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공화국’ 뒤로 비친 지자체장들의 ‘땅 사랑’
  • 박준용 기자 (juneyong@sisapress.com)
  • 승인 2016.07.19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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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그쪽 땅을 사 모으지.”

1970년 어느 날, 박종규 청와대 경호실장은 당시 서울시 도시계획과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과장이 서울 강남 지역을 둘러본 뒤 “이 곳이 좋겠다”고 말하자 뱉은 짧은 한 마디였다. 과장은 이후 서울시장에게 "제일은행 전무실에 가면 돈을 줄 테니 받아와서 우선 그 돈으로 땅을 사 모으라"는 지시를 듣는다. 이 때 지시로 23만여 평을 샀다. 이 투자의 목적은 ‘대통령 선거에 대비해서 박정희 대통령이 쓸 목돈을 좀 마련하겠다’ 였다고 한다.

고(故) 손정목 서울시립대 명예교수의 저서 《서울도시계획이야기》는 1970년대 강남 개발을 주도하며 청와대 인사가 스스로 투기에도 참여했다고 말한다. 그 다음은 모두가 아는 결말. 강남은 ‘금싸라기 땅’이 됐고, 청와대 인사는 목돈마련에 성공했다. ‘땅 짚고 헤엄치기’란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일까.
 



앞선 사례를 보면 1970년대 이후 주기적으로 몰아친 ‘부동산 투기 붐’에서 누가 이겼을지도 가늠해볼 수 있다. 대체로 투기 정보에 가장 앞선 자들은 정책 입안자인 권력자다. 이들은 무수한 개발 정책을 내놓는 만큼이나 투기에도 발 빨랐던 듯하다. “권력이 투자하는 곳에 투자하면 실패하지 않는다”는 부동산업계의 ‘권력 불패’ 속설이 바로 그것이다.

권력자의 부동산 투기 논란은 오늘날까지 끊이지 않고 되풀이 되고 있다. 최근《뉴스타파》의 조사는 부동산 투기에서 ‘권력 불패’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뉴스타파》가 최근 6개월 간 243개 지방자치단체의 시장, 군수 소유의 부동산에 대한 전수 조사와 현장 취재를 진행한 결과는 놀라왔다. 2015년부터 2016년까지 지자체장이 자신의 관할에 보유한 부동산 평가액의 상승률(6.8%, 공시지가 기준)은 평균치(2.4%, 한국감정원 기준)보다 세배나 높았다.

특히 일부 지자체장들은 재임 기간 ‘신묘한’ 부동산 재테크 능력을 뽐냈다. 최근 6년 간 보유 땅값 상승률 상위 10명의 평가차익은 65.5%였다. 이밖에 조사 대상의 절반이 넘는 이들이 자신의 관할 지역에 부동산을 가지고 있었고, 10억원을 넘는 ‘부동산 부자’도 4분의 1인 40명에 달했다. 

몇몇 지자체장의 보유 부동산 상승률은 가파르다. 이현준 예천군수의 부동산은 6년 전과 비교해 74.7%가 올랐다. 뉴스타파의 취재에 따르면, 이 군수는 군내에 25억 원이 넘는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데 최근 6년 사이 이 부동산의 신고액이 10억 원 이상이 올랐다고 한다.

 

뉴스타파, 《‘내 땅값은 내가 올린다’…지자체장 부동산 전수조사


이 군수가 보유한 부동산은 예천군 대심리에 있는 시외버스터미널 부지. 역사 바로 앞에 위치해 있어 대심리 일대에서는 가장 좋은 땅 중 하나로 꼽히는 곳이다. 인근 부동산업자에 따르면, 지난 2014년 대심리로 군청 신청사 이전이 추진되면서 일대의 부동산 시세는 천정부지로 올랐다.


이 군수는 보류돼 있던 신청사 이전을 추진한 당사자다. 예천군은 20년 전 대심리에 신청사 부지를 매입해 놓고 있었다. 하지만 군청을 이전하게 되면 구청사가 위치한 예천읍의 상권이 침체될 것이라는 주민들의 우려로 인해 그간 이전 사업이 보류돼 왔다.


예천읍 일대의 상인들은 취재진과 만나 “이 군수가 치적을 위해 빚까지 내가며 청사 이전을 강행하고 있다”, “수억 원의 예산을 들여 리모델링한 구청사를 놔두고 갑자기 청사를 이전하겠다는 이유를 알 수 없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노동운동가 손낙구씨는《부동산 계급사회》에서 이런 지적을 했다. “부동산 가격은 저절로 오르는 게 아니라 뚜렷한 목적을 갖고 가격을 끌어올리는 집단이 있고, 이를 뒷받침하는 장치와 시스템이 작동한 결과다.” 가파르게 뛰는 집값으로 고민이 많은 서민들과 달리 일부 지자체들의 부동산은 그들의 개발사업으로 가파르게 가치가 상승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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