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석 변호사의 생활법률 Tip] '해운대 교통사고'는 살인일까 과실치사일까
  • 박현석 변호사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8.08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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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형법상 책임원칙에 대하여 간단히 살펴보려고 한다. 책임원칙이란 사람이 비록 범죄에 해당하는 행위를 저질렀다고 해도 그 행위를 스스로 책임질 수 없는 사유가 있다면 처벌을 할 수 없다는 원리를 말한다.

 

지난 7월31일 부산 해운대 도심에서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참사가 있었다. 원인은 아직 공식적으로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뇌전증을 앓고 있던 김모씨가 뇌전증 약을 먹지 않은 상태에서 운전하다가 오후 5시16분쯤 해운대문화회관 사거리에서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던 차량을 맹렬한 속도로 달려와 그대로 들이받고 시속 100km에 가까운 가속 상태에서 아무런 제동 없이 앞으로 튕겨 나가 횡단보도를 건너던 보행자 4명을 쳤다. 이 차량은 결국 교차로를 지나던 택시와 재차 충돌하고서야 멈췄다. 사고를 낸 김씨는 경찰 조사과정에서 “평소 지병인 뇌전증으로 약을 복용 중이었지만 이날 약을 먹지 않았다”며 “사고 당시 기억이 없다”고 진술했다. 김씨에 대해서는 아마도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가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인다.

 


그런데 왠지 이 사건을 업무상 과실치사혐의로만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같은 종류의 사건은 아니지만 몇 년 전 술을 마셨다는 이유로 감경하는 판결에 대해서 사회적으로 비판 여론이 들끓었던 일은 이 사건에 시사점을 준다. 뇌전증이라는 위험한 질병을 앓고 있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으면서 약을 먹지 않고 운전을 한 행위는 사실상 살인행위라고 볼 수 없는 것인가. 우리 형사법의 기본원칙은 누군가를 처벌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그 사람의 행위가 구성요건에 해당하고 위법성 조각사유가 없으며, 그 사람이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는 세 가지 요건을 요구하고 있다. 물론 이에 더하여 세부적인 요건이 더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김씨는 이런 요건에 비추어 본다면 4명을 사망에 이르게 한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는가. 우리 형법은 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형법 제10조 제1항). 다만 위험의 발생을 예견하고 자의로 심신장애를 일으킨 자는 위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다(같은 조 제3항). 먼저 김씨는 본인이 뇌전증을 앓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고 그 날은 약까지 먹지 않은 상태에서 운전했다. 따라서 비록 김씨가 뇌전증으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어서 교통사고를 냈다고 해도 형법 규정에 따라 처벌을 면제받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김씨가 자신이 뇌전증을 이용하여 누군가를 살해하려는 고의가 있었다고 볼 수 있을까. 앞서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고 느끼지만 김씨가 약을 먹지 않는 방법으로 운전하면서 교통사고를 내는 것과 그로 인해 누군가 죽어도 할 수 없다는 인식, 즉 최소한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는 점을 입증하기는 어렵다. 독감 등으로 강한 수면제가 포함된 약을 먹고 운전하다가 사망사고를 낸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자신의 부주의로 책임을 질 수 없는 행위를 유발하기는 했으나 그 행위만으로 누군가를 살해할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경찰도 이런 점을 고려하여 김씨를 살인죄로 의율하지는 않고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업무상 과실치사상의 혐의로 수사를 시작했고 이후 뺑소니 혐의도 추가하여 체포영장을 신청하여 체포영장을 발부받았다.

 

뺑소니 혐의가 추가된 이유는 이날 김씨가 사고 당시 의식이 있었다는 증거를 경찰이 확보했기 때문이다. 경찰이 확보한 영상에는 김씨가 운전하던 승용차가 사고 지점에서 300m 떨어진 곳에서 앞서가던 차량을 가볍게 들이받은 뒤 도주하면서 2차로에서 3차로, 1차로로 이동하며 질주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차선을 이리저리 바꿔가며 다른 차를 피해 운전하는 것이 뇌전증 발작으로 의식을 잃은 사람이 운전하는 것이라고는 볼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김씨가 뇌전증으로 심신 상실상태에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경찰의 철저한 수사로 김씨의 변명이 사실과 다르다는 점이 어느 정도 밝혀진 것 같다. 

 

그런데 이처럼 밝혀지지 않고 실제로 행위자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는 경우는 어떻게 할 것인가. 예를 들어 자신의 행위를 인식하지 못하는 정신장애인이 사람을 사상하는 경우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 경우는 책임원칙에 따라 정신병자를 상해나 살인죄로 처벌할 수는 없다. 다만 이런 사람들을 사회에 방치할 경우 동종 범죄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치료감호를 받도록 하고 법원의 결정이 내려지면 정신병원 등 감호시설에서 감시 및 보호를 받게 될 것이다. 다소는 개인의 법감정에 맞지는 않겠지만 책임을 질 수 없는 사람을 처벌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지 생각하면 수백 년간 인류 지혜의 결과임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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