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덮친 네팔 대지진, 국가 경제도 뒤흔들었다
  • 네팔 카트만두=송응철 기자 (sec@sisapress.com)
  • 승인 2016.08.10 09:42
  • 호수 1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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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세계문화유산, 나뒹군 극빈국 탈출의 꿈

2015년 4월25일, 대지진이 네팔을 강타했다. 리히터 규모 7.8. 굳건할 것 같던 에베레스트마저 뒤흔든 강진이었다. 재앙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대지진 발생 이튿날인 4월27일 규모 6.7의 여진이 발생한 데 이어, 5월12일에는 규모 7.4의 강진이 지축을 흔들었다. 지진으로 인한 인명피해는 막대했다. 2만2303명의 부상자와 8959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현지인들은 삶의 터전 상당 부분도 잃었다. 아예 무너져 내리거나 반파된 주택이 107만여 채에 달했다. 이로 인해 400여 만 명에 달하는 이재민이 발생했다. 사실상 국가 전체가 초토화된 것이다.

 

그로부터 1년3개월여가 흐른 지금, 천재(天災)가 할퀴고 간 네팔의 상처는 얼마나 회복됐을까. 이런 궁금증을 안고 7월25일 네팔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6시간40분 정도를 날아 네팔 수도 카트만두의 트리부반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예상과 달리 공항에서는 지진 피해를 찾아볼 수 없었다. 현지 관계자에 따르면, 공항은 지진 피해가 비교적 적었던 곳이다. 이 때문에 지진 당일에만 폐쇄했다 다음 날 재개방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 7곳 중 4곳 ‘대파(大破)’ 

 

차량에 몸을 실고 숙소로 가는 길, 신호등 없는 도로 위에 복잡하게 얽힌 차량들은 쉼 없이 신경질적인 경적소리를 쏟아냈다. 시내로 접어들자, 지진의 흔적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외벽이 뜯겨나가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건물들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사진 1) 그 잔해들은 길가 여기저기에 쌓여 있어 거리 전체가 대형 공사현장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건축자재가 고가이기 때문에 잔해를 재사용하기 위해서라는 후문이다. 인도 역시 온전치 못했다. 블록이 울퉁불퉁하게 어그러져 있는가 하면, 아예 맨땅이 그대로 드러난 곳도 적지 않았다. 곳곳에서 부러진 전봇대가 보였다. 팽팽히 당겨진 전깃줄에 간신히 지탱하고 있는 모습이 위태로웠다. 

 

이처럼 네팔 전역이 지진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린 것은 정부의 책임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네팔에는 80여 년을 주기로 지진이 발생한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실제, 대지진 발생 81년 전인 1934년에도 규모 8.0 이상의 강진이 나라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든 전례가 있다. 그럼에도 네팔 정부는 내진설계 관련 건축법규를 전혀 마련하지 않았다. 이것이 지진 피해를 키운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자 네팔 정부는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다. 정부 관계자는 “향후 지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새로운 건축법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네팔의 자랑이자 관광자원인 문화유산들도 지진 피해를 피하지 못했다. 네팔은 전국에 오랜 역사를 간직한 왕궁이나 사원 등 각종 문화유산들이 존재했다. 힌두교와 불교 색채의 고색창연한 유적들은 그동안 관광객들의 발길을 끌어왔다. 그러나 네팔 대지진으로 유적지 131곳과 문화재 560여 개가 훼손됐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문화유산 8곳 가운데 4곳도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여기엔 왕궁터인 바산타푸르, 파탄, 박타푸르의 더르바르 세 곳과 네팔 최대 규모의 불탑 보드나트 등이 포함됐다. 

 

 

대지진 이후 관광객 수 30% 이상 급감 

 

이들 가운데서도 카트만두 동쪽의 박타푸르 더르바르 광장은 가장 큰 손실을 입은 곳으로 평가된다. 왕궁과 사원군이 밀집한 이곳은 영화 《리틀 부다》의 촬영지로 한층 유명해진 지역이다. 그러나 이곳은 더 이상 영화 속 모습을 간직하고 있지 않았다. 상당수 사원들이 흙더미로 변했기 때문이다. 기울어 있는 건축물도 많았다. 나무장대로 지탱해 언제 무너져도 이상할 것이 없어 보이는 건물 외벽 사이로 시민들이 오가고 있었다.(사진 2)

 

일부에선 복원 작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인부들 몇 명이 무너진 잔해를 다시 쌓아올리는 수준에 그쳤다. 유적지 관계자에 따르면, 대부분 이곳의 복원 계획은 거의 수립돼 있지 않다. 군데군데 쌓인 잔해들에는 이끼와 잡초들이 자라 있어 얼마나 오랜 기간 방치돼 왔는지를 보여줬다.(사진 3) 사원이나 왕궁에서 떨어져 나온 섬세한 조각들이 광장 한편에 마련된 임시 보관소에 쌓여 있었다.(사진 5) 유적들의 도난 방지를 위해 현지 군인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네팔 최대 규모의 불탑인 보드나트도 파괴됐다.(사진 4) 카트만두 시내 중심에 위치한 보드나트는 반구형 돔 위에 13층 규모의 첨탑이 솟아 있는 구조였다. 그러나 지진으로 첨탑이 굴러떨어졌다. 이곳에선 현재 재건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지진이 발생한 지 15개월 이상이 지났다는 점을 감안하면 복구는 많이 진척된 상태가 아니었다. 

 

힌두교도들의 화장터로 잘 알려진 바그마티강 인근의 힌두교 사원인 파슈파티나트는 그나마 지진 피해가 적은 곳으로 꼽힌다. 그러나 파슈파티나트 사원 주변의 사원군 가운데 어느 하나 멀쩡한 곳이 없었다. 완전히 무너져 내린 사원이나 조각상도 많았고, 그나마 멀쩡한 사원들에서도 빠짐없이 균열이 발견됐다.(사진 6) 그러나 이곳은 두르바르나 보드나트와 달리 복구의 손길이 전혀 미치지 않고 있었다. 

 

이들 유적지의 경우는 그나마 낫다. 또 다른 세계문화유산인 다라하라타워는 복구가 불가능한 상태로 파손됐다. 카트만두의 랜드마크이자 최고층 건축물이던 다라하라타워는 원래 흰색 원통 9개를 쌓아올리고, 그 위에 둥근 지붕을 얹은 모습이었다. 타워 내부로 들어서면 9층까지 나선으로 213개의 계단이 나 있는데, 8층에 오르면 카트만두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가 있었다. 이 때문에 카트만두 최고의 관광명소로 꼽히기도 했다. 그러나 이전의 모습은 말로만 전해 들을 수 있었다. 타워가 지진으로 주춧돌만 남긴 채 형체도 없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대지진이 관광자원을 무너뜨리면서 네팔의 재정도 크게 흔들어놨다. 관광산업은 농경국가인 네팔 국가재정의 한축을 책임져왔다. 사실상 관광산업을 제외하고는 외화수입원이 거의 없다는 게 현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네팔 정부가 지진 발생 직후부터 국제사회에 자국 관광을 와달라는 요청을 지속적으로 해 온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호소도 관광객들의 마음을 돌려놓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네팔 문화유적들을 둘러보는 내내 외국인 관광객은 많이 눈에 띄지 않았다. 현지 주민들도 관광객이 많이 줄었다고 입을 모았다. 네팔 관광청에 따르면, 네팔의 2015년 관광 수익은 전년과 비교해 30% 이상 감소했다. 이렇게 줄어든 수익은 약 100억 달러로, 네팔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에 육박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네팔 정부는 관광산업이 활성화돼야 재건사업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를 위해선 문화유적들의 재건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러나 문화유적 복원사업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복구 자금이 없어서가 아니다. 네팔이 세계 각국으로부터 약속받은 지원금은 4조원대에 달한다. 네팔 정부가 재건 비용으로 추산한 7조4000억원 가운데 절반 이상이 이미 마련된 것이다. 

 

 

정당 간 힘겨루기에 재건사업 지지부진

 

그렇다면 네팔이 문화유적 복원에 속도를 내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 원인은 정치권에 있었다. 네팔 정부는 지진 발생 2개월 뒤 국가재건위원회 설립에 관한 법령을 발의했다. 그러나 의회에서 통과된 건 8개월 뒤인 2015년 12월이었다.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는 재건사업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정당들의 힘겨루기가 원인이었다. 네팔 정부는 올해 4월이 돼서야 문화유적 복원에 착수했다. 에크낫 다칼 네팔 평화재건부 장관은 “재건작업이 예정대로 빠르게 진행되지 못한 것은 구호자금을 올바르게 사용하기 위한 법과 규율이 필요했기 때문”이라며 “현재는 정당 간 타협이 마무리돼 재건작업에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문화유적 복원사업에는 다시 한 번 제동이 걸렸다. 6월부터 한 해 강우량의 80%가 집중되는 우기(6~8월)가 맞물리면서다. 에크낫 장관은 우기가 끝나는 대로 재건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국민들 사이에서 문화유산도 중요하지만 이재민이 먼저라는 비난 여론이 조성되고 있어서다. 네팔에는 현재 300만 명 이상의 이재민들이 천막이나 양철집 등 임시거처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사진 7) 네팔 정부는 주택재건 비용으로 가구마다 2000달러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보조금을 받은 가구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4월엔 참다못한 시민들이 정부를 비판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네팔 정부로선 문화유산 재건에 무게를 두기 어려운 상황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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