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빈자리 채우는 꽃 이야기 들려주는 유명 출판인
  • 조철 문화 칼럼니스트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8.12 11:06
  • 호수 1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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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이름을 외우면 생각이 푸른빛을 띤다”

“우리는 세상에 대해 늘 일을 도모하고 말을 만들지만 나무는 언제나 조용하다. 눈앞의 풍경을 바라보면 세상에 펼쳐진 모든 것들이 한 그루의 나무로 수렴된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꽃 한 송이를 가지 끝에 올려놓음으로 이 세상을 맵시 있게 마무리한다. 이만한 보물을 어디에서 또 만날 수 있겠는가.”

 

산에 오르는 이유는 제각각이다. 산의 정기를 받으려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심신을 달래려고, 체력을 단련하려고…. 그중 꽃을 보러 산에 오르는 이가 있다.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다. 

 

예전에는 이 대표 또한 산에 올라 앞만 보고 걸었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그동안의 버릇을 버리고 혹시 이곳 어딘가에 꽃이 있지 않을까 발밑을 훑으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걸음을 내딛는다. 그러다가 낙엽들 사이에서, 계곡 언저리에서, 바위틈에서 꽃을 발견하고서는 황홀경에 빠진다. 

 

산의 정상에 이르러 다른 산행자들이 거대한 능선이며, 봉우리며 장엄한 눈앞의 풍경에 시선을 빼앗기는 그때, 그는 바위틈에 핀 돌양지꽃에 눈길을 준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크기. 그는 몸을 굽혀 그 작디작은 꽃을 눈에 담는다. 

 

이 대표는 꽃 산행을 다니면서 ‘꽃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 글들을 엮어 <내게 꼭 맞는 꽃>을 펴냈다. 이 책은 우리가 평소 무심코 지나치는 산과 들에서 어엿하게 살아가는 꽃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가 대학에서 식물학을 전공한 것이 결코 헛되지 않게 됐다. 하지만 그는 꽃의 세계에 뒤늦게 입문한 초심자의 마음으로, 직접 걸음을 걸어 꽃 앞에 가서 육안으로 확인하고 코끝으로 냄새 맡은 바를 글로 담아냈다. 그러면서 본명인 ‘갑수’를 뒤로 감추고 필명 ‘굴기’를 앞세웠다.

 

이굴기 지음 궁리출판 펴냄 384쪽 1만8000원


“저곳에 저 꽃이 없다면 그 자리가 얼마나 휑할까”

 

“저곳에 저것이 없다면 그 자리가 얼마나 휑하랴. 오로지 고유하게 자연의 빈자리를 채우는 그 나무 아래, 저 꽃 앞에 또 엎드린다. 굴기(屈己)한다. 누가, 뭐라 해도, 이 순간만큼은 황홀, 황홀하다.”

 

‘내게 꼭 맞는 꽃’을 제목으로 올린 까닭은 뭘까. 정말 사람마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꽃이 있는 걸까. 이 대표 또한 잘 모를 때는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이 얼마나 단조롭고 답답할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다르다. 식물이 얼마나 변화무쌍하고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지, 자연이 얼마나 현명한지 알기에, 꽃 앞에, 나무 아래 서면 숙연해진다고 말한다. 그러니 ‘꼭 맞는 꽃’이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처음에는 나도 절정의 꽃, 잘생긴 꽃을 찾으려고 했다. 벌레 먹지도 않고 완벽한 꽃. 그런데 완벽이라는 것을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그건 내 눈의 조건을 말하는 것이었다. 꽃은 그냥 있다가 지는 것이다. 그리고 바람과 벌이 꽃을 가만 놔두지 않는다. 조화라면 가장 예쁘고 티끌 하나 묻지 않은 모습으로 계속 있겠지만, 자연 속에 있는 꽃은 티 묻고 벌레 먹은 모습이 더 자연스럽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연이라고 하는 곳은 벌레와 바람과 햇빛과 그런 모든 것들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싸우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 꽃이라는 것은 흔들리고 훼손되고 조금 부족한 것일 수밖에 없는 거다. 그런 걸 볼 줄 알아야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자연과 분리되지 않고 탯줄처럼 연결”

 

산에 들며 식물을 관찰하는 저자의 시선은 단지 식물에만 머물지 않는다. 붉은 홍시를 달고 있는 감나무를 보며 감나무 나뭇가지에 올라타 나무를 자동차 삼아 놀았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축구공 무늬를 닮은 고광나무 앞에서 골대를 향해 계속 전진만 해 온 것 같은 지난 세월을 되돌아본다. 도심의 보도블록 틈새에도 씨를 퍼뜨리는 민들레 관모를 이야기할 때는 외할머니의 가느다란 흰 머리카락을 기억에서 꺼내온다. 낙엽이 한창인 산길을 걸으면서는 나도 우주를 구성하는 일부임을 확실하게 자각한다. 스스로 아무런 영양분을 생산하지 못하는 인간은 식물들에게 기생하는 존재이기에, 모든 식물들 앞에서는 몸을 낮추게 된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내가 세상하고 분리돼 있고 나는 자연계에서 떨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먼지라도 하나 묻을까 싶어서 털어내고 유난을 떨기도 했다. 그런데 미당 서정주의 시처럼, 꽃 한 송이가 피기 위해서는 천둥이 울고 먹구름이 치듯이, 다 연결돼 있다는 거다. 산을 찾아가면서 ‘내가 자연과 분리돼 있지 않구나, 탯줄처럼 연결돼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은 뒤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꼭 맞는 꽃’이라는 것은 그런 생각을 들게 해 줄 때 나온 말인 것이다. 그 꽃 이름 하나가 삭막할 수도 있는 삶에 생기를 불어넣어주는 것이다. 

 

“물론 자연이라고 하는 것이 노자가 말한 것처럼 인자하지는 않다. 곤충도 있고, 더럽고 지저분하기도 하다. 그런데 그 한순간을 지나고 나면 자연을 있는 그대로 좋아하게 된다. 우리가 생활하는 공간에도 나무 하나 꽃 한 송이가 없으면 얼마나 삭막한가. 그런 것처럼 내가 하는 말 중에 꽃 이름을 하나 넣는다든지, 내가 쓰는 글에 나무 이름을 하나 넣으면 생태적으로 분위기가 살아난다. 마찬가지로 늘 꽃 이름 하나를 중얼거리면 내 생각이 푸른빛으로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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