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수요 관리 필요한 건 ‘가정용’ 아닌 ‘산업용’
  • 김익중 동국대 의대 교수, 경주환경운동연합 연구위원장 ()
  • 승인 2016.08.17 15:34
  • 호수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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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율뿐 아니라 에너지 정책 전반 근원적으로 손봐야
가정용 전기요금이 뜨거운 관심사가 되었다. 폭염의 기승으로 가정에서 에어컨 사용이 증가하면서 전기요금이 상승했는데, 그 상승률이 너무나 크다는 것이다. ‘요금폭탄’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면서, 지금의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게 일었다. 

우리나라의 전기요금은 산업용·가정용·일반용·교육용·농업용 등으로 구분하고, 서로 다른 요금제를 적용하고 있다. 또한 전기요금은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 원리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정부, 즉 ‘한전’이라는 공급자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결정되고 있다. 이렇게 결정된 전기요금은 분명히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누진제가 적용되는 것은 가정용뿐이다. 누진율도 6단계로 나뉘어 있고, 1단계와 6단계의 요금 차이가 11.6배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참고로 미국은 2단계 1.1배, 캐나다는 2단계 1.5배, 일본은 3단계 1.5배, 대만은 5단계 2.4배이다. 독일과 프랑스는 아예 누진제를 적용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정용에만 유독 가혹한 누진제를 적용하고 있다는 말이 나옴 직한 상황이다. 

가정용 전기요금에 적용된 누진제 탓에 에어콘 실외기도 제대로 역할을 못하고 있다

국내 전기 수요, 가정용 14%, 산업용 56%

정부와 한전이 가정용 전기요금에 누진제를 적용하는 목적은 전기 수요 관리에 있다. 전기 수요가 증가하면 화력 및 원자력 발전을 늘려야 하고, 이에 따라서 미세먼지·지구온난화·핵사고 등의 위험이 증가하기 때문에 수요 관리는 반드시 해야 할 정책과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수요 관리를 제대로 하려면 전기 수요 증가의 원인부터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래프는 선진국 몇 개 나라와 우리나라의 전기 수요 증가 폭을 나타낸 것이다. 주요 선진국들은 수십 년 전부터 전기 수요가 거의 증가하지 않고 있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전기가 가장 비싼 에너지임에도 우리나라는 주요 선진국들보다 많은 전기를 사용하고 있다. 전기 수요가 증가하는 수십 년 동안 경제성장률은 선진국들과 비슷했다. 다시 말해 전기 사용 증가가 경제성장을 의미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이렇게 우리나라에서 전기 사용이 급증한 것은 가정용 전기 사용 증가 때문이 아니다. 가정용 전기는 거의 증가하지 않은 상태가 수십 년간 이어져온 반면에 산업용 전기 수요는 급격하게 증가해 왔다. 그 결과 우리나라 전기 수요 중에서 가정용이 약 14%, 산업용이 56% 정도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주요 국가들에서 가정용과 산업용 전기 수요가 거의 비슷하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지난 수십 년간 우리나라의 전기 수요 증가는 대부분 산업용 증가에 의한 것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정부가 수요 관리를 하려면 산업용 전기부터 수요를 관리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산업용 전기 수요가 급격히 증가한 데는 몇 가지 중요한 요인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원인은 낮은 전기요금이다. 낮은 전기요금은 우리나라에서 에너지효율화산업이 발달하지 못하게 했다. 선진국들은 수십 년 동안 건물의 단열, 실외 블라인드 설치, 고효율의 기계 개발 등 에너지 효율화를 위해 노력해 왔으나, 우리나라는 이러한 노력을 할 동기가 부족했다. 전기요금이 낮아서 기업들이 에너지 효율화에 투자한 효과를 체감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또한 낮은 전기요금은 다른 에너지를 전기로 대체하는 ‘전기화’를 유도했다. 열효율이 가장 낮다는 전열기 사용이 급증해 지금은 전기로 쇠를 녹이고, 전기로 바닷물을 끓여서 소금을 생산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원가 이하로 공급되는 산업용 전기는 형평성에도 큰 문제를 발생시켰다. 원가 이하의 전기요금에 의해서 한전의 누적적자는 수백조원에 이르게 되었고, 이 적자는 모두 국민 세금의 부담이 되었다. 국민의 세금 부담이 늘어난 만큼 기업은 전기요금을 통해 이익을 얻었는데, 이는 다음 두 가지 사례에서도 잘 드러난다. 미국은 한국의 철강제가 낮은 산업용 전기요금을 통한 정부의 보조금 지급이라고 판단해 반덤핑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또한 삼성전자 등 20개 대기업이 낮은 전기요금으로 얻은 이익이 7792억원이라는 2012년 국회 자료도 존재한다. ‘국민의 세금으로 대기업의 전기요금을 대신 내주는’ 상황인 것이다. 

산업용 전기요금, 원가 이상으로 올려야

가정용 전기요금의 가혹한 누진제는 이러한 의미에서 산업용이나 일반용(상업용)에 비해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 그러나 이 문제는 누진율의 보정만으로는 해결되지 않고, 보다 근원적으로 손을 봐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전기요금 제도의 개선을 위해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가정용 전기요금의 누진제도는 유지하되 너무 가혹하지 않도록 조정할 필요가 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현재 우리나라의 누진율은 너무 심하다고 판단된다. 둘째, 산업용과 일반용 전기요금을 적어도 원가 이상으로 올려야 한다. 한전의 적자를 국민 세금으로 메우는 관행은 이제 그만 두어야 한다. 

셋째, 이렇게 전기요금이 정상화되면 한전도 정상적인 영업을 했을 때 적정 이익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한전의 이익은 다시 국민의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방식, 혹은 미래지향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작년에 국제유가의 하락 등으로 한전은 10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달성했지만, 그 돈을 주주 배당, 직원 수당 등으로 사용해 이른바 ‘돈 잔치’를 벌인 바 있다. 도덕적으로 용인되기 어려운 일이었다. 한전의 이익은 재생가능에너지 개발, 에너지효율화사업 등에 사용되어서 수십 년 동안 이어온 국민 부담을 덜어주어야 할 것이다. 

넷째, 현재 우리나라의 전기 수요는 여름철 낮 시간에 피크에 도달한다. 그런데 바로 이 시간대에 태양광 발전량은 최고조에 달한다. 이는 우리나라 전력 피크를 태양광으로 완화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독일의 경우, 여름철 전력피크를 태양광으로 생산한 전기가 담당함을 보여주었다. 한전과 정부는 태양광 발전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재생가능에너지의 전기 생산비율은 1%가 채 되지 않는다. 2014년 세계 평균 22.8%에 비하면 너무나 초라한 모습이며 세계 꼴찌 수준이다. 미세먼지와 지구온난화, 핵사고의 위험 등을 일으키는 화력과 원자력에 의존하는 지금의 전기 생산방식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현 시점은 가정용 전기요금의 누진율뿐 아니라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 전반에 관해 논의하고, 방향을 재설정해야 할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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