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풀 마인드》, 지상파라서 뷰티풀하지 못했다
  • 하재근 대중문화 평론가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8.02 14:06
  • 호수 1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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빤하지 않은 《뷰티풀 마인드》 외면하고, 병원에서 연애하는 《닥터스》 선택한 시청자

월화드라마인 KBS 《뷰티풀 마인드》와 SBS 《닥터스》는 올여름 기대작이자 라이벌로 꼽혔다. 《뷰티풀 마인드》는 이제는 전설이 된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박유천·유아인·송중기 출연)의 작가 김태희의 신작이라는 점에서, 《닥터스》는 한류스타 박신혜가 선택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각각 기대를 모았다. 공교롭게도 두 작품은 모두 의학드라마라는 대목에서 겹쳤고, 첫 방영일까지 같았기 때문에 라이벌 구도가 더 강해졌다.

 

사실 방영 전까지는 《뷰티풀 마인드》가 더 주목받았다. 김태희 작가에 대한 믿음으로 KBS 내부적으로도 상당한 기대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막상 방영이 시작된 후 《뷰티풀 마인드》가 받아든 성적표는 ‘폭망’이다. 3%대 시청률로 지지부진하다가 결국 조기종영이 결정되고 말았다. 반면에 《닥터스》는 19%를 돌파해 올여름 최대 히트작으로 떠올랐다.

 

흔히 ‘의학드라마 불패’라고 한다. 그동안 많은 의학드라마들이 시장에서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뷰티풀 마인드》만은 조기종영이라는 기록적 폭망의 길로 들어섰을까.

 

《뷰티풀 마인드>는 원래 ‘닥터 프랑켄쉬타인’이라는 제목으로 2년 전부터 돌았던 시나리오였다. 당대 한류스타들이 주연으로 거론됐지만 줄줄이 고사해 제작이 늦어졌다. 한류스타들이 고사했던 이유는 주인공의 캐릭터가 일반적인 멜로드라마와는 달랐기 때문인 걸로 보인다. 프랑켄쉬타인은 괴물이다. 주인공을 괴물 의사로 설정한 것인데, 여기서 괴물이란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타인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특이한 존재를 말한다. 반사회적 인격장애, 즉 사이코패스가 주인공인 것이다. 

 

월화드라마 KBS 《뷰티풀 마인드》(위), SBS 《닥터스》(아래)


 

사이코패스가 주인공인 상업드라마의 한계 

 

흔히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은 뜨거운 사랑에 빠지는 인물로, 타인의 고통을 그냥 넘기지 못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사이코패스 같은 위험요인으로부터 지켜주는 사람이다. 반면에 이 드라마는 엉뚱하게도 남자 주인공을 사이코패스로 설정했으니 한류스타들이 꺼릴 만하다. 뚜껑을 열어본 결과, ‘혹시나’는 ‘역시나’였다. 기존 흥행 드라마들이 사이코패스를 주인공으로 하지 않은 건 다 이유가 있었다. 시청자는 사이코패스 주인공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시청자는 선하고, 따뜻하고, 인간적인, 사랑할 만한 사람을 좋아하고 응원한다. 그런 인물에게 감정이입하며 스토리에 빠져든다.

 

시청자가 감정이입하지 않으면 제아무리 잘 만든 스토리라도 시청자는 아무런 재미도 느끼지 못한다. 《태양의 후예》는 사실 허술한 드라마였지만 시청자가 ‘유시진 대위’에게 빠졌기 때문에 흥미진진하게 느껴졌다.

 

《뷰티풀 마인드》는 초기에 장혁을 이상한 위험인물 정도로 그렸기 때문에 시청자를 감정이입시키지 못했다. 와중에 여주인공인 박소담은 막무가내로 달려들어 일을 키우고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민폐 캐릭터였다. 시청자는 민폐 캐릭터에게도 절대로 감정이입하지 않는다. 시청자는 타인의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인물, 혹은 최소한 공감이라도 주는 인물에게 감정이입하는 법이다. 《뷰티풀 마인드》는 초기에 남녀 주인공 모두가 감정이입을 이끌어내지 못했거나 안 했기 때문에 폭망했다. 중반 이후 장혁의 성격이 바뀌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반면에 《닥터스》는 전형적인 주인공들을 배치했다.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이타적 인물들이다. 그러한 남녀 주인공이 광속(光速) 러브라인에 돌입했다. 러브라인이 터지면서 시청률도 같이 터졌다. 러브라인은 시청자의 본능적 관심사다. 앞에서 언급한 의학드라마 성공 요인들도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투입됐다. 그래서 준비된 성공의 길로 갔다.

 

네티즌은 흔히 지상파 방송사를 질타한다. 빤한 드라마 설정만 반복한다는 것이다. 그 빤한 설정이 바로 러브라인이다. 빤하지 않은 《뷰티풀 마인드》를 외면하고, 병원에서 의사들이 연애하는 《닥터스》를 선택한 것은 시청자다. 이러고도 방송사 탓만 할 수 있을까?

 

《뷰티풀 마인드》는 여러모로 기억할 만한 작품이다. 주인공이 시청자를 불편하게 하는 캐릭터라는 대목부터가 그렇고, 병원에서 연애를 거의 안 했다는 점, 특히 사이코패스를 ‘뷰티풀 마인드’라고 하는 전복적 상상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타인의 감정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목적을 위해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 사이코패스는 자기 직분에 그렇게 임한다. 바로 의사로서, 사람 살리는 일에만 몰두하는 것이다. 누구의 사정도 봐주지 않는다. 동료 의사의 실수나 병원의 경비 절감 구조조정, 이사장의 전횡 등 무엇이든 가차 없이 쳐버린다. 그래서 사이코패스면서 뷰티풀 마인드다. 반면에 감정을 느낀다는 일반인은 학생을 착취하는 교수, 신약 대박을 위해 부작용을 무시하는 병원사업자, 후계구도를 위해 직원들을 잘라내는 재벌2세 등 잔혹한 포식자의 사회를 이루고 산다. 그들에게 사이코패스는 묻는다. “나 같은 괴물이 아닌 당신들은 느낄 수 있나. 나 아닌 타인의 감정이 얼마나 아픈지?”

 

정상인 포식자들이 만든 비정상 사회에서 사이코패스가 오히려 ‘뷰티풀 마인드’가 된다는 역설. 사이코패스보다 수익성만을 따지는 병원이 더 괴물이라는 통찰. 이런 정도의 성취를 이룬 보기 드문 상업드라마를 시청자는 사이코패스처럼 외면했다. 만약 지상파가 아닌, 케이블 방송사였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3~4% 시청률로도 안정적으로 주제의식을 밀어붙일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보다 더 건조한 작품이 탄생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이상의 수치를 원하는 지상파 방송사는 단칼에 조기종영으로 잘라버리고 말았다. 지상파 드라마의 혁신은 또다시 러브라인에 밀려 유예됐다. 《뷰티풀 마인드》, 지상파라서 뷰티풀하지 못하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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