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세’인가 ‘전기요금’인가
  • 남인숙 작가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8.19 21:15
  • 호수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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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가전제품을 하나 사려고 검색을 하다가 한 포털사이트 글목록에서 필자가 찾는 물건에 대한 질문글을 발견하게 되었다. 제목이 ‘○○제품 전기세 많이 나오나요?’였다. 마침 답변도 한 건 달려 있기에 반갑게 클릭을 했다. 그런데 거기 들어 있는 답글의 내용이 다음과 같았다. ‘전기세는 틀린 말입니다. 전기를 쓰는 만큼 돈을 내는 것이니 세금이 아닙니다. 따라서 전기세가 아닌 전기요금이라는 말이 맞습니다. ○○제품의 전기요금은 제가 써보지 않아서 모르겠네요.’

이 글을 읽자마자 실망한 필자의 입에서 흘러나온 혼잣말은 최근 한바탕 온 나라를 휩쓴 영화 출처의 유행어였다. “뭣이 중헌지도 모르고!”

그러나 유례없는 더위에 죄책감을 얹어 에어컨을 돌려야 했던 오늘, 필자는 문득 그 눈치 없는 답변자의 말이 떠오르면서 생각이 깊어졌다. 쓸모없는 잔소리라는 건 차치하고라도 최소한 그 설명이 맞기나 한 것일까. 

필자는 초여름에 불과했던 지난달, 전기요금고지서를 보고 눈이 튀어나올 뻔했다. 더위를 그리 타지 않아 냉방한 기억이 별로 없는데도 그랬다. 이번 달에는 그보다 곱절은 더웠던 한여름을 나기 위해 에어컨을 간간이 돌린 대가로 얼마나 충격적인 고지서를 받아야 할까 간담이 서늘해질 지경이다. 이쯤 되면 다시 생각해 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전기를 쓰는 대가로 내는 돈이 정말로 ‘세금’이 아닌 ‘요금’인지 말이다. 


사용량에 따라 11배까지도 더 나올 수 있는 누진제 덕에 여름에 가정에서 에어컨을 좀 쓰게 되면 요금폭탄을 맞기 십상이다. 누진제가 적용되지 않은, 쓴 만큼만 전기료를 내기란 요즘의 보통 가정에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냉장고·밥솥·TV·공기정화기·세탁기처럼 지속적으로 전기를 소비하는 가전제품이 일반화되어 있는 데다 에어컨 자체의 전기소모량이 커서 그렇다. 누진제가 처음 생겼을 때처럼 부잣집에만 가전제품이 있던 시대가 아니라는 말이다.

몇 년 전부터 누진제에 대한 성토가 들끓고 있지만 결정권자들이 내세운 그렇고 그런 이유들로 매번 묵살되어 왔다. 저소득층을 위해서, 그리고 에너지 부족 국가의 경제상황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이다. 사실 이 이유만으로도 이미 ‘전기요금’이라는 명칭은 실격이다. 저소득층을 위하고, 국가경제를 위한다는 것은 어느 모로나 ‘세금’의 명분이지 ‘사용료’의 근거는 아니다. 
다 이해하고 세금으로서 OECD 국가 중 1등으로 비싼 전기요금을 기꺼이 내겠다고 마음을 바꿔도 찜찜한 기분은 마찬가지다. 필자의 아둔한 머리로는 이 ‘세금’을 누구를 위해 어디에 바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직접 목격한 바로는 누진제로 가장 고통받는 건 찜통더위에도 에어컨 스위치에 차마 손을 대지 못하는 저소득층이고, 국가경제 위기 운운하기에는 가정전기 사용량 비중이 전체의 13%로 미미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여름에 비명을 지르는 이들은 그래도 살 만한 사람들일 수 있다. 이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저소득층이 전기사용료로 정말 고통받는 건 난방 조건이 열악한 집에서 전기장판이나 전기온열기로 추위를 견뎌야 하는 겨울이다. 그때에는 쾌적함이 아니라 생명에 관한 문제가 되는데도 비명소리는 오히려 작아진다. 

요금이 아니라 세금이어도 좋다. 적어도 세금의 명분이라도 충족시킬 수 있다면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의 누진제는 어찌 되든 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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