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키시마호 생존자 증언조차 외면한 진상조사, 누구를 위한 정부인가”
  • 이민우 기자 (mwlee@sisapress.com)
  • 승인 2016.08.11 10:35
  • 호수 1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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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째 진상을 파헤치고 있는 전재진 우키시마호폭침진상규명회 회장

“정부가 진상조사를 한다고 해서 생존자들이 지장까지 찍어놓은 증언 자료들을 갖다줬어요. 그런데 자신들이 직접 들은 증언 내용이 아니라서 인정할 수 없다는 거예요. 진짜 그들이 진실을 밝히려고 했을까요.”

 

25년째 우키시마호 침몰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고 있는 전재진 우키시마호폭침진상규명회 회장은 정부를 향해 강하게 비판했다. 과거 정부가 진상조사에 나섰지만 형식적인 태도로 일관하며 생존자 증언조차 무시했다는 주장이다.

 

정부는 과거 여러 차례 위원회 이름을 바꿔가며 일제 강점기 피해자들에 대한 조사와 지원 활동에 나섰다. 하지만 진상조사 대상이 해방 이전까지 발생한 사건들로 한정됐다. 수차례 요구 끝에 전후 이뤄진 사건들에 대한 조사도 이뤄졌지만 형식적이었다. 우키시마호 폭침사건과 관련한 결과물은 지난 2008년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에서 내놓은 ‘우키시마호사건소송자료집’ 두 권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소송의 의미를 분석하면서 내세운 ‘우키시마호 사건의 기초사실’ 내용은 일본 정부의 발표를 그대로 인용했다.

 

생존자 이철우씨는 자신이 죽은 뒤에도 우키시마호 폭침 사건의 진실을 꼭 밝혀달라며 열 손가락의 지문이 닮긴 증언록을 남겼다.


유가족도 아닌 그가 우키시마호 사건의 진상규명 활동에 나선 이유는 우연히 일본을 방문했을 때 받은 충격 때문이다. 환경운동을 벌이던 그는 지난 1992년 아시아반핵포럼에 참석했다가 유적지 답사 과정에서 우키시마호가 침몰한 장소를 찾게 된다. 일본인 동행자로부터 이 사건에 대해 듣고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곤 이 사건을 기록하고 사람들에게 알리기로 결심한다.

처음 활동을 시작했을 때에는 어렵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미처 이 내용을 파악하지 못한 정부가 제대로 조사해 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만큼 충격적인 내용이었기에 국민적 공분도 이뤄질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정부가 움직이지 않자 국민들 또한 이 사건을 제대로 알 수 없었다. 생존자들을 만나 증언 자료를 만들고, 피해자 증언 대회 등을 통해 사건을 알렸다.

 

그렇게 25년이 흘렀다. 그가 만난 80여 명의 생존자 가운데 연락이 이어지는 사람은 2명밖에 남지 않았다. 열 손가락 지문을 남기면서 “이 증언을 기억해 달라”던 생존자들은 대부분 세상을 떠났다. 

 

올해 5월과 6월 두 차례 국민신문고를 통해 우키시마호 사건의 진상규명 등을 요구하는 민원을 제기했다. 아직도 일본 앞바다 갯벌 속에 묻혀 있을 희생자 유골부터 수습하자는 내용이었다. 이에 대해 행정자치부는 “업무에 참고할 계획”이라는 답변만 반복했다.

 

그는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한다. 당시 상황을 말할 수 있는 생존자들조차 세상을 떠난 상황에서 자신마저 포기하면 우키시마호 침몰사건의 진실은 영영 빛을 볼 수 없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누군가는 우키시마호 침몰사건의 진상을 제대로 알리고 기억해야지요. 그래야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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