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전10기’ 공수처 도입 이번에는 가능할까
  • 이민우 기자 (mwlee@sisapress.com)
  • 승인 2016.08.02 10:06
  • 호수 1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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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내부 자정 안 된다” 野3당 ‘공수처 도입’ 공조 전선 구축

검찰 개혁이 또다시 정국의 화두로 부상했다. ‘검찰의 꽃’이라 불리는 전·현직 검사장의 비리가 도화선이 됐다. 특임검사와 특별감찰관 제도로는 더 이상 내부 비리를 막을 수 없다는 결론에 확신을 심어준 꼴이었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검찰 개혁에 대한 요구와 움직임은 있었다. 노무현 정부나 이명박 정부에서도 검찰 개혁이 시도됐지만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했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 등 검찰 개혁의 핵심은 검찰과 여당의 반발로 무산됐다. 본질을 외면한 채 검찰을 장악하려는 여야의 정치싸움 양상으로 흘렀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다르다. 그 어느 때보다 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잇따른 전·현직 검사장의 비리로 검찰의 정체성과 법치의 근간이 위협받는 위기 상황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과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야3당의 공조 움직임도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야권은 매번 실패했던 공수처 신설을 최우선 과제로 본격적인 공조 체제를 구축하고 나섰다. 새누리당의 비박계 일부도 공수처 신설에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검찰을 옥죄는 모양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참여연대 등 6개 시민단체가 7월25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공수처 신설, ‘범야권 단일안’ 나온다

 

현재까지 더불어민주당(더민주)과 국민의당·정의당 등 야3당은 각각 공수처 신설을 위한 기초 작업을 마무리한 상태다. 야3당은 그간 무산됐던 공수처 신설 법안들에 비해 수사 대상을 대폭 확대했다. 큰 틀에서는 유사하지만 수사 대상과 수사 개시 요건 등 각론에서는 미묘한 입장차가 존재한다. 야권은 검찰 개혁에 공조 전선을 구축한 만큼 세부 내용을 조율해 8월초 범야권 단일안을 확정짓겠다는 방침이다.

 

더민주는 수사 대상을 대폭 확대했다. 비위 혐의가 있는 전직 대통령과 국무총리·장차관급 고위공무원·국회의원·광역자치단체장·판검사에 더해 감사원·국가정보원·공정거래위원회·금융위원회·국세청 등 사정기관 국장급 인사까지 수사 대상에 포함시켰다. 또 고위 공직자 본인 외에도 배우자나 직계존비속, 형제자매까지 수사 대상에 포함시켜 교묘한 ‘창구 바꾸기’를 사전에 차단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선임행정관 등 3~4급 참모들도 포함시킨 것이 특징이다. 이명박 정부 때 청와대 행정관이 성접대를 받은 의혹으로 사퇴한 데 이어, 박근혜 정부에서도 허현준 행정관이 어버이연합 관제데모 배후로 지목되는 등 과도한 권한을 가진 실무진을 제어하겠다는 의미다.

 

국민의당은 더민주와 마찬가지로 수사 대상을 고위공무원은 물론 국정원과 공정위·감사원 등 사정기관 3급 이상으로 확대했다. 준공무원인 공직유관단체 임원까지 포함했다. 친인척 범위는 더민주보다 한발 더 나아가 배우자와 직계존비속, 형제자매는 물론 4촌까지 포함해 ‘친·인척 비리’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방침이다. 대신 더민주가 수사 대상에 3~4급 행정관을 포함한 데 비해 고참급인 3급 행정관만 공수처 대상에 포함했다.

 

대상 범죄의 범위도 확대했다. 공무원의 직무 관련 범죄와 횡령·배임, 알선수재 행위, 정치자금법 위반은 물론 공직선거법,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금지법도 공수처 수사 대상 범죄에 포함했다. 더민주의 신설안에 부정청탁금지법과 공직선거법 등을 추가한 셈이다.

 

정의당은 차관급 이상의 공무원·법관 및 검사·국회의원·대통령비서실 2급 상당 이상 공무원·국회의원·지방자치단체장·경무관급 이상 경찰공무원 등 현직 고위공직자와 그 가족, 퇴임 3년 이내의 전직 고위공직자와 그 가족, 대통령의 친족으로 정했다. 이 경우 전관예우 논란을 빚고 있는 전직 검사장들의 비리에 대해서도 공수처에서 수사를 맡게 된다.

 

수사 개시 요건에서도 미묘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더민주는 ‘원내교섭단체의 요구가 있을 때 공수처 수사를 개시한다’고 규정했다. 반면 국민의당은 공수처 수사 개시 요건을 더욱 엄격히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공수처가 직접 인지하거나 감사원·국민권익위원회·국세청·공정거래위원회·대검찰청 등의 수사 의뢰가 있을 때, 국회 재적의원의 3분의 2 이상 서명이 있을 때만 수사가 시작될 수 있도록 했다.

 


‘우병우 감찰 결과’가 공수처 신설 가늠자

 

야권이 공조 고삐를 조이는 가운데 새누리당은 아직 당론을 정하지 못했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계파별 당권 주자들의 입장까지 엇갈리고 있다. 친박계 주자들은 “(공수처 신설은) 전 세계적으로 사례가 없는 초헌법적 발상”이라며 강하게 반발하는 입장이다. 반면 비박계 주자들은 공수처 도입에 대체로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새누리당 일부마저 공수처 도입에 긍정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은 자정 작용을 위해 2014년 도입했던 특별감찰 제도의 실효성에 물음표가 붙었기 때문이다. 특히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해 특별감찰에 나선 것을 놓고 이미 ‘면죄부를 부여하려는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해졌다. 특별감찰이 시작된 이후 검찰수사조차 중단되면서 비판은 더욱 거세졌다.

 

실제로 제도 도입 이후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취임했지만 비위정보 입수나 감찰 건수는 전무했다. 최근 특별감찰관이 우병우 수석을 감찰키로 하면서 첫 시험대에 올랐다. 강도 높은 수사를 기대하는 여론이 형성돼 있지만 강제수사권이 없고, 직무 수행 이후의 비리만 감찰할 수 있는 등 한계도 적지 않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특별감찰관의 우병우 수석 감찰에서 내놓는 결과물이 공수처 신설 논의의 결정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현행 제도하에서는 2011년 우 수석 처가의 부동산 특혜거래 의혹이나 2013~14년 ‘몰래 변론’ 의혹은 감찰 대상에서 제외된다. 핵심 의혹을 배제한 채 불충분한 감찰 결과가 도출될 경우 공수처 신설 논의에 더욱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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