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장묵의 테크로깅] 곧 다가올 증강의 세계를 디자인할 때
  • 강장묵 고려대 컴퓨터학과 교수 (JM코드그룹 대표)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7.29 17:08
  • 호수 1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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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한곳을 바라봐도 각자 다른 것이 보이는 증강현실 세상이 펼쳐진다

2030년,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이 된 K군은 방 천장에 붙은 달걀귀신을 잡는다. 아버지는 눈을 씻고 보고 또 봐도 그저 천장일 뿐이다. 하지만 아들 K군은 연신 헛것을 보고 웃는다. 귀신이 곡을 할 노릇이다.

 

2030년 이런 일이 가능할까? 정답은 ‘가능하다’이다. 2016년 여름 ‘포캣몬고’라는 게임이 출시된 후, 게임 캐릭터는 이제 현실 세계로 들어왔다. K군은 태어난 직후, ‘증강현실 렌즈(AR Lens)’를 삽입하는 수술을 받았다. 이 렌즈는 K군이 보는 세계를 다채롭게 만든다. K군의 아버지가 안구와 각막이라는 구형 렌즈를 끼고 세상을 보았다면, K군은 태어나자마자 증강현실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보는 셈이다. 아버지는 가시(可視)광선의 세계에 살았고 머리 위로 ‘바람에 춤을 추는 모빌’을 쳐다보며 울음을 멈췄다. 반면, K군은 울거나 지루할 틈이 없다. 배가 고프면 혈중 당을 확인하고 이유식의 양을 시간에 맞추어 조절해준다. 졸리면, 유아용 증강현실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아 머리 위로 별들과 유성이 지나가 행복한 꿈을 꾸거나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별자리를 헤아릴 수 있다. 

 

 

© 일러스트 정재환


 

 

‘증강현실 렌즈’ 통해 또 다른 세상을 본다

 

4D 프린터로 제작된 유아용 침대는 K군의 척추와 얼굴 형태에 맞추어 최적화된 제품이다. K군은 ‘모로 눕거나 머리를 파묻고 눕거나 똑바로 드러누워도’ 자동으로 감지해주는 유아용 라텍스가 예쁘게 두상의 형태를 잡아준다. 유아용 침대는 예쁜 두상을 만들어줄 뿐만 아니라, 유아의 교육을 증강현실로 구현하게 해주는 기능으로 히트를 친 2030년의 핫 아이템이기도 하다. 이 제품은 증강현실 기술로 유아의 경험 세계를 넓혀준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K군이 사는 집은 한 지방 소도시의 허름하고 좁은 방이다. 그러나 태어나자마자 처음으로 K군이 본 세상은 증강된 현실의 어느 고즈넉한 성의 벽화로 가득한 방 안에서 유모가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들려주는 자장가였다. 태어날 때부터 인터넷과 모바일을 받아들인 아버지와 달리 K군은 태어날 때부터 증강된 세계를 체험한 것이다. 새로운 기술이라기보다 K군이 느끼고 만지고 공유하고 경험하는 세상사인 것이다. 그 세상의 중심 기술로 증강현실이 있다.

 

2030년 서울 도심 외곽의 한 공원. ‘피츠 커피와 차(peets coffee & tea)’에서 막 따끈하게 주문한 모닝커피를 들고 주변을 바라보는 이들이 가득하다. 오래된 시민의 휴식 공간인 이곳에서 30대 주부 P씨는 혼자 키득거린다. 눈앞에 펼쳐진 공원은 한없이 고요하기만 하다. 정적마저 감도는 이곳에서 P씨는 웃는데, 반면 그 옆 테이블에 앉은 다른 사람은 앞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린다. 그러고 보니, 주변 곳곳에 시민들이 모두 공원 한곳을 바라보고 있는데도 저마다의 표정이 다르다. 모두 각기 다른 헛것을 보고 있는 마치 거대한 신들림 현상이 일어나는 장소 같다.

 

2030년 시민들의 휴식 공간인 공원에서는 이런 일들이 가능할까? 정답은 역시 ‘그렇다’ 이다. 시민 A씨는 공원에 앉아 고즈넉한 바람을 음미하면서 증강현실로 플레이되는 햄릿의 《한여름 밤의 꿈》을 보고 있다. 시민 B씨는 공원에서 팝업(pop-up)되는 육식동물의 세계라는 프로그램을 플레이했다. 육식동물의 생활을 증강현실로 보고 학습한 뒤, 자녀에게 알려줄 작정이다. 시민 C씨는 한국인을 대표하는 100인의 시선집을 구동해 공원 여기저기로 물 흐르듯이 오버랩되는 시를 감상하고 있는 중이다. 시는 300년 된 고목 위에 걸려 있고 벤치 위에서 흘러내리며 공원 가운데 있는 분수대에서 분수와 함께 솟아오른다. 시어(詩語)가 마치 물고기처럼 솟아올라 C씨에게 전달되는 방식이다.

 

공원 여기저기에서는 꼬마 아이들이 뛰며 보물찾기 놀이를 하고 있다. 물론 보물은 실제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암호 같은 문제를 풀면서 공원 여기저기를 누비는데, 더러 문제를 풀면 ‘금과 은 등 보물’을 발견하는 증강현실 게임이다. 교육과 놀이가 결합된 이런 게임은 다양한 콘텐츠를 잘 스토리텔링 하는 교육업체에 의해 독점되다시피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청소년으로 보이는 학생들은 공원에서 몬스터를 찾고 있다. 몬스터는 저마다 특징과 성격을 가지고 있어 청소년들의 인기 아이템이다. 증강현실 기술은 인프라일 뿐, 그 속의 경쟁력은 결국 고유한 스토리 구성에 있다. 창의력 있게 감칠맛 나게 콘텐츠를 구성한 업체는 글로벌 수준으로 성장했는데, 이들 기업의 콘텐츠를 다운받아 공원에서 시민들이 각자 즐기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모두가 공원에 있고 각자가 공원의 여기저기를 쳐다보고 있지만, 각자가 느끼고 경험하는 ‘여기저기’는 모두 다르다.

 

2030년에 태어난 L군은 증강된 렌즈를 끼고 바라보는 세계, 즉 정보가 겹쳐 보이는 증강된 현실이 실제 세계이다. 그에게 가시광선으로 보이는 19세기적 세상은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L군이 지나다가 궁금한 나무가 있어 시선을 집중하면 증강 렌즈에서 그 나무에 대한 정보가 쭉 나온다. 별자리를 유난히 좋아하는 L군이 하늘을 바라보면 어김없이 머리 위에 어떤 별자리가 있는지를 보여준다. 대낮처럼 화창한 날에 별을 보다니.

 

L군은 명함이라는 오래된 관습을 듣고 신기해한다. 누굴 만날 때, 상대의 신분과 위치를 알 수가 없어 옷차림과 말투, 그리고 명함을 받고서야 비즈니스를 시작했다는 과거 20세기의 얘기다. 이제 L군의 아버지는 비즈니스로 사람을 만나면 명함을 주고받지 않는다. 비즈니스로 만나는 상대가 동의한 경우, 상대방의 정보를 쉽게 받아볼 수 있다. 그리고 상대의 개인정보는 웨어러블 옷 속으로, 커넥티드 자동차 속으로, 플렉서블 핸디 디스플레이 속으로 자동 저장된다. 그의 이름을 외우지 않아도 된다. 그를 쳐다보면 이름이 보이고 그와 어떤 이야기와 약속을 잡을지까지도 증강된 렌즈로 보이는 것이다.

 

태어나자마자, 증강된 세계를 살아갈 2030년은 지금 우리가 체험하는 이 모든 것들을 깃털처럼 가소롭고 가벼워 보이게 만들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는 곧 다가올 증강의 세계를 디자인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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