지 아세안은 인종·문화 등도 제각각입니다. 그러다보니 그 속에 숨어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기대 바랍니다.

최근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는 대형 쇼핑몰 건설이 한창입니다. 인구 2억4000만명의 대국답게 규모도 대단하죠. 다국적 브랜드 전시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입점 업체수도 많습니다. 기자는 올 초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머물 기회가 있어 휴일을 맞아 쇼핑몰에 갔는데, 거기서 눈에 익은 스포츠 브랜드 하나를 보게 됐습니다. 바로 ‘스펙스(SPECS)’입니다. 7080세대들은 스펙스 하면 단번에 재래시장에서 많이 본 중저가 운동화를 떠올리실 겁니다. 

 

 

프로스펙스의 서브 브랜드였던 중저가 운동화 ‘스펙스’​


 


전두환 정권에 밉보여 국제그룹 해체

지금부터 ‘스펙스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말씀드린 바와 같이 스펙스는 과거 국제상사가 보유한 국내 운동화 브랜드입니다. 당시 국제상사는 나이키의 대표적인 OEM(주문자상표부착방식) 기업이었습니다. 기술력 하나는 알아줬죠. 그런 국제상사가 프로스펙스를 출시한 것은 1981년 무렵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나이키 위세는 대단했습니다. 국제상사가 자체브랜드로 프로스펙스를 내놓자 나이키는 주문량을 대폭 줄이며 견제에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당시 국제상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토종 브랜드 개발에 몰두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국제상사의 발목을 잡은 것은 전두환 정권이었습니다. 적극적으로 정치자금을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당시 재계 5위권이던 국제그룹은 1985년 해체됐습니다. 그 결과 주력기업인 국제상사는 한일그룹 산하로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됐다고 프로스펙스 위세가 사라졌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프로스펙스는 1988년 서울올림픽 공식 스폰서로 지정되는 등 비약적인 성장을 기록했습니다. 당시 나이키·아디다스의 폭풍 공세에도 ‘토종 브랜드’, ‘가성비 높은 제품’이라는 이미지를 쌓으며 지갑이 얇은 중산층의 마음을 사로잡았죠. 저 역시 애용했던 기억이 납니다. 

 

 

1980~90년대 국민 브랜드로 인기 있었던 프로스펙스 ⓒ스펙스 스포츠​​

 


그러나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라는 전대미문의 쇼크를 넘지는 못했습니다. 모기업인 한일그룹이 부도 처리되면서 국제상사는 ‘고난의 시대’에 들어가게 됩니다. 1990년대 나이키가 마이클 조던으로 대표되는 NBA 스타들을 내세워 국내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는 것을 그냥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프로스펙스뿐만이 아닙니다. 그 사이 서브 브랜드였던 스펙스, 아티스, 왕자표 신발 모두 사실상 자취를 감췄습니다. 그리고 8년 간의 법정관리를 거친 후 국제상사 브랜드는 새로운 주인을 찾습니다. 마땅한 소비재 사업을 찾고 있던 LS그룹의 눈에 프로스펙스가 들어온 거죠. 국제상사를 인수한 LS그룹은 기업명을 LS네트워크로 바꿉니다. 그리고 프로스펙스에 대한 대대적인 브랜드 리뉴얼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반면, 서브브랜드인 아티스, 스펙스, 왕자표, 챔피온 등은 계열분리를 시켰습니다. 이들 브랜드는 현재 상장사인 ㈜아티스가 관리하고 있습니다. 경기도 안양에 본사를 둔 아티스는 지금도 아티스, 왕자표, 챔피온, 스펙스라는 이름으로 운동화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주로 온라인을 통해 판매하고 있죠. 회사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주력 브랜드는 아티스, 왕자표라는군요. 스펙스는 털신, 샌들 등 겨울·여름용 신발에만 붙인다고 합니다. 

 

 

스펙스 스포츠 홈페이지​ ⓒ스펙스 스포츠​


스펙스, 인도네시아서 ‘국민 브랜드’로 사랑

다시 화제를 인도네시아로 돌려보죠.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우리나라 스펙스가 뒷걸음질치고 있는 사이 인도네시아 스펙스 스포츠는 비약적인 성장을 기록했습니다. 인도네시아 스펙스 스포츠가 처음 설립된 것은 1994년입니다. 현재 스펙스 스포츠는 인도네시아 프로축구리그인 슈퍼리그의 메인스폰서가 되는 등 유명 브랜드로 발돋움했습니다. 현재 스펙스 스포츠는 축구화, 풋살화, 배드민턴화, 런닝화 등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이 중 축구화, 풋살화는 가성비가 좋다는 이유로 예전 우리나라 프로스펙스가 그랬던 것처럼 인기가 대단합니다. 

 


현재 ㈜아티스는 스펙스와 관련해 국제 상표권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때문에 인도네시아 등 세계 어디에서 브랜드로 사용한다고 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습니다. 


이와 관련해 저는 인도네시아 현지 지인으로부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물론 확인할 방법은 없습니다. 인도네시아 스펙스 스포츠에 문의를 해도 “당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확인해줄 수 없다”는 이야기만 들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국민 브랜드 ‘스펙스 스포츠’에서 만드는 축구화 ⓒ스펙스 스포츠​​

 


1980년대 프로스펙스는 우리나라 태권도화와 배드민턴화로 많이 애용됐습니다. 특히 배드민턴화로 유명했죠. 그리고 당시 우리나라에는 박주봉이라는 불세출의 배드민턴 스타가 있었습니다. 배드민턴이 국기(國技)인 인도네시아에서 당시 박주봉 선수 인기는 대단했다고 합니다. 오늘날 인도네시아 스펙스 스포츠가 독자브랜드를 개발하면서 브랜드 이름으로 힌트를 얻은 것도 여기서 출발했다는 군요. 물론 확인된 사실은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스펙스라는 영어단어는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네이버 영어사전을 통해 검색하면 ‘안경’ ‘명세서’ 정도로 나오죠. 우리 스펙스에서 브랜드를 착안했다고 해도 현재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스펙스가 인도네시아에서는 국민 브랜드로 커가는 모습을 보니 부럽기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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