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보검 광고’ 보니 중국 화날 만하네
  • 하재근 대중문화 평론가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8.18 17:16
  • 호수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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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보복’ 성격 중국의 생트집?···내용상 ‘중국 모욕’으로 볼 여지 다분해

중국에서 ‘박보검 광고’가 논란이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가 인터넷판(환구망)에서 ‘한국의 인기배우 박보검이 중국을 모욕하는 광고를 찍었는데 누구 책임이 더 크다고 생각하느냐’는 여론조사를 실시했고, 중국 네티즌의 비난이 이어졌다.


문제의 광고는 박보검이 출연한 스포츠 브랜드 광고다. 여기서 박보검은 바둑 대결을 펼치는데, 상대의 이름이 ‘만리장성’이다. 바둑 대결이 갑자기 춤 대결 화면으로 바뀌면서 만리장성은 어설프게 춤을 추다 여자에게 뺨을 맞고, 박보검은 이를 웃으면서 지켜본다. 그리고 다시 바둑 대결 화면으로 돌아와 박보검이 바둑에서도 승리하고 만리장성은 고개를 숙인다는 내용이다.

중국 쪽에서 이 광고 내용을 ‘중국 모욕’이라며 문제 삼자, 한국 매체들은 ‘생트집’이라며 더 크게 문제 삼았다. ‘중국 언론들 반한(反韓) 여론 부추겨’ ‘박보검이 무슨 죄? 중국 언론, 출연 광고 놓고 이례적 여론조사’ ‘중국 언론의 박보검 때리기’ ‘박보검 광고로 한류 잡기’ ‘박보검, 중국 한류 때리기의 희생양’ 등등. 한국 매체들의 관련 기사 제목이다. 

중국의 ‘한류 보복’ 분위기 갈수록 심화 

최근 사드 배치 때문에 중국이 한류 보복에 나선다는 우려가 크다. 우리는 ‘우리의 안보 문제에 왜 중국이 감 놔라 배 놔라 하느냐, 부당한 주권 침해다’라고 생각하지만, 중국에선 사드를 한국의 안보 문제가 아닌 중국의 안보 문제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미국이 일본에서 동남아로 이어지는 중국 봉쇄선을 짜고 있는데 한국이 여기에 동참했다는 시각이다. 그 전부터 중국이 사드에 대해 강력하게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배치를 선택한 건, 중국을 무시한 것이라며 분노한다. 중국이 나름 한국에 그동안 성의를 보여왔는데 한국이 뒤통수를 쳤다는 배신감도 있는 듯하다. 그래서 한국에 보복하거나, 최소한 한국이 앞으로는 중국을 무시하지 않도록 강력한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혹은 한국인들을 크게 놀라게 해 사드 배치를 늦추거나 취소하도록, 또는 중국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하는 세력의 한국 내 입지가 약해지도록 유도하는 전략일 수도 있다.

한국을 흔드는 강력한 한 방이 바로 자신들의 거대한 시장을 무기화하는 것이다. 중국의 국익에 배치되는 행동을 할 때 중국 시장에의 접근을 차단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중국도 세계 자유무역 질서 속에서 이익을 얻는 나라이고, 대국의 체모가 있기 때문에 대놓고 무역보복을 하기는 어려우리란 전망이다. 그래서 주목도가 높은 대중문화 분야를 상징적으로 활용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유인나는 중국의 28부작 드라마에 캐스팅되어 촬영을 거의 다 끝마친 상황이었는데, 갑자기 하차설이 나왔다. 해당 방송사인 후난위성TV 측에서 “내부 방침에 따라 한국 연기자가 나오는 장면을 모두 편집해 내보내기로 했다”고 말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처음에 별일 아니라던 유인나의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는 며칠 후에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우려를 표명했다. 하차설이 사실인지는 아직 확인이 안 됐지만, 어떤 압력이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김우빈과 수지의 중국 팬미팅도 갑자기 연기됐는데, 중국 측에서 ‘불가항력적인 이유’라고 했다는 전언이다. 불가항력적인 이유란 결국 당국의 지시 아니겠느냐는 관측이다. 중화권 매체들은 ‘중국의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광전총국)이 한류 규제를 비공식적으로 지시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중국 게임업계 관계자가 “사드 문제로 인해 앞으로 한국 게임사들은 중국에서 사업을 하기가 훨씬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하기도 했다. 환구시보는 ‘한국에 어떻게 보복해야 하나’라는 특집기사를 내보냈다. 

중국 당국이 공식적으로 대놓고 한류 보복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정황들로 짐작하건대 부정적인 기류는 분명히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여파로 한·중 간 대중문화 교류 사업들이 거의 전면적으로 중단되고 있다는 업계 관계자들의 하소연도 잇따른다. 주식시장에선 SM엔터테인먼트·YG엔터테인먼트 등 한류 주가가 추락했다. 이미 정치·외교적인 이유로 일본 시장을 잃은 한류가 중국에서마저 된서리를 맞는 것 아니냐는 공포가 크다. 현실적으로 중국이 한국을 완전히 적대시할 가능성은 낮지만, 전략적인 차원에서 한류를 압박할 가능성은 높은 상황이다.

한-중간 논란이 되고 있는 '박보검 광고'의 한 장면
국내 방송계 ‘중국인 비하’ 뿌리 깊은 관행

박보검 광고 논란도 그런 한류 보복의 일환으로 해석됐고, 실제로 중국 관영 매체가 일개 연예인을 놓고 여론조사까지 벌이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기 때문에 한류 보복으로 보이는 건 분명하다. 그래서 국내 매체들과 네티즌이, 박보검 광고가 부당하게 공격당해 희생양이 됐다면서 중국의 생트집을 규탄한 것이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번 광고는 ‘중국 모욕’ 성격이 있다고 볼 측면이 분명히 있었다. 일단 박보검의 상대자 이름이 하필 ‘만리장성’이다. 만리장성은 중국인들이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유물이고 세계적으로 중국을 상징하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박보검이 꽃미남인데 반해 만리장성이라는 남성은 그렇지 않았다. 만리장성이 바둑과 춤 모든 면에서 박보검한테 밀려 쩔쩔매고, 촌스럽게 춤을 추다 여자한테 뺨까지 맞는다는 설정은 누가 봐도 중국을 조롱한 것이라고 해석될 수 있다. 당사자인 중국 사람들이 불쾌감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 대중문화 콘텐츠 속에서 중국이 우스꽝스럽게 묘사되는 것은 뿌리 깊은 관행이다. 버라이어티 예능에선 모두가 선망하는 미남미녀 캐릭터가 있고, 한편에선 주로 감초 역할을 맞는 우스꽝스러운 캐릭터가 있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버라이어티 예능 프로그램이 중국 현지 특집을 진행할 때, 감초 역할 캐릭터에게 ‘현지인’ 같다며 놀리는 것이 관습이었다. 중국에서 현지인 같다는 말을 들은 연예인들은 매우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에 뉴욕에서 현지인, 즉 뉴요커 같다는 말을 들은 연예인들은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무한도전》에선 정형돈이 중국인 같다는 놀림을 받았었다. 과거 한 케이블TV 프로그램에선, ‘지금은 멋진 2PM의 택연이 데뷔 초엔 촌스러운 스타일로 중국인 같다는 말을 들었다’고 방송하기도 했다. 《라디오스타》에선 슈퍼주니어의 다양한 멤버 중 코믹 캐릭터를 맡고 있는 신동을 콕 찍어 중국인 같다며 ‘왕서방’이라는 CG처리까지 한 적도 있다. 얼마 전 중국에서 송혜교를 성적으로 묘사한 조악한 그림이 문제가 됐는데, 알고 보니 그 그림을 그린 사람은 한국인이었다. 그런데도 한 종편 뉴스에선 패널이 “저런 조악한 그림은 딱 중국인이 그릴 것 같다”는 식으로 방송하기도 했다. 

박보검 광고에서의 중국인 묘사도 이런 우리 방송계의 관행 속에서 이뤄진 측면이 있어 보인다. 물론 처음 기획단계에선 《응답하라 1988》에서의 바둑 대국을 패러디하자는 취지였겠지만, 박보검 상대자를 코믹 캐릭터로 정하고 그 이름을 만리장성으로 한 건 너무나 무신경한 처사였다. 설사 광고기획사에서 그런 제작안을 제시했어도 박보검 측에서 이의를 제기했어야 한다는 지적을 낳고 있다. 이런 사안도 거르지 못한다면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한류스타로서 자질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정작 생트집을 잡은 건 중국이 아닌 우리 

중국인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묘사하는가에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우격다짐 식으로 중국을 긍정적으로 묘사하라는 압력을 가하기도 한다. 우리도 비슷하다. 과거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했던 베라가 독일에서 한국을 폄하한 책을 냈다는 보도가 나오자, 책을 읽어보지도 않고 사람들은 덮어놓고 베라를 공격했었다. 우리는 외국인이 한국을 어떻게 보는가에 항상 촉각을 곤두세우고, 그들에게 한국을 과시하는 것에 몰두한다. 중국이나 한국이나 자존심이 너무 강해서 그렇다. 자존심이 강한 건 자존감이 약하기 때문이다. 자존감이 약한 사람은 타인의 시선에 예민하고, 폄하에 쉽게 분노한다. 한국은 최근 들어 자존감이 조금 커진 반면, 중국은 아직도 미약하기 때문에 타인에게 굉장히 예민하다.

게다가 중국 내엔 한류를 때리기 위해 기회만 노리는 사람들이 많다. 반발심 때문이다. 거기에 사드 배치 문제가 한국에 대한 반감에 기름을 끼얹었다. 당국에서 불쾌해할 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의 반한 감정도 커지는 추세다. 중국 시장에서 영업하려면 이러한 중국의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이럴 때 빌미를 줘선 안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박보검 광고는 빌미 중에서도 초대형 ‘떡밥’이었다는 지적이다. 환구시보는 그 떡밥을 십분 이용해 반한정서를 선동했다는 것이다.

중국 관영 매체가 박보검 광고를 놓고 여론조사를 한 것은 분명 선동이지만, 그걸 전한 우리 매체도 못지않았다. ‘중국이 생트집을 잡으며 박보검을 한류 때리기의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식의 보도는 우리의 민족감정을 자극하는 선동이었다. 그 광고가 일정 부분 중국을 모욕한 성격이 있었기 때문에 정작 생트집을 잡은 건 우리였지만, 선동은 이성을 마비시킨다. 사람들은 정말로 중국이 생트집을 잡는다고 생각하며 중국을 성토했다. 이런 구도로 가면 양국 간에 증오심만 쌓일 뿐이다.

중국에서 중국 모욕 얘기가 나오면 역지사지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는 그래서 나온다. 해외에서 한국을 그렇게 묘사할 때 우리는 과연 기분이 좋겠는지, 이런 관점에서 상대 마음을 공감해야 한다는 것이다. 애국심만 앞세운 감정적 대응은 최악이다. 이번 박보검 광고 논란은 애국 선동적 보도와 그에 대한 감정적 대응까지, 최악을 보여주는 표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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