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 영국총리는 ‘난세의 영웅’ 될까
  • 권석하 영국 통신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9.06 10:55
  • 호수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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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 이후 어수선한 영국 국민, 메이 총리 지도력에 기대감

‘세상 사람의 반이 여자’라는 말이 통하지 않던 영역이 있다면 바로 정치다. 그런데 이것도 세계 각국에서 여성 정치지도자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정치인들의 반이 여성이 될지 모르는 세상이 오고 있다. 대표적인 여성 정치인으로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꼽히는데, 이제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마저 힐러리 클린턴이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영국 역시 ‘여풍(女風)’이 거세다. 지난 6월24일 새벽,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묻는 국민투표에 따른 후폭풍으로 마거릿 대처 이후 다시 여성 총리 테리사 메이가 등장했으니 말이다. 메이 총리는 영국 집권당인 보수당 지도자 선출 투표 과정에서 1차 투표 격인 소속 하원의원 투표에서 60.5%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일반 당원 투표까지 가지도 않고 당선돼 총선을 거치지 않고 총리로 취임했다. 영국은 내각책임제를 채택하고 있어 하원의석의 과반수를 차지하는 집권당 지도자가 당연직으로 총리가 된다. 그래서 영국 언론은 메이를 ‘영국 정치 역사상 가장 의외의 과정을 통해 취임한 가장 준비된 총리’라고 평한다.

 

사실 메이 총리는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 후임으로 거론되는 인물 중 다섯 손가락 안에도 들지 못했다. 하지만 메이 총리는 정치인으로서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지난 124년 동안 내무장관을 역임했던 인물 중 최장기간인 6년 동안 장관직을 수행했을 뿐만 아니라, 1997년 하원의원이 된 이후 지난 19년간 여성으로는 보수당 최초의 의장을 비롯해 각종 직책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사실 메이 총리가 맡았던 내무부 장관이란 자리는 영국 행정부의 제일 중요한 네 자리(외무·재무·내무·법무) 중 하나로 꼽히지만 그렇다고 핵심 요직이라고 보지 않는 시선이 많다. 내무부는 실적이 확실하게 숫자로 드러나는 재무부처럼 생색이 나는 부서는 아니다. 오히려 자질구레하고 짜증나는 일이 많은 부서다. 전임자들이 모두 고생하다 마무리마저 좋지 않았던 자리가 바로 내무부 장관 자리였다. 그래서 영국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내무부를 일컬어 ‘정치인의 무덤(political graveyard)’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메이는 결코 빛나지 않는 부서에서 6년간 살아남았다. 그렇게 성공한 내무부 장관이라고 평가받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크게 지탄받을 정도로 실패한 것도 아니다. 그래서 메이 총리의 성공을 인내와 노력과 신념의 결과라고 한다. 

 

7월13일 영국 신임 충리인 테리사 메이가 직원들의 박수를 받으며 집무실에 들어서고 있다. © AP 연합


단점마저 우호적으로 평가하는 언론

 

메이 총리를 영국 언론이 더욱 주목하는 이유는 그가 ‘대기만성형’ 정치인이라는 점이다. 그는 토니 블레어나 데이비드 캐머런과는 달리 40대에 정치를 시작했다. 영국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이라는 시의원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하원의원이 된 지 19년 만에 총리가 됐다. 결국 영국 정치를 밑바닥부터 배우고 올라와 산전수전 다 겪은 셈이다. 

 

이런 메이 총리의 정치적 배경은 ‘브렉시트’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아 어수선한 영국이란 배를 끌고 갈 선장으로 주저 없이 그를 꼽는 데 일조했다. 그에 대한 영국 언론의 평가는 이 같은 단어로 정리할 수 있다. ‘일 중독’ ‘완벽주의자’ ‘강철 여인’ ‘정도를 벗어나는 일이 없다’ 등이다. 이런 언론 평가가 이어지면서 영국인들 사이에서는 메이 총리가 ‘믿고 맡길 수 있는(a pair of safe hands)’ 인물이라는 여론이 형성돼 있다. 

 

심지어 부정적 평가마저 오히려 그에 대한 호감을 늘리는 데 한몫하고 있다. 그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보자. ‘하이힐을 포함한 다소 튀는 복장과는 달리 개성이 없고, 인간적인 따뜻함이 없다’ ‘모든 것을 정치적이고 업무적인 면으로만 본다. 누구와도 인간적인 관계를 맺지 않고 어떤 클럽에도 회원이 아니고, 특별한 측근이 없고 의회의 바(bar)에서 동료의원과 잡담도 하지 않고, 어떤 가십성 대화에도 끼지 않는다’. 다소 소극적이고 재미없는 사람이라는 이 같은 언론 평가를 영국인들은 오히려 ‘냉철하고 위기에 흔들리지 않을 사람’이란 이미지로 해석해 받아들이고 있다. 때문에 영국인들은 한 치 앞을 보기 힘든 위기의 순간에도 인간적이지는 않으나 바위 같은 지도력을 발휘해 자신들을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구해 줄 ‘슈퍼맨’으로 메이를 바라보고 있다. 

 

 

메이, 보수당 내 가장 진보적 정치인

 

메이에 대해 영국인들은 영국 정치 역사상 가장 ‘진보적’ 보수당 지도자가 되리라고 이미 예상은 했지만 그보다 훨씬 더 과격하게 개혁을 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와 기대를 동시에 하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메이는 흡사 길거리 정치 집회에서나 들을 수 있을 법한 “만연하는 불공정과의 투쟁(fight against burning injustice)”이라는 문구를 첫 취임 연설에서 사용했다. 뿐만 아니라 같은 연설에서 “우리는 큰 결정을 할 때 기득권층을 생각하지 않고 국민 당신들을 생각하겠다. 우리가 새 법을 제정할 때는 권력층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당신들의 말을 먼저 듣겠다. 우리가 조세를 할 때는 가진 자들의 이익이 아닌 당신들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겠다”고 말했다. 흡사 노동당 소속 총리 연설에서나 들을 수 있는 단어가 그의 입에서 나왔다. 이 연설을 듣던 보수당 원로들을 긴장케 했다. 사실 이런 발언은 이미 예고돼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메이 총리는 초선 의원이던 2002년 전당대회에서 자신이 소속된 정당을 “그늘진 곳의 사람들에 대한 동정심이 전혀 없는 악독한 당(nasty party)”이라고 비판했다. 그의 이 발언은 자신의 정치적 생명마저 위협할 수 있는 과격한 발언이었지만, 지금까지 메이를 따라다니고 있는 유명한 발언이다. 

 

메이는 취임 첫 주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55%를 얻어 23%밖에 못 얻은 제러미 코빈 노동당 지도자를 두 배가 넘는 차로 제쳤다. 취임 첫날 메이 총리는 마이클 고브 법무장관을 해임했다. 고브 장관은 캐머런 후임 총리 1순위였던 보리스 존슨 당시 런던시장을 제치고 자신이 입후보를 해서 결국 존슨을 낙마시킨 인물이다. 고브 장관이 존슨을 제친 것에 대해 영국 언론은 ‘배반’이란 표현까지 썼는데, 메이 총리는 고브 장관을 단 1분의 면담으로 해임하면서 충성심이 무엇인지를 정치권에 보여줬다. 그리고는 ‘브렉시트’를 찬성했던 주요 정치인 3인방을 브렉시트를 담당할 외무, 브렉시트, 국제통상 장관으로 각각 임명했다. ‘너희가 저지른 일이니 너희가 치우라(You broke it, you fix it)’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이것을 ‘신의 한 수’로 평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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