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저격수’로 나선 오바마
  • 김원식 국제문제 칼럼니스트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8.22 11:24
  • 호수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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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군만마 얻은 힐러리의 고민, ‘오바마 천장’도 넘어서야

“4년 더! 4년 더! (Four more years!)” 7월27일 밤,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린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농구 경기장인 ‘웰스파고센터’에 모인 민주당 지지자들이 오바마 대통령의 화려한 연설에 화답하면서 외친 말이다. 오바마는 이날 “민주주의는 방관자의 경기가 아니다. 미국은 ‘그래, 그는 할 것이다(Yes, he will)’가 아니라 ‘그래, 우리는 할 수 있다(Yes, we can)’”고 강조했다. 바로 2008년 자신이 처음 미국 대선에 출마했을 당시의 구호인 ‘그래, 우리는 할 수 있다! (Yes, we can!)’를 상기시킨 것이다. 오바마는 이날 “미국은 이미 위대하고 강하다”며 “우리의 힘과 우리의 위대함은 도널드 트럼프에 좌우되지 않는다고 여러분께 약속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Make America Great Again)’는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의 슬로건에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트럼프 저격수’로 나섰다. 하지만 힐러리 클린턴에게는 오바마도 넘어야 할 산이다.


오바마 지지율 54%, 집권 2기 최고점

 

집권 2기의 임기를 얼마 남기지 않은 오바마의 인기는 오히려 식을 줄 모르고 급상승하고 있다. 그가 55세 생일을 맞은 8월4일, 미 CNN방송이 조사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오바마 지지율은 54%에 달해 집권 2기를 시작한 이래 다시 최고점을 찍었다. 전임자인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임기 말기에 30%대의 지지율을 보인 것과 비교하면 천양지차(天壤之差)다. 8년 전에 돌풍을 일으키며 오바마를 대통령으로 만든 ‘결집표’가 변함없이 그를 지지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오바마가 전당대회에서 힐러리를 미국을 더욱 위대하게 만들 대통령 적임자로 치켜세우며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지만, “차라리 오바마가 4년을 더하게 하자”는 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상황이 이렇게 되다 보니 오바마는 직접 트럼프를 때리는 ‘저격수’로 나섰다. 오바마는 전당대회에서도 트럼프에 대해 “진정한 해결책 없이 슬로건과 공포만 내세운다”고 날을 세웠다. 또 “지난 70년간 노동자 계층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보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갑자기 여러분의 대변자가 되고 목소리가 될 수 있느냐”며 트럼프를 싸잡아 공격했다. 이어 “이번 선거에서 냉소와 공포를 거부하고 힐러리를 다음 대통령으로 선출하는 나의 노력에 동참해 달라”고 힐러리 구원투수 역할을 확고히 했다. 

 

미 언론들은 오바마의 이러한 연설에 대해 “트럼프를 아마추어 거짓말쟁이로 묘사하면서 힐러리에게 더욱 힘을 실어줬다”고 평가했다. 영국의 일간 가디언은 한술 더 떠 “환호하는 군중 앞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인들에게 그가 왜 한 세대에 나올까 말까 한 인물인지를 상기시켰다”고 극찬했다. 임기 말에도 높은 지지율을 견지하고 있는 오바마가 트럼프 공격의 최전선에 나서면서 힐러리는 천군만마(千軍萬馬)를 얻었다는 것이다. 

 

미국 정치인 중 최고의 달변가이기도 한 오바마 대통령이 정권 재창출을 위해 자당 후보인 힐러리를 적극 지원하면서 힐러리가 다소 유리한 국면을 맞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힐러리가 단지 오바마의 인기만 믿고 안심하기에는 상황이 그리 녹록지 않다. 오히려 오바마에게 ‘4년 더’를 외치는 민주당 지지자들의 함성은 역설적으로 그만큼 힐러리의 존재감이나 차별성이 약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오바마가 트럼프 때리기에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지만, 결국 이번 대선은 힐러리와 트럼프의 싸움이라는 것이다.

 

힐러리의 한계는 명확하다. 최초의 여성 대통령 후보로 “유리 천장을 깼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그 자신도 깨질 수 있는 ‘기득권의 상징’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8년 전 ‘신선함’을 바탕으로 등장한 오바마 대통령과는 비교가 될 수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올해 미국 대선에서 여러 막말에도 불구하고 대선후보 선출로 이어진 공화당의 ‘트럼프 돌풍’이나 힐러리를 턱밑까지 추격한 민주당의 ‘샌더스 돌풍’을 가능하게 한 것은 미국민들의 기득권 정치에 대한 강력한 타파 요구였다. 이런 면에서 퍼스트레이디와 상원의원, 그리고 오바마 행정부 시절 국무장관으로 승승장구해 온 힐러리는 그 자신도 일종의 변화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기득권 정치인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여기에 국무장관 재임 시절 개인 사설 메일을 사용했다는 이른바 ‘이메일 스캔들’이 겹치면서 힐러리에 대한 비호감도는 트럼프와 거의 막상막하를 달리는 지경까지 이른 상황이다. 이번 미국 대선이 그나마 ‘차선(次善)’을 뽑는 것이 아니라 ‘차악(次惡)’을 뽑는 것이라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소위 ‘도긴개긴’이 되고 있는 이런 상황에서 ‘오바마의 지원’과 ‘트럼프의 자충수’에만 기대어 힐러리가 선거운동을 이어나간다면 근본적인 한계에 봉착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현실이다. 현실적으로 오바마가 필요하지만 그럴수록 자신의 차별성은 약화되고 오히려 기득권의 상징만 더 강화될 뿐이라는 힐러리의 한계가 그대로 노출되는 셈이다. 

 

 

힐러리, ‘자기 목소리’ 낼 수 있을까

 

경쟁자인 공화당의 트럼프는 이 점을 이용하려 한다. 연일 ‘힐러리는 사기꾼’이라면서 힐러리의 이러한 한계에 맹공을 퍼붓고 있다. 하지만 현재 미국 대선에서 일반적으로 전당대회 이후 지지율 상승의 덕을 톡톡히 본다는 이른바 ‘컨벤션 효과(Convention Effect)’에서도 트럼프는 맥을 못 추고 있다. 공화당 전당대회 이후 한때 지지율에서 힐러리를 앞서기도 했으나, 그의 거듭된 막말로 오히려 빛을 본 민주당의 전당대회 효과로 힐러리는 트럼프를 더욱 앞서 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아직도 미 대선 투표일(11월 8일)은 두 달 이상을 남겨두고 있다. 자중지란(自中之亂)에 빠지고 있는 트럼프이지만, 충분히 반격할 시간이 많이 남아 있는 셈이다. 이 반격을 막아내야 할 당사자도 오바마 현 대통령이 아니라 바로 힐러리 후보다.

 

오바마의 지지율과 인기가 상승하는 것이 반드시 힐러리에게 유리한 것도 아니다. 2000년 대선에서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앨 고어는 당시 민주당 대통령인 빌 클린턴의 지지율이 현재 오바마보다도 높은 57%에 달했지만 결국 패배했다. ‘여성 한계’라는 유리 천장을 깬 힐러리가 이제는 ‘오바마’라는 천장을 넘어서서 ‘트럼프’라는 최종 천장을 깨고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등극할 수 있을지에 더욱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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