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조선일보 ‘용쟁호투(龍爭虎鬪)’ 점입가경
  • 유지만 기자 (redpill@sisapress.com)
  • 승인 2016.09.05 10:18
  • 호수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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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수사에 따라 향후 다시 혈전 벌어질 듯

청와대와 조선일보 간의 갈등이 잠시 가라앉았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조선일보의 의혹 보도로 시작된 이 갈등은,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이 대우조선해양으로부터 고액 접대를 받았다는 의혹까지 불거지는 데에 이르렀다. 곧 전면전을 치를 것처럼 팽팽했던 양측의 분위기는 검찰수사 착수와 함께 일단 잠잠해졌다. 양측이 서로 한 차례씩 공방을 주고받는 일합(一合)을 겨룬 상태에서 다음 상황을 앞두고 있다.

 

언론계와 정계, 법조계 안팎에선 현 상황에 대해 검찰수사 방향에 따라 분위기는 언제라도 달라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검찰에서 꾸린 특별수사팀이 압수수색을 펼친 날에도 “검찰이 우 수석 의혹을 봐주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며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또 겉으로 드러난 의혹의 배후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수 싸움도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우 수석 관련 의혹과 관련된 청와대와 조선일보의 갈등은 초반에 조선일보 우세였다. 조선일보는 7월18일자 1면을 통해 ‘진경준 검사장, 우 수석, 김정주 넥슨 회장 간의 커넥션’을 최초 보도하면서 확실히 기선을 제압했다. 조선일보 보도가 나온 이후 대다수 매체가 우 수석 관련 의혹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의무경찰로 복무 중인 우 수석 아들의 ‘꽃보직 특혜’ 의혹과 우 수석 처가 관련 의혹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언론에선 연일 우 수석의 사퇴를 요구했다. 당시만 해도 우 수석의 사퇴는 시간문제인 것처럼 보였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 청와대제공·연합뉴스


‘특감 기밀 누출 의혹’으로 청와대 ‘되치기’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우 수석을 재신임하면서 우 수석이 ‘버티기’에 들어갔다. 박 대통령은 8월16일 개각을 단행하면서도 우 수석의 거취에는 변화를 주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이날, 수세에 몰렸던 청와대가 ‘공세’로 전환하는 계기가 마련된다. 바로 ‘특별감찰 기밀 누설 의혹’이다. 이날 MBC는 우 수석 의혹을 조사하던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특정 언론사 기자에게 조사 내용을 누설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당시 어느 언론사였는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조선일보 기자였을 것이라는 추측이 지배적이었다. 

 

이때부터 청와대와 조선일보의 ‘난타전’이 시작됐다. 조선일보는 8월17일 우 수석 처가가 경기도 화성 땅을 차명으로 소유했다는 의혹 기사를 보도했다. 다음 날인 8월18일에는 이 특별감찰관이 우 수석 의혹에 대해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청와대도 가만있지 않았다.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은 8월19일 “특감 기밀의 외부 유출은 중대한 위법이자 국기(國基)를 흔드는 일”이라고 비난했다. 결국 검찰은 특별감찰관의 기밀 누출 의혹과 우 수석 의혹을 모두 수사하게 됐다.

 

‘결정적 한 방’은 국회에서 나왔다.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8월26일 “박수환 뉴스커뮤니케이션 대표의 로비 의혹(박수환 게이트)에 유력 언론인이 포함돼 있다”고 폭로했다. 당시 검찰은 홍보대행사인 뉴스커뮤니케이션의 박수환 대표를 최근 구속해 집중적으로 수사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김 의원은 이후 8월29일 기자회견에서 “유력 언론인은 송희영 조선일보 주필”이라고 실명을 밝히며 “송 주필이 대우조선해양으로부터 막대한 향응을 제공받았다”고 폭로했다. 이어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연합뉴스를 통해 “송 전 주필이 남상태 전 대우조선해양 사장의 연임 로비를 했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향응과 관련된 증거들을 조목조목 내세우며 송 주필이 ‘부정’에 연루됐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첫 의혹 제기 당시 “결백하다”고 주장했던 송 주필은 끝내 자리에서 물러났다. 조선일보는 8월31일자 1면에 ‘독자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를 게재하고 “송 전 주필은 2011년 대우조선해양 초청 해외 출장 과정에서 부적절한 처신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조선일보를 대표하는 언론인의 일탈 행위로 인해 독자 여러분께 실망감을 안겨 드린 데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라고 전했다. 

 

송 전 주필이 사직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가장 주목을 끈 것은 김 의원이 내놓은 ‘정보의 출처’였다. 검찰수사 자료에서나 나올 수 있는 증거를 내밀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정보의 근원지가 검찰이나 청와대 민정수석실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정치권 일각에서도 “청와대가 김진태의 입을 빌려 조선일보를 쳤다”는 해석이 나왔다. 김 의원은 이에 대해 “(정보 출처가) 청와대, 검경, 국정원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밝힌다”며 일단 선을 그었다.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 © 시사저널 자료·연합뉴스


‘청와대-조선일보’ 다음 수는?

 

김 의원이 의혹을 제기하기까지 ‘배후’가 있을 것이란 관측은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저렇게 잘 정리되고 정확한 자료가 어떻게 김 의원에게 전달될 수 있었겠나. 이해 당사자 중 누군가가 준 것이라고밖에는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조선일보의 첫 보도 당시에도 정보 출처에 대한 추측이 무성했다. 지금도 그동안 나온 의혹들의 정보 출처를 두고 우 수석 제공설, 조선일보 내부 암투설 등이 다양하게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제기된 의혹의 사실 여부를 떠나, 현 상황 자체가 두 거인의 ‘권력다툼’으로 비치고 있는 탓이다. 

 

공방을 주고받은 현재 이해득실을 따져보면 조선일보의 손해가 조금 더 많다는 계산이 나온다. 한 조선일보 관계자는 “조선일보의 주필은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자리다. 경영진의 절대적 신뢰를 받아야 주필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 인사가 물러났다는 점에서 조선일보의 손해가 더 많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해득실을 따져 앞으로 취할 전략 수립에 들어갔다는 얘기도 나온다. 

 

현재 검찰수사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인지 청와대와 조선일보는 더 이상 상대를 자극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벌써부터 다음 상황에 대한 예상들이 쏟아지고 있다. 한 새누리당 의원은 “이 싸움은 내년 대선까지 갈 것이다. 그때 조선일보와 청와대의 관계가 어떻게 정리되느냐에 따라 싸움의 판이 또다시 달라질 수 있다. 그에 대한 고민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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