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호르몬, 탯줄·모유로 대물림된다
  • 노진섭 기자·구민주 인턴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6.08.08 14:32
  • 호수 1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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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아부터 성인까지, 성조숙증·기형·인지장애·비만·당뇨 위험

엄마가 배 속에 아이를 품고 있다고 가정하자. 이 아이는 태어나기 전부터 환경호르몬에 노출된다는 사실이 여러 동물실험에서 확인됐다. 양수와 제대혈(탯줄)을 통해 엄마의 환경호르몬이 아이에게 옮아가는 것이다. 최근에도 한양대에서 임신한 쥐에 화학물질을 주입하는 실험이 진행됐다. 얼마 후 암컷 새끼가 태어났는데 생식기가 정상(생후 33일)보다 5일 일찍 열렸다. 성체가 된 후에는 정상 쥐들보다 20%가량 적은 수의 새끼를 낳았다. 한마디로 생식 기능이 비정상적인 것이다. 어미 쥐에게 주입했던 화학물질은 프탈레이트(DEHP)다. 플라스틱을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화학첨가물로 거의 모든 플라스틱 제품에 사용한다. 배달음식을 싸는 비닐 랩이나 페트병(PET)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계명찬 한양대 생명과학과 교수(환경호르몬 대체물질 개발사업단장)는 “엄마가 환경호르몬에 노출되면 자식에게도 그 영향이 전해진다는 점을 발견한 실험”이라며 “동물실험 결과를 그대로 사람에게 적용하긴 힘들지만 임신 중이거나 모유를 먹이는 기간에 DEHP에 노출된 엄마가 낳은 딸은 사춘기가 빠르고 나중에 생식 능력이 떨어질 우려가 있다는 것이 이번 연구의 결론”이라고 말했다.

 

고제명 미국 일리노이대학 수의학과 교수의 연구에서도 임신 기간에 환경호르몬(프탈레이트)을 다량 섭취한 쥐가 낳은 새끼 중 수컷은 불임률이 최고 86%로 정상 쥐(25%)보다 3배 높았다. 엄마가 임신 기간에 환경호르몬에 많이 노출되면 아들·딸의 생식능력이 떨어진다는 게 이 연구의 시사점이다. 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당뇨병센터 소장은 “환경호르몬의 악영향은 대물림된다는 점에 심각성이 있다”며 “대물림은 다음 세대가 아니더라도 격세유전처럼 손자대까지도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임종한 인하대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환경호르몬은 유전자가 아님에도 사람의 염색체에 달라붙어 다음 세대로 전달된다”고 강조했다. 

 

태아는 각종 장애를 가지고 태어날 가능성이 크다. 최경호 서울대 보건대학원 환경보건학과 교수의 ‘환경호르몬의 건강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임신 기간에 환경호르몬에 노출된 태아는 신경계·귀·신장·심장·수족·면역체계·뼈·폐·생식기에 악영향을 받는다. 태아부터 사춘기까지는 생식기관과 호르몬·면역체계가 완전히 발달하지 않아 환경호르몬에 더 취약하다. 하은희 이대목동병원 예방의학과 교수는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프탈레이트는 성호르몬을 교란해서 성조숙증을 일으키고 인지발달장애를 초래하므로 아이가 공격적이 되거나 학습장애,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자폐증 등에 걸릴 수 있다”며 “또 비만을 불러 성인이 되는 과정에서 당뇨·심혈관질환·대사증후군 등의 위험성이 커진다”고 설명했다.

 

환경호르몬은 대물림된다. 반드시 다음 세대가 아니더라도 격세유전처럼 한 세대를 건너뛴 후에도 그 악영향이 나타난다는 사실이 시사저널 취재 과정에서 밝혀졌다.


태어날 때부터 환경호르몬에 노출

 

아이가 태어나면서 선천성 기형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인하대병원 연구팀은 2009년부터 2010년까지 서울 등 7개 대도시에서 태어난 아이 40만3000여 명의 생후 1년간 진료 내용을 추적했다. 그 결과 신생아 1만 명당 선천성 기형아는 548명으로 집계됐다. 100명 중 5.5명꼴인데 3.7명이던 16년 전보다 크게 늘었다. 특히 생식기 기형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남자아이의 경우 소변이 나오는 곳(요도 입구)이 음경 끝에 위치하지 않고 아래쪽에 생기는 기형(요도하열)은 14배, 고환이 음낭이 아닌 배 속으로 들어간 병(잠복 고환)은 11배 늘었다. 1984년부터 1994년까지 10년 사이 요도하열 발생비율이 2배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태아의 생식기 기형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임종한 교수는 “잠복 고환 등 기형은 남성호르몬을 만들지 못하게 하는 화학물질의 노출과 관련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저농도에서 오히려 독성이 더 나타나는 게 환경호르몬의 특성이다. 환경호르몬은 접촉 시기가 중요한데 어릴 때 노출되면 불임, 발기부전, 정자 수 감소 등 생식기 이상을 초래한다”고 말했다. 

 

아이가 태어났다. 부모는 홍길동이라는 이름을 지어줬고 아이에게 분유 대신 모유를 먹였다. 모유는 아이에게 영양공급, 면역력 증강 등 여러모로 이롭다. 번거롭더라도 엄마가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이유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환경호르몬이 모유를 통해 아이에게 전달된다는 사실은 가혹하기만 하다. 2007년 당시 식약청은 “2004년부터 3년 동안 서울·제주·울산·춘천에 거주하는 산모 120명의 출산 후 30일째 모유를 분석한 결과 환경호르몬(PBDE)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이 성분은 불에 잘 타지 않아서 컴퓨터·TV 등 가전제품에 난연제로 사용된다. 또 신체 내에서 쉽게 분해되지 않아 엄마의 지방조직에 축적된 후 모유를 통해 아이에게 전달된다. 이 성분은 모유 1g당 3.6ng(나노그램·10억분의 1g)이 나왔는데 2004년 2.6ng에서 증가한 수치다. 시중에 유통되는 물고기 중에서 PBDE 농도가 가장 높다는 광어에서 검출된 양(0.89ng)과도 비교된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2014년 4개 권역(서울·인천·충남·영남)에서 산모 264명의 모유를 검사했다. 피자를 자주 배달시켜 먹는 엄마의 모유에서 환경호르몬(PFOS)의 농도가 높았다. 포장상자에 있는 환경호르몬에 자주 노출된 것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 물질은 1950년대 계면활성제나 표면처리제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물과 기름에 섞이지 않는 성질 때문에 이후 코팅종이, 음식용기에 사용하고 있다. 최근 이 물질은 뇌·신경·간에서 독성을 나타내고, 신생아의 지능과 몸무게에 악영향을 주는 것으로 밝혀졌다. 세계 각국에서 ‘환경호르몬 모유’ 사례가 보고되자 세계보건기구(WHO)는 모유에 환경호르몬이 있더라도 부작용보다 이로운 점이 많으므로 모유 수유를 권장한다는 결론을 내놨다.

 

 

어린이 몸속 환경호르몬, 성인의 1.6배

 

유아기를 지난 홍길동 어린이는 환경호르몬 노출에서도 벗어날 수 있을까. 2014년 어린이 몸속에 축적된 환경호르몬 농도를 측정했더니 성인보다 높은 수준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환경부 국립환경과학원이 2012년부터 2년 동안 전국 초·중·고(만 6~18세) 어린이·청소년 1820명을 대상으로 체내 유해물질 농도를 조사했다. 그 결과, 비스페놀A 농도는 어린이(만 6~11세)가 성인(만 19세 이상)보다 1.6배 높았고, 프탈레이트도 1.5배 높게 나타났다. 비스페놀A는 1930년대 임신부의 유산을 막는 약물로 개발된 인공 여성호르몬(에스트로겐)이지만 정작 약효가 없어서 다른 용도로 사용돼 왔다. 플라스틱 제품과 화장품·항균비누 등에서 나오는 이 물질은 성기능 저하, 전립선암 유발, 여성 불임, 아이들 뇌세포 파괴 등의 원인으로 알려졌다. 한국도 우선적으로 관리하는 환경호르몬이다.

 


10대에 들어선 홍길동은 부모가 비만하지도 않는데 뚱뚱해지기 시작했다. 이 원인 중 하나로 환경호르몬이 지목됐다. 예컨대 비스페놀A는 평생 비만의 원인이 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미국 터프츠대학 비버리 루빈 교수팀은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임신 때부터 생후 16일까지 비스페놀A에 노출된 새끼들이 더 뚱뚱하게 성장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비스페놀A가 체중 조절 호르몬(렙틴 등)을 교란하기 때문이다. 또 독일 헬름홀츠 환경연구소에 따르면 환경호르몬은 우리 몸의 신진대사를 방해해 지방이 증가하며, 이런 증상은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두드러진 것으로 나타났다. 

 

성인이 된 홍길동은 얼굴과 몸을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해 스크럽제, 기능성 세안제 등을 사용한다. 이들 제품에는 1mm 미만의 작은 알갱이들이 들어 있다. 이 알갱이의 주성분은 플라스틱(폴리에틸렌·폴리프로필렌)이다. 이른바 미세 플라스틱은 세면대에서 정화시설로 빠져나가고 하천을 거쳐 바다까지 흘러간다. 미세 플라스틱은 바다를 떠다니며 농약 성분(DDT), 1급 발암물질(PCBs) 등 다양한 환경호르몬과 결합한다. 이를 플랑크톤과 물고기가 삼킨다. 전문가들은 미세 플라스틱이 내장에서 발견되는 물고기는 4마리 중 1마리일 것으로 추정한다. 홍길동은 그 생선을 통해 환경호르몬을 섭취한다.

 


이미 생태계에서는 환경호르몬의 폐해가 현실로 나타났다. 2006년 미국 워싱턴을 흐르는 포토맥강에서 환경호르몬의 영향으로 성별이 불분명해진 ‘간성(間性)’ 물고기가 발견됐다. 당시 AP통신은 물고기들에서 수컷이 암컷 성향을 띠는 현상이 자주 목격되고 있고 이는 환경호르몬 등으로 인한 생태계 교란 때문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스몰마우스배스라는 물고기는 모두 간성 물고기로 판명됐고, 라이마우스배스 수컷도 13마리 중 7마리가 암컷 성향을 보였다. 그중 3마리는 알까지 품고 있었는데 알을 낳아도 모두 부화가 되지 않는 미성숙 알인 것으로 밝혀졌다. 미 정부 지리조사팀은 해마다 변종 개체 수가 급증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안철우 교수는 “환경호르몬은 한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며 “선박이나 비행기 등 운송수단이 발달하면서 환경호르몬도 무역 길을 따라 빠르게 이동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환경호르몬 정보 제공해야”

 

소비자의 환경호르몬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정부와 기업은 대체물질을 찾기 시작했다. 예컨대 미국과 유럽은 영유아용 컵에서 비스페놀A의 사용을 자발적으로 중지했다. 대신 비스페놀S나 비스페놀F 등의 대체물질이 나왔다. 그런데 대체물질도 여전히 문제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다. 2015년 사이언스와 2014년 네이처에 실린 논문에서는 비스페놀A의 대체물질의 독성 가능성이 제시됐다. 2013년 연구에서는 비스페놀S를 물고기에 21일 동안 노출했더니 성호르몬과 유전자에 영향을 끼쳐 번식이 감소하고 기형이 증가했다.

 

또 기업들은 친환경 또는 천연 제품을 강조한다. ‘천연’이라면 무조건 안전할 것이라는 인식이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천연물질을 부추기는 분위기가 더 무섭다”며 “구연산을 레몬에서 신맛을 내는 천연물질이라며 안전성에 의심을 품지 않는데 사실 눈에 들어가면 치명적인 물질이고 환경부는 이를 살생물질로 규정한 바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이 무조건 화학물질은 나쁘고 천연물질은 좋은 것이라는 인식을 하게 된 배경에는 환경호르몬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환경호르몬의 안전성 정보를 국민에게 제공해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안철우 교수는 “환경호르몬에 대해 연구하다 보니 환경호르몬의 허용치라는 것은 무의미했다. 같은 양의 술을 마셔도 취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는 것처럼 환경호르몬도 사람에 따라 미치는 영향이 다르다. 남녀·지역·임신부·어린이·노인 등 다양한 조건에 미치는 환경호르몬의 영향과 안전성 여부를 밝혀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개인은 환경호르몬을 피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여성환경연대에 따르면, 한국인 1명의 연간 플라스틱 소비량은 98.2kg으로 영국(56.3kg)이나 미국(97.7kg)보다 많다.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면 환경호르몬 노출도 감소한다. 예를 들어 프탈레이트는 인체 내에서 생물학적 반감기(10~12시간)가 짧아 약간만 주의해도 악영향을 많이 감소시킬 수 있다. 또 모유에서 환경호르몬이 확인됐다고 해서 모유 수유를 하지 않는 것보다 산모가 플라스틱 제품과의 접촉을 피하는 게 현명하다. 일회용 제품, 전자레인지 사용을 피해도 프탈레이트 흡수량을 줄일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 환경호르몬을 완전히 피해 갈 수는 없다. 최소한 각 제품의 사용 범위를 벗어난 행동은 삼가는 게 좋다. 일회용 종이컵은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플라스틱 성분(PE·폴리에틸텐)이 코팅돼 있다. 모양은 종이컵이지만 사실상 플라스틱 컵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이 코팅제의 녹는 온도는 105도 이상이다. 끓은 물을 부어서 커피 등을 마시는 데에는 지장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컵밥 등 간편식 조리법이 나오면서 일회용 종이컵에 음식을 담아 전자레인지에 데워 조리하는 일이 늘었다. 이 과정에서 코팅제가 녹으면서 환경호르몬이 나온다. 또 일부 종이컵 제품에는 플라스틱 뚜껑(PS·폴리스틸렌)이 있는데 녹는 온도가 90도다. 이 온도를 넘기면 발암물질이 나올 수 있다. 농심 관계자는 “식품을 담은 종이용기는 대부분 PE로 코팅돼 있어서 전자레인지에 넣지 말라는 경고가 있다”고 설명했다. 제일제당 관계자는 “전자레인지용 용기에는 고열에 강한 성분을 사용하므로 ‘전자레인지용’이라는 표기를 살펴 사용하는 게 안전하다”고 말했다. 

 

한 소비자가 대형마트에서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즉석식품을 고르고 있다.

 

“편리함과 건강을 맞바꾼 결과가 환경호르몬”

 

최근 맥주캔에 닭을 꽂아 세운 후 열을 가해 익히는 이른바 비어치킨이 젊은 세대에서 인기다. 캔 내부에도 코팅제가 발라져 있는데 가열되면서 환경호르몬(비스페놀A)이 나올 수 있다. 하은희 교수는 “일회용 제품은 재사용하지 않고, 플라스틱 제품을 갈라지거나 색이 변할 정도까지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실 편리함을 추구하는 만큼 더 많은 화학물질을 사용하게 된다. 예를 들어 음식물이 달라붙지 않는 프라이팬은 조리가 편리하고 설거지도 쉽다. 그러나 이 팬의 코팅된 부분에서 환경호르몬(PFC)이 나올 수 있는데 이는 아이들 성장호르몬을 교란하므로 자칫 발육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불편하더라도 코팅이 없는 프라이팬을 사용하면 최소한 환경호르몬 걱정은 덜 수 있다. 하은희 교수는 “편리함과 건강을 맞바꾼 결과가 환경호르몬”이라며 “조금 불편하면 환경호르몬 우려는 많이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환경호르몬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앞으로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인간이 알고 있는 환경호르몬보다 모르는 환경호르몬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되돌릴 수 없을 만큼 환경호르몬의 폐해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임종한 교수는 “건강에 이상이 있다면 환경호르몬의 영향이 아닌지 한 번쯤은 전문의와 상담해 볼 필요가 있다”며 “환경호르몬 접촉을 줄이는 생활습관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항균필터는 대국민 사기”

효과 없는 에어컨·공기청정기의 3M 필터 차량용만 600만 개 판매 

 

조금이라도 유독물질을 피하려고 사용해 온 항균필터가 대국민 사기라는 주장이 나왔다. 항균 효과도 없으면서 불안감만 키운 결과라는 것이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필터에 OIT 액체를 발랐고, 처음에는 잠시 검출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 날아가면서 검출되지 않는다. 항균력이 있다는 것은 거짓말이고, 3M 기술자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대국민 사기다”라고 지적했다.

 

가정용·차량용 에어컨에 사용한 항균필터에서도 화학 성분이 검출됐다.

신생아·임신부·호흡기질환자 등이 찾는 가정용 에어컨, 공기청정기, 차량용 에어컨에 사용한 항균필터에서 독성물질(OIT)이 검출됐다. OIT(옥틸아이소사이아졸리논)는 곰팡이나 균을 억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방부제나 방균제 등에 사용된다.  최근 가습기 살균제 논란을 일으킨 물질(CMIT)과 유사한 화학물질이다. 가습기 살균제 성분처럼 치명적이지는 않지만 피부발진과 눈 손상을 유발하고 지속적으로 흡입하면 폐 염증을 일으킬 수 있다. 미국 농무부는 OIT를 농약 성분으로 지정했다. 한국 환경부 국립환경과학원도 2014년 이 물질을 유독물로 고시했다.

 

이른바 ‘OIT필터’는 대부분 3M 제품이다. 2000년대 후반 국내에서 항균 제품이 인기를 끌자 항균필터 사용도 급증했다. 현대모비스를 통해 판매된 3M 항균필터만 지난 10년 간 약 600만 개로 추정된다. 현대모비스 관계자는 “항균필터는 6개월이나 1년 주기로 교체하는 소모품”이라며 “2006년부터 3M 항균필터를 판매했는데 올 상반기에 약 30만 개가 팔렸다”고 밝혔다. 현대모비스는 2014년 3M 항균필터에서 나오는 OIT의 독성을 인지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당시 외부 시험기관에 해당 필터 검사를 의뢰한 결과 ‘미검출’ 결과가 나왔고 정부가 정한 안전기준도 없어서 계속 사용했다”며 “현재는 모두 회수·교환하고 있으며 앞으로 OIT가 없는 필터를 판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삼화 의원실(국민의당)에 따르면, OIT가 함유된 3M의 공기청정기 향균필터는 최근 3년간 118만 개 이상이 공급된 것으로 밝혀졌다. 가정용 에어컨과 차량용 에어컨까지 포함하면 시중에 공급된 항균필터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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