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납왕 “난 별일없이 산다”
  • 박준용 기자 (juneyong@sisapress.com)
  • 승인 2016.07.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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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봐도 우리나라 참 살기 좋은 나라 아닙니까? 무엇보다도 우리나라가 제일 좋은 건요, 없이 사는 것들이 지들끼리 치고 받아 준다는 겁니다. 지들끼리 멱살 잡고 죽어라 싸워주니까 얼마나 좋습니까? 부려먹기도 쉽고요."

- OCN드라마 ‘38사기동대’ 중 500억대 악덕 체납자 방필규(김홍파 분) 대사

 

"부자들은 여왕개미, 법 만드는 사람들은 수개미, 그럼 백성일(극중 세무공무원, 마동석 분)이, 너는 무슨 개미로 생각해? 너는 병정개미야. 너 공무원이잖아. 대한민국이라는 집을 지켜야지. 여왕개미도 지켜드리고. 근데 병정개미 백성일이 너, 왜 여왕개미를 공격하냐? 자, 체납세금 50억 있다고 치자, 50억 그거 뭐 별거 아니야. 월 200 버는 일개미들, (중략)한 달에 갑근세다 건강보험이다 뭐다 월 30 정도 떼고 월급 받거든? 뭐 저런 얘들 1만6660명이면 50억 그거 한 큐야! 쟤들은 선택권도 없어, 월급에서 미리 다 떼고 주니까 삥땅치려야 칠 수가 없다고. 무슨 말인지 알어? (세금은)없이 사는 놈들, 걔들한테 받아! 걔들 말 잘 듣잖아, 일처리도 쉽고…."

- ‘38사기동대’ 중 세무공무원출신 세무사 조상진(김응수 분) 대사

 

 

새로운 ‘분노유발자’들이 브라운관에 등장했다. 거액의 세금을 내지 않고도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는 ‘악덕 체납왕’. 그리고 이를 비호하는 세력이 바로 그들이다. 케이블채널 《OCN》에서 방영하는 드라마 ‘38사기동대’는 ‘악덕 체납왕’과 체납세금을 받아내 정의를 실현하려는 세무공무원의 싸움을 그린다. 

 

OCN 드라마 '38사기동대'의 한 장면

드라마 ‘38사기동대’ 속 악덕 ‘체납왕’,  현실에도

 

그런데 드라마 속 체납왕이 왠지 낯설지 않다. ‘38사기동대’의 체납왕은 현실과 매우 닮았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도 “낼 돈이 없다”면서 최대 수천억원의 세금을 내지 않은 재벌일가 인물이 있다. 2004년부터 매년 세무당국이 공개하는 국세 체납자 순위 상위권의 면면은 화려하다. 

 

2015년 기준 1위에 올라있는 인물은 한보그룹의 정태수 전  회장. 그는 증여세 등으로 1992년부터 2225억여원의 국세 납부를 미뤘다. 

 

2위는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회장이다. 1073억여원의 세금을 내지 않았다. 3위는 조동만 전 한솔그룹 부회장(약714억원), 4위는 정태수 전 회장의 아들 정보근 전 한보그룹 회장(약644억원), 5위는 다단계 사기로 알려진 주수도 JU그룹 회장(약570억원)이다. 

 

이 뿐 아니다. 국세를 체납한 거물들은 지방세도 납부도 하지 않고 있다. 서울시가 2015년 공개한 고액체납자 명단에 따르면,조동만 전 부회장은 84억2700만원을 체납했다. 주수도 회장은 개인명의로 44억8000만원을 내지 않았다. 주 회장 본인이 대표로 있는 회사도 총 222억7900만원의 지방세를 체납했다. 최순영 전 회장(35억100만원), 정태수 전 회장(29억원)도 지방세 고액체납자다. 

 

“빚이 많아 낼 수 없다”는 이들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체납왕’들은 ‘팍팍한’ 삶을 살아야 할 듯하다. 사업을 하다 진 빚도 갚아야 하고, 체납한 세금도 내야 한다. 자금 조달에 허덕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체납왕’들의 삶은 그리 ‘팍팍해’보이지 않는다. 그 몇 가지 단서를 살펴보자.

 

2013년 서울시에 따르면, 최순영 전 회장은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 서울 양재동 고급빌라에 거주한다. 부동산 시세는 최소 17억원으로 추정된다. 다만 이 집은 최 전 회장이 설립한 종교재단 소유라 세무당국의 압류대상에서 제외됐다. 이 재단은 최순영 전 회장과 자녀들에게 모두 51억원 상당의 주택 3채를 주기도 했다. 최순영 전 회장의 부인은 재단 이사장에 이름을 올려 월 1000만원의 급여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금 낼 돈 없다”며 ‘출국금지’ 취소 소송에 대형로펌 선임

 

‘체납왕’들은 빚에 허덕이는 것 치고는 부담스러운 법률비용 지출도 했다. 2015년 9월 기준, 주수도 회장은 1년 반 동안 무려 2591회 접견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자료)이 과정에서 쓴 법률비용은 최소 수억원일 것으로 추정된다. 

 

국세체납 순위 3위인 조동만 전 부회장, 4위인 정보근 전 회장은 고액 체납으로 출국이 금지되자 “해외에 나가게 해달라”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조동만 전 부회장의 경우 이 소송에 대형로펌의 변호인단을 선임해 논란이 일었다. 결과적으로 두 사람 모두 패소했다. 법원은 두 사람의 세금납부의 의사가 강해보이지 않고, 출국의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특히 2015년 9월 서울행정법원은 정보근 전 회장의 소송을 기각하며 이 같이 지적했다.

 

"원고(정보근 전 회장)는 아버지(정태수 전 회장)와 동생(정한근 전 한보그룹 부회장)이 한보그룹 부도 이후 막대한 재산을 다양하고 치밀한 방법으로 숨기고 해외 도피시키는 데 직접 관여한 것으로 추정된다…(중략)원고가 한보그룹 부도 이후 현재까지 18년 가까운 기간에 과세관청에 자진 납부한 세액은 약 770만원에 불과하다. 원고의 준법의식과 납세의지는 결코 높은 수준으로 보이지 않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부장판사 김병수)-

 

 

▶서울시가 체납세금을 받기 위해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의 가택수색 하는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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