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학교] 행정실무사들은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
  • 조유빈 기자 (you@sisapress.com)
  • 승인 2016.08.18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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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비정규직들이 넘어야 하는 ‘차별의 고개’ - ⓶ 행정실

일반행정실무사는 학교에서 각종 제증명서를 발급하는 민원업무와 학교에 들어오는 돈을 관리하는 세입업무 등을 맡는다. 공식적인 ‘행정 업무’가 이들의 역할이다. 그러나 비정규직 행정실무사들은 이것 말고도 업무가 많다. 정규직 업무가 이들에게 하나 둘 넘어온다. 교장 선생님께 드릴 커피를 타고, 손님이 오면 과일을 깎는다. 축하 선물로 들어온 화분들에 묶인 리본 정리도 이들의 역할이다. 

 

용인의 한 초등학교에서 10년째 근무 중인 성지현씨는 8월1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학교비정규직 증언대회’에 나와 이야기를 풀었다. 그에게 학교는 ‘참 이상한 곳’이다. 10년이 지나도 문화가 변하지 않는 이상한 공간이다. 변하지 않는 문화란 ‘허드렛일을 모두 낮은 사람에게 시키는 문화’였다. 학교에 손님이 온다고 하면 며칠 동안 청소를 하고 학교를 꾸민다. 손님을 접대하기 위해 과일과 음료 등을 준비하는데 인력을 낭비한다. 학교에 손님이 오면 교직원들이 모두 같이 모여 손님 접대를 준비해야 하는 것이 맞는데, 비정규직인 교무실무사나 행정실무사들이 이 일을 모두 떠맡는다. 

아침에는 출근하자마자 교장 선생님의 ‘모닝 차(tea)’를 탄다. 점심을 드시고 난 뒤 한 잔을 더 탄다. 휴가라도 가게 되면 다른 동료에게 부탁을 해야 한다. 교사들이 회의를 할 때 차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교육청이 ‘내빈 접대 업무는 담당자가 하거나 관리자가 직접 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수차례 보냈지만 교직원 차까지 타줘야 하는 문화는 변하지 않았다. 인원감축으로 업무가 늘면서 차 접대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한 실무사는 회의 시간에 “차 타는 것만이라도 안하게 해 달라”고 건의했다. 그랬더니 교장 선생님이 직접 이 실무사를 찾아와 이렇게 ‘부탁’했다고 한다. “미안하지만 이번만~ 아, 그냥 종이컵에 10잔만.”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외치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 이중 행정실무사들은 학교 내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으로 여겨지고 있다.
성씨가 전에 있던 학교에서는 손님이 왔을 때 차를 타주던 역할을 한 교육실무사가 맡고 있었다. 교육실무사가 자리를 비우면 부장 교사는 여기 저기 전화를 하면서 ‘차를 타 줄’ 교육실무사를 찾았다. 그 모습을 보고 “그 시간에 직접 차를 드리면 되지 않냐냐”고 묻자 부장교사로부터 “네가 타주면 안 되겠냐”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리고 이 학교에 온 뒤, 성지현씨는 당시 교육실무사의 역할을 맡고 있다.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실무사들이 토로한 사적 업무 지시는 더 다양하다. 학교에 손님이 오는 날은 포크에 리본을 묶으라고 했고, 파전을 부치라고 하는 학교도 있었다. 교직원 우편물과 택배도 배분해야 했고, 행정실이 아닌 교장실과 교무실 청소를 해야 했다. 음식물 쓰레기 처리도 이들의 몫이었다. 교장 선생님의 자녀가 결혼한다며 청첩장 등을 만드는 결혼 준비부터 집에 있는 컴퓨터 관리까지, 개인적인 일들도 실무사들의 업무로 변했다.

“비민주적인 학교 운영을 보고 무엇을 배우겠나”

실무사들이 노동조합에 호소하는 가장 큰 고통은 ‘업무를 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업무를 하려고 하면 차 한 잔 달라, 복사해 달라, 신발장 정리해 달라, 청소해 달라는 요청이 끊임없이 몰려 온다”는 것이다. 허드렛일을 하다보면 자존감이 상실돼 업무 의욕이 떨어진다. 업무 배정도 일방적이라 감당할 수 없는 많은 업무가 배정되는 일도 있다. 하지만 못하겠다고 말하는 순간 관리자의 눈 밖에 난다. 한 관리자는 “교육청의 교사행정업무경감 정책에 따라 행정 실무사들이 업무를 많이 해야 한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실무사들은 자신들에게 업무를 많이 하게 하는 것이 정책의 목표라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업무를 많이 한다고 해서 임금이 오르지는 않는다. 교육공무직본부에 따르면 학교비정규직의 임금은 정규직 대비 평균 60% 수준에 불과하다. 실무사 기준 시급은 6366원으로, 올해 최저임금 6030원을 간신히 넘는다. 성지현씨는 “허드렛일은 비정규직이니 당연히 하라고 하면서 교사들이 하던 전문적 업무까지도 강제로 떠넘기는 것이 교육정책이라고 한다. 이렇게 비민주적인 학교 운영을 보고 학생들이 무엇을 배우겠냐”고 말했다. 

학교에 내려온 공문에는 실무사의 직종 명을 부르거나 ‘선생님’이라고 부르라고 돼 있다. 각 교육청도 ‘선생님’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학교 안의 모든 사람들은 실무사를 ‘OO씨’라고 부른다. 더러 교사들도 ‘비정규직에게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교권침해’라며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반대하는 경우도 있다. 고유 업무와 역할이 있는 교직원들을 천한 사람 취급하며 호칭을 부르고,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이란 인식을 새겨 넣고 있는 곳. 그들이 증언하는 학교는 마치 봉건제적 신분사회와 같은 이상한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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