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돌보미 폭행사건’ 5살 서연이의 눈물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8.09 09:16
  • 호수 139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른쪽 눈 실명 등 장애 6급 판정받아 피의자 가압류 대비해 재산 빼돌려

지난 2013년 7월12일 강원도 원주에서 ‘돌보미 폭행사건’이 발생했다. 정아무개씨(여·52)가 말을 듣지 않는다며 자신이 돌보던 생후 17개월 된 이서연양의 머리를 수차례 때렸다. 이로 인해 서연이는 혼수상태에 빠져 여러 번의 수술을 받고 겨우 의식을 회복했으나 오른쪽 눈이 실명되는 등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피의자 정씨는 징역 5년형을 받고 교도소에 수감됐으나, 이 사건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서연이의 부모는 정씨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고, 재판에서 이겼으나 제대로 된 배상금을 받지 못했다. 정씨의 재산을 변호사가 강제경매절차를 거쳐 처분했기 때문이다. 서연이의 부모는 최근 서울지방변호사회에 진정서를 내고 “정씨가 변호사와 짜고 재산을 미리 빼돌린 것으로 의심된다”며 조사를 촉구했다. 서연이 부모는 왜 사건 발생 3년 만에 이러한 진정서를 낸 것일까. 

 

사건이 일어난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2013년 5월께 서연이의 부모는 경제적인 이유로 장사를 시작했다. 어린 늦둥이 딸은 돌보미에게 맡기기로 했다. 마침 원주의 한 아파트에 살고 있는 정아무개씨를 알게 됐다. 초등학교 2학년 딸을 둔 정씨는 간호사 면허증과 보육교사 자격증을 갖고 있었다. 부모가 보기에 딸을 맡기기에 더없이 좋은 조건이었다. 

 


거짓말로 일관한 돌보미

 

서연이 엄마 서혜정씨(47)는 “간호사 면허증이 있으니 아이가 아프거나 할 때 응급조치나 초기 대응을 더 잘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또 보육교사 자격증이 있으니 아이와 더 잘 놀아줄 거라는 기대 속에 아이의 보육을 믿고 맡겼다”고 말했다. 

 

서연이 부모는 정씨에게 매월 100만원을 주기로 하고 아이를 위탁했다. 그러나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히고 말았다. 아이를 맡긴 지 55일 만에 사고가 터졌다. 7월14일 오후 1시10분쯤 혜정씨는 돌보미에게서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서연이가 아파서 병원 응급실에 있으니 빨리 와달라”는 것이었다. 

 

서연이 부모는 하던 일을 멈추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응급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서연이가 침대에 누워 있고, 그 주위를 의사와 간호사들이 에워싸고 있었다. 의사는 “아이가 지금 의식이 없고 자발적 호흡이 안 되는 상황이라 기도 삽관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서연이 부모는 어쩔 줄을 몰랐다. “서연아, 엄마 왔어. 눈 좀 떠봐”라고 말해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도 계속해서 음식물만 토해 냈다. 

 

좀처럼 원인을 찾지 못하자 소아과 의사는 아이가 “부딪히거나 넘어진 적이 있느냐”고 물었고, 옆에 있던 돌보미 정씨는 “그런 적이 한 번도 없다. 점심 먹이고 샤워시키다가 물을 조금 먹은 것 같다”고 해서 아이의 폐를 검사했지만 아무 이상이 없었다. 

 

도대체 어찌 된 일일까. 건강하던 서연이가 왜 갑자기 의식불명 상태가 된 것일까. 의사들은 원인을 찾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천금 같은 1분 1초가 속절없이 지나갔다. 이렇게 검사를 하다가 3시간을 허비했다. 

 

그래도 원인을 찾지 못하자 소아과 의사는 마지막으로 머리 CT(컴퓨터단층촬영)를 찍어보자고 했다. 약 20분 후 담당 의사가 서연이 부모를 급히 찾았다. 의사는 CT 촬영 사진을 보여주며 급성 외상성 경막하 출혈(뇌를 둘러싸고 있는 경막 아래의 출혈)로 응급수술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했다. 

 

의사는 이런 경우는 학대나 폭행으로 생기는 것이며, 수술을 해도 살 수 있는 확률이 20~30%라고 했다. 살아도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야 한다는 말에 부모는 억장이 무너졌다. 혜정씨는  의사에게 “제발 서연이만 살려주세요”라고 애원했다. 서연이가 응급실에 실려온 지 약 3시간10분 만에 수술이 이뤄졌고, 수술은 약 5시간 동안 이어졌다. 부모에게는 가슴 졸이고 피를 말리는 시간이었다. 서연이가 깨어난 시간은 수술 다음 날인 7월15일 새벽이었다. 부모는 “엄마, 아파”라는 첫 마디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바늘로 심장을 찌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때까지도 서연이의 머리에 생긴 출혈의 원인을 정확하게 알지는 못했다. 그러다 수술을 위해 삭발한 딸의 머리를 보고서야 진실을 알게 됐다 머리에는 멍 자국이 4개나 있었다. 왼쪽에 있는 멍 자국은 아주 선명했다. 한눈에 봐도 서연이의 상태와 연관이 있어 보였다. 의사는 이것 때문에 경막하 출혈이 생겼고, 두개골 골절이 없는 것을 보니 어딘가에 세게 부딪쳤거나 주먹 같은 것으로 맞은 것 같다는 말을 전했다. 의사의 소견을 듣고 서연이 부모는 ‘설마’했던 돌보미의 폭행을 더욱 짙게 의심했다. 

 

이렇게 정씨의 범행은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에 불안을 느낀 정씨는 서연이가 CT 촬영에 들어가자 “집에 신생아를 두고 왔다”며 응급실을 나갔지만 거짓말이었다. 혜정씨는 참았던 분노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정씨에게 전화해 “내 딸이 잘못되면 너를 가만두지 않겠다”고 말한 뒤 끊었다. 수술 다음 날 서연이 부모는 머리에 멍 자국이 찍힌 CT 사진을 들고 정씨를 찾아갔다.

 

정씨는 아파트 현관문을 굳게 잠그고 서연이 부모를 만나주지 않았다. 심지어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며 112 신고까지 했다. 경찰이 출동해서 문을 열라고 하자 정씨는 인터폰으로 “저 여자가 죽인다고 했다. 너무 무섭다”는 말만 반복했다. 사실상 대화를 거부했다. 결국 부모는 정씨를 만나지 못하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머리를 폭행당해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이서연양

다시 병원으로 오던 중 정씨가 서연이 아빠의 휴대전화로 연락을 해 왔다. 정씨는 “(서연이가) 달래도 계속 울고 떼를 써서 손바닥으로 세 차례 때렸다”며 폭행을 시인했다. 통화는 약 40여 분에 걸쳐 이뤄졌다. 서연이 아빠는 속기사 사무실에서 녹취록을 작성하고, 이것을 토대로 원주경찰서에 정씨를 고소했다. 이때가 사건 발생 3일 후인 7월17일이었다. 

 

돌보미 정씨는 끝까지 솔직하지 못했다. 경찰 조사에서 서연이 아빠한테 얘기했던 폭행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자신이 말했던 것까지 부정하고 나섰다. 하지만 경찰은 직접 증거는 없지만, 범행 인정 녹취록 등 정황증거가 충분하다고 판단하고 정씨를 고소 1주일 만에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서연이 부모는 119 구조대로 찾아가 처음 출동했던 구급대원을 만났다. 그에게서도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정씨의 신고를 받은 구급대원이 아파트에 가 보니 서연이가 의식을 완전히 잃지는 않고 있었다. 왜 신고를 했냐고 물었더니 정씨는 “아이가 샤워 도중 물을 조금 먹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구급대원이 다시 “아이들은 물을 조금만 먹어도 기도로 들어갈 위험이 크고 폐렴 증상으로 나타날 수 있으니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정씨는 이상 행동을 보였다. 서연이가 의식을 잃어가는 중인데도 “꼭 가야 하느냐, (병원에) 안 가면 안 되냐”고 되물었다. 구급대원이 보기에도 정씨의 태도가 미심쩍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기고 “엄마 아니시죠?”라고 했더니 그때서야 정씨는 자신이 돌보미라고 얘기했다. 

 

정씨는 당장 죽어가는 아이보다 자신의 폭행 사실을 숨기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한사코 병원에 가기를 꺼려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병원에 와서도 진실을 숨기고 “샤워 도중 물을 먹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만약 처음부터 솔직하게 얘기했다면 의료진이 의식불명 원인을 찾느라 3시간 넘게 허비하지 않아도 됐다. 정씨는 딱 한 번 중환자실 보호자 대기실에 찾아왔고, 서연이의 부모에게 “때린 적 없다”며 인면수심의 모습을 보였다. 

 

서연이의 상태는 갈수록 심각했다. 여러 차례 수술도 받았다. 서연이 엄마는 “1차 수술에서 머리뼈를 떼어내고 출혈 부위를 제거하는 두개감압술을 받았다. 머리뼈는 영하 80도에서 냉동 보관했다가 2차 수술에서 머리뼈를 다시 넣는 두개성형술을 시행했다”고 전했다. 

 

서연이는 병원에 입원한 지 53일 만에 퇴원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2개월에 한 번씩 CT 촬영을 하고 뇌손상을 입은 탓에 경기 약을 복용해야 했다. 사건 발생 3년 후 서연이는 오른쪽 눈을 실명하고, 오른쪽 다리가 마비됐으며, 왼쪽 눈도 실명 가능성이 크다. 폭행 당시 전두엽을 크게 다쳐 앞으로 성장하면서 충동 억제 장애까지 나타날 수 있는 등 장애 6급 판정을 받았다. 

 

폭행당하기 전의 이서연양

돌보미-변호사 수임계약 수상쩍다

 

서연이는 심한 후유증과 장애 때문에 평생 치료를 받아야 한다. 여기에 드는 치료비도 만만치 않다. 서연이 부모는 정씨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해 법원은 2억700만원에 이자까지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서연이의 부모는 기막힌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 

 

정씨는 재산 가압류에 대비해 경찰 조사 중에 재산을 처분했다. 본인 명의의 아파트 2채는 급매물로 내놓고 예금계좌는 해제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이 중 한 채는 서연이 부모가 가압류를 하기 전에 팔렸다. 서연이 부모는 나머지 한 채에 대해 5000만원의 가압류를 걸었다. 재판에서 승소하면 당연히 재산권 행사를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재판에서 승소한 뒤에 보니 정씨 명의의 아파트가 이미 처분된 뒤였고, 고작 3200여만원밖에 배상을 받지 못할 처지가 됐다. 여기서 정씨의 변호사인 전아무개씨가 등장한다. 전 변호사는 정씨의 형사재판 2심·3심과 손해배상 소송을 맡았다. 전 변호사는 재판이 시작된 후 수임료를 받지 못했다며 법원에서 두 번에 걸쳐 1억1000만원의 지급명령을 받았다. 

 

그리고는 정씨의 아파트를 강제경매 절차를 거쳐 처분하고 8000만원 정도를 가져갔다. 이런 상황을 서연이 부모는 감쪽같이 몰랐다. 평생 후유증과 장애 치료를 해야 하기 때문에 서연이에게 3200만원의 배상금은 치료비에도 턱없이 부족하다. 

 

물론 법적 절차에는 문제가 없다. 서연이 부모가 의심하는 것은 ‘수임료 액수’다. 법조계에서는 정씨와 전 변호사 간의 수임료의 적정 액수는 보통 500만~1000만원대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럴 경우 1억1000만원은 통상적인 수임료의 10배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이에 대해 서연이 부모는 정씨와 변호사가 짜고 수임료를 부풀리는 수법으로 재산을 미리 빼돌렸다고 의심한다. 서울지방변호사회도 서연이 부모의 진정서를 접수하고 뭔가 석연치 않다는 판단하에 조사에 들어갔다. 이에 전 변호사는 “정당한 수임계약 체결과 정당한 경매 절차였다”는 입장이다. 서연이 엄마는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할 딸만 보면 억장이 무너진다”며 “현재 서울지방변호사회에 진정서를 접수하고 추가로 보충서를 제출했다. 대한변호사협회를 거쳐 징계가 확정되면 부당이익금에 대해 환수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돌보미 정씨는 형기를 마치면 일상으로 돌아오겠지만, 이제 5살이 된 서연이의 아픔과 상처는 누가 보상해 줄 수 있을까.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