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집 교수의 시사유감] 김영란법을 대하는 대학 교수의 자세
  • 권상집 동국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8.04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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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불만이 아닌 스승의 본질을 먼저 생각할 때

국내 대기업 대부분은 월 1회 그룹 임원 또는 대표이사(사장)들을 대상으로 정기적인 명사 초청강연을 여는 경우가 많다. 대중에게 익히 알려진 삼성그룹 수요 사장단 회의 외에 국내 모든 그룹은 명사 초청 강연을 통해 시대의 통찰력과 지식 함양을 위해 국내외 주요 대학 교수들을 초청해 1~2시간 강연을 진행한다. 이에 따른 학문 분야별 명망 있는 교수들의 1회 강연료는 300~600만원으로 형성돼 있다. 급여 또는 연구비에 비해 많은 돈을 벌 수 있고 명예 또는 명성을 얻을 수 있는 기회이기에 외부 강연에 치중하는 교수가 최근에는 부지기수다.

 

이와 관련된 웃지 못할 스토리를 하나 소개한다. 지금으로부터 12년 전 모 기업의 그룹 사장 및 임원들(물론 그 자리에는 해당 그룹의 회장도 참석) 대상 명사 특강과 관련해 당시 국내 학계에서 꽤 권위가 알려진 모 대학 교수를 해당 기업이 초청해 특강이 진행된 적이 있다. 국내 최고의 대학에서 그리고 학문적 권위가 상당했던 해당 교수의 강연료는 당시 그 회사 기준으로 200만원이었다. 12년 전인 2004년 강연료이니 결코 적다고 볼 수 없는 금액이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해당 기업에서 강연료로 200만원을 지급하려고 했으나 강연을 마친 교수가 정중히 거절을 한 것이다. 여기서 뜻하지 않은 반전이 한 번 더 벌어졌는데 거절의 이유는 금액 자체가 너무 적어서 교수의 심기가 불편했다는 데 있었다. 즉, ‘내가 누군데 고작 200만원인가’라는 게 강연을 마친 교수의 불만이었던 셈이다.

 


헌법재판소 결정을 통해 김영란법의 적용 대상이 사립학교 교직원에게까지 대폭 확대 적용되면서 위의 사례는 이제 교수들의 먼 옛날 좋은 시절 일화(?)쯤으로 전해질 수 있을 것이다. 김영란법이 9월28일 시행되면 교수들의 강연료 역시 시간당 국공립대 30만원, 사립대 최대 100만원으로 엄격하게 규정되기 때문이다. 이른바 대기업 강연, 토크 콘서트 등 외부 강연에서 소위 ‘잘 나가는’ 교수들이 지식콘텐츠를 전파하며 막대한 소득을 얻던 시대는 거의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일까? 지난주 모 경제신문에서는 김영란법이 시행되는 9월말 이후 예정된 외부 강연을 모두 취소했다는 교수의 불평이 기사화됐다. 대한민국 상아탑이 혼란에 빠져들었다는 자극적인 기사까지 등장했다. 기사를 읽어보니 상아탑이 혼란에 빠졌다기보다 교수의 본질에 벗어난 행동에 치중한 이들이 혼란에 빠져들었음은 적어도 분명한 듯 하다.

 

과거와 달리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지식과 지혜, 트렌드 학습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해당 분야에 전문성을 지닌 대학 교수들이 더 많이 외부 강연 시장에 참여하게 됐다. 국내 최고의 연구중심 대학에 소속된 모 교수는 1년에 외부 강의만 100~150번을 한다는 얘기를 스스럼없이 공식석상에서 얘기한다. 과연 그게 자랑할 만한 일인지, 그리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새로운 연구에 집중해야 할 교수가 외부 강연으로 100번 이상을 다니는 게 타당한 일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학 교수의 본질에 집중하지 않고 본말이 전도된 이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김영란법이 대중의 지지를 받는 건 아닌지 그들은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물론, 김영란법에서 정한 ‘국공립대 교수의 시간당 강연료 30만원 제한’ 기준이 합리적인지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많다. 단적인 예로, 정부에서는 창의력과 상상력 등 무한한 무형 자산의 창조적 가치를 계속 주장하면서 이와 동시에 국내 대학의 석학 교수가 지닌 창조적인 지식콘텐츠의 가격을 국가가 일괄적으로 통제하는 건 확실히 문제가 있다. 참고로, 경영혁신 이론을 통해 세계 최고의 경영학자로 거듭난 게리하멜 런던 비즈니스스쿨 교수의 1시간 강연료가 5만~10만달러(6000만원 ~ 1억2000만원) 선이니 세계적인 지식과 학문적 권위를 갖춘 일부 국내 교수들에게는 역차별과 같은 일이 앞으로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에서 밝힌 바와 같이 사회적 손실보다 김영란법을 통해 얻게 될 사회적 순기능이 더 많이 존재할 수 있기에 이번 법안은 모든 교원에게 적용되는 것이 보다 타당하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모 신문에는 심지어 ‘경력과 학문적 권위가 비슷한 평가를 받는 국립대 교수의 강연료가 사립대 교수의 절반이면 누가 강연을 다니겠는가’라는 한 국립대학 교수의 인터뷰 기사까지 실렸다. 외부 강연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공유하고 이를 통해 보람을 느끼는 것이 아닌 강연료에 집착한다면 이미 그는 스승의 본질을 잊어도 한참 잊어버린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교사를 포함해서 대학 교수는 소명의식(Calling)을 반드시 갖춰야 하는 직업이다. 그리고 교육자가 지녀야 할 소명의식의 가장 첫 번째는 바로 봉사에 있다. 지식콘텐츠를 국가가 왜 일괄적으로 통제하느냐는 불만과 불평에 앞서 교육자의 사명감과 소명의식은 무엇인지 먼저 생각한다면 외부 강연료가 적고 많음에 불평할 여지가 없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지식콘텐츠를 듣기 위해 경청하고 진지한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돈으로 살수 없는 최고의 보람이자 최고의 가치창출 행위이기 때문이다. 한 시간에 500만원 받으면 자신의 지적 권위가 올라가고 한 시간에 30만원 받으면 자신의 지적 권위나 콘텐츠의 가치가 하락된다고 보는 교육자는 스승의 본질을 외면해도 너무 한참 외면한 사람이다.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실제로 많은 편법이 등장할 것이다. 대다수의 법이 그 자체로 완벽하지 않다 보니 언제나 빠져나갈 구멍도 많고 일정 부분 현실적 한계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가령, 물가는 해마다 1~3% 내외로 상승하는데 식사비 3만원, 선물 5만원 등 구체적인 수치로 제한하면 분명 많은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고, 수많은 편법과 음성적인 거래가 더 많이 늘어날 가능성도 크다. 영수증을 쪼개서 결제하고 일정 부분은 현금으로 거래하는 등 물밑에서 더 정교한 비리 네트워크가 형성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폐단을 근본적으로 걷어내기 위해 학생들에게 올바른 도덕적․윤리적 가치관을 심어줘야 할 교수가 외부 강연료의 대폭 삭감에 일희일비하는 것 자체가 국내 대학이 진정한 상아탑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단적인 예이다.

 

필자 역시 스승의 날, 많은 학생들로부터 작지만 소중한 정성이 담긴 선물 또는 편지를 받아왔다. 그런데 놀라운 건, 학생들이 정성 어린 편지 또는 선물을 보내줄 때 “교수님. 이거 얼마 안 해요. 죄송합니다”, “교수님 비싼 선물 아니에요. 다음에 더 좋은 걸로 보답하겠습니다”라는 말을 종종 한다는 것이다. 선물을 주면서도 학생들이 미안해하거나 선뜻 자신이 준비한 선물을 보이길 꺼려하며 고민하는 세태가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학생들의 정성이 담긴 선물은 이미 돈으로 살 수 없는 고귀한 가치가 내재돼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정량적으로 환산해서 정성을 평가하는 사회적인 풍토가 학생들의 마음까지 편치 못하게 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일선 교사를 포함해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들의 임무와 소명의식의 전제는 학생과 사회에 기여해야 할 봉사라는 점을 교육자들은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 지식콘텐츠의 가격을 왜 국가가 통제하느냐는 불만에 앞서 내가 가진 지식콘텐츠가 어떻게 사회에 기여할 수 있을까, 그리고 청중에게 어떻게 전달해야 그들의 사고력에 도움이 될까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교육자의 참된 도리이다. 당장 일부 기업들은 교수들의 외부 강연이 줄어들어 산학협력에 악영향을 주지 않을까 우려한다는 기사도 나왔고, 일부 국내 은행은 교수로 구성된 자문위원단을 유지할지 고민이라고 한다. 8월 폭염보다 필자는 이런 물질지향적 가치관이 더 덥고 불쾌하게 느껴진다. 지식콘텐츠의 가격을 논하기에 앞서 교육자로서의 봉사와 헌신을 먼저 고민하는 교수, 제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참 스승이 되어야 함을 스스로 더욱 다짐하게 되는 안타까운 2016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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