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는 명예박사 학위도 뇌물이다”
  • 류여해 수원대 법학과 겸임교수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9.06 11:36
  • 호수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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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렴지수 높은 세계 10개국 ‘김영란법’ 실행 실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은 국민에게 ‘김영란법’ 혹은 ‘부패방지법’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9월28일 시행을 앞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이 핵심 논란거리다.

 

필자는 8월19일 모 국회의원실 주최로 열린 ‘김영란법 제대로 만들기 토론회’에 참석했다. 막상 책상 앞에서 혼자 고민할 때와는 다른 여러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꽃 가게를 운영하는 한 자영업자는 “화환이 10년 전에도 10만원이었는데 지금도 10만원”이라며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더 어려워진다”고 울상을 지었다. 한 식당 주인도 “3만원이면 삼겹살 1인분에 소주 한 병이면 끝나는 가격인데 어떻게 3만원으로 정한 것이냐. 더 올려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식당에서 우리가 과연 3만원 이상 식사를 그렇게 자주 할 일이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자. 평소 점심은 5000원에서 1만원 사이다. 그런데 이 법대로 적용하면 3만원 이상 접대를 받으면 안 된다. 자기 돈 내고 먹으면 3만원이 아니라 10만원짜리 식사를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김영란법이 규정하고자 하는 것은 접대 즉 청탁이 오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3만원을 넘지 말라는 것이다. 식당업자의 주장대로라면 정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접대를 하고 접대를 받고 있었다. 그들이 있기에 경제가 돌아가고 있었다는 논리가 된다.

 

우리나라처럼 화환을 많이 주고받는 나라도 별로 없을 것이다. 행사에 사용하고 나면 거의 쓰레기 수준인데도, 보여주기 위해 일렬로 진열해 놓은 것을 보면 아깝다는 생각도 든다. 10만원도 과하다. 행사 한 번에 수많은 화환을 보내는 것은 허례허식일 수 있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는 부정부패 관련법을 어떻게 시행하고 있을까. 

 

 

핀란드

‘김영란법’ 필요 없을 만큼 청렴

 

© 일러스트 권오환


과거 핀란드 국회를 방문했을 때가 떠오른다. 책상 하나 있을 만한 작은 방들이 오밀조밀하게 붙어 있는데 유리가 통유리라 훤하게 안이 들여다보였다. 사생활이라고는 전혀 없어 보이는 그 건물이 바로 핀란드 국회의원들의 의원회관이었다. 핀란드는 공직자의 투명성을 가장 으뜸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 의미로 의원실조차도 투명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물론 핀란드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과세 내역을 인터넷에 공개하고 벌금조차도 일수벌금제(日收罰金制), 즉 자신의 하루 수입에 비례해 부과받는다. 핀란드 의원들은 보좌관도 없으며 활동비 사용 내역을 인터넷과 언론에 모두 공개한다. 세비(歲費)는 월 986유로(120만원) 정도를 받는다. 하지만 회기 중 지각이나 결석을 하면 그만큼 세비를 깎고 여러 번 되풀이할 경우 의원직을 상실한다.

 

식사 대접이나 선물 또는 청탁은 꿈도 못 꾸고 부정청탁방지법 같은 법은 필요가 없다. 존재할 이유가 없을 만큼 청렴하다. 물론 유럽연합(EU) 법에 따라 국회의원이 뇌물을 받으면 형사 처벌하는 법이 존재하기는 한다. 하지만 이 법을 만들 때조차도 의원들은 “뇌물을 받지도 않는 우리가 왜 이 법이 필요하냐”면서 의구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핀란드는 공직비리에 대해서도 엄격하다. 공직 업무 관계자와의 식사, 공직자에 대한 명예박사 학위 수여도 뇌물로 간주할 정도다.

 

 

미국

뇌물 받으면 15년 이하 징역형

© 일러스트 권오환


미국은 로비스트를 합법화하고 있지만 합법적인 방식이 아닌 은밀히 이뤄지는 부정청탁·금품수수에 대해선 어느 나라보다 엄격하게 규제한다. 이미 1962년 ‘뇌물, 부당이득 및 이해충돌 방지법’을 만들었다. 이 법에 따라 미국의 공직자는 공무수행 과정에서 대가성 금품을 수령하면 15년 이하 징역 또는 25만 달러의 벌금형을 받게 된다. 또는 뇌물액의 3배 이상에 달하는 벌금형에 처해지거나 벌금형과 징역형을 모두 받게 된다. 다만 20달러 이하, 1년 합계 50달러(약 5만원) 미만의 선물이나 예금증서 등의 수수는 예외로 인정된다. 또한 미국 연방법은 행정부 공무원이나 피고용자, 국책은행 직원 등이 자신 또는 자신의 배우자, 파트너, 자신이 몸담고 있는 기관이나 단체의 경제적 이해관계와 관련되는 사안에 관여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독일

연방 장관 선물값 3만원 이하

 

독일은 1997년부터 부패단속법(Gesetz zur Bekampfung der Korruption)을 시행하고 있는데 대상도 광범위하다. 연방정부와 주정부, 공공기관을 비롯해 재단·주식회사 등 민간단체까지 포함된다. 부패단속법을 통해 대가 여부와 상관없이 직무수행과 관련해 금품 등을 수수할 경우 ‘이익 수수죄’로 규정, 엄격히 처벌하고 있다. 독일 연방정부는 25유로(약 3만원) 이내에서 각 기관별로 선물 금액 기준을 정하고 있다. 예를 들면 연방 내무부는 25유로, 연방 법무부는 5유로 이하만 허용된다. 대가성 뇌물을 받았을 경우 6개월 이상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벌금에 처해진다. 대가성이 없더라도 직무수행과 관련한 금품수수를 이익 수수죄로 규정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벌금이 부과된다. 독일도 일수벌금제이기 때문에 우리나라보다 벌금형이 높다.

 

 

영국

뇌물수수법 위반 무제한 벌금

 

영국의 뇌물수수법은 2011년 7월1일부터 시행됐다. 10여 년이 넘게 초안을 만들고 공청회를 거친 뒤 통과된 이 법에선 영국에서 사업을 하는 기업이 직원·중개인·자회사 또는 해외 지사를 통해 자국 또는 외국 공무원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행위를 모두 금지하고 있다. 기업 간에 뇌물을 주고받는 행위도 금지된다. 런던 소속 공무원은 25파운드(약 3만7000원) 이상의 선물과 접대에 대해 관리자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선물·접대를 거절하거나 반납한 경우에도 신고는 필수다. 영국 외무부 공무원은 30파운드 이상의 선물과 접대가 금지된다. 법을 위반한 개인과 법인에겐 10년 이하의 징역과 무제한의 벌금이 부과된다. 아울러 범죄수익법에 따라 재산 몰수가 가능하고, 회사 이사 자격 박탈법에 따라 이사 자격 박탈까지 당할 수 있다. 

 


싱가포르

리콴유 총리의 ‘反부패 전쟁’

 

1940~50년대 부정부패가 어느 나라보다 심각했던 싱가포르는 리콴유(李光耀) 총리가 “부패 방지는 선택이 아니라 국가 생존의 문제다. 반부패 정책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굴복시켜야 한다”며 1960년 부패방지법을 개정했다. 부패방지법으로 설립된 부패사정기관 탐오조사국(貪汚調査局·CPIB)은 싱가포르 역사상 가장 강력하게 부정부패를 적발·처벌했다. 공무원이 뇌물을 받을 의도가 있었거나 조금의 의심이 가는 행동을 해도 범죄로 보고 기소했다. 뇌물수수자에 대해선 형벌과 별도로 뇌물 전액을 반환하고 반환능력이 없을 경우 액수에 따른 징역을 추가로 부과한다. 물론 싱가포르는 내부고발자에 대한 보호도 잘돼 있다.

 

1987년 리콴유 총리의 친구 치엥완(鄭章沅) 국가개발부 장관이 뇌물수수 혐의로 탐오조사국에 적발됐을 때, 총리는 수사에 개입하지 않았다. 치엥완이 자살하자 미망인은 총리에게 부검을 피하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총리가 자연사 이외에는 부검을 하는 것이 법적 의무라며 부탁을 거절한 일화는 유명하다.

 

 

홍콩 

내부고발자 신분 바꿔서 보호

 

1970년대까지 홍콩 역시 부패로 어지러웠다. 홍콩 당국은 강력한 부패조사기관을 발족했다. 1974년 염정공서법, 뇌물방지법, 선거부정 및 불법행위방지법 등 이른바 부패방지 삼륜법의 뒷받침으로 염정공서(廉政公署·ICAC)를 탄생시킨 것이다. 특히 공무원이 자신의 재산 형성 과정을 입증하지 못하면 증식된 재산은 뇌물로 간주해 재산을 몰수하고 처벌하며, 재산증식 과정을 설명하지 못한 한 경찰공무원은 17억원을 반납하고 2년형을 선고받았다. 같은 혐의로 7년형을 선고받은 검사는 형 집행 후 국외로 추방당했다. 홍콩은 내부고발자 혹은 부패행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 사람들이 요청하거나 그들을 보호할 필요가 있을 때는 완전히 새로운 신분을 만들어서 보호하도록 했다.

 

 

일본

5000엔 선물·식사 보고해야

 

일본은 과장급 이상 공직자가 5000엔(5만5000원)이 넘는 선물이나 식사 대접을 받는 경우 기관장에게 받은 금액과 날짜, 제공한 사람의 이름, 직책, 주소 등을 상세히 보고해야 한다. 

 

© 일러스트 권오환


덴마크 국회의원의 청렴도는 이미 정평이 나 있다. 국회의원을 위한 의전차량이 없으며 의원을 위한 주차장도 없다. 의원들은 대부분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한다. 덴마크 대법원 판사 라스 아너슨은 “덴마크에서는 정치인들의 뇌물수수 및 청탁 사건이 없다. 단 한 건이라도 예를 들 수 있는 사건이 생각나지 않는다”고 말했을 정도다. 

 

스웨덴은 250년 전에 이미 최초로 정보 공개를 법제화했다. 투명한 행정 공개만큼 공직 비리에 그 어떤 나라보다 엄격하다. 뇌물을 주기로 약속한 이메일·전화통화 등 증거만 있으면 범죄로 기소하며 대상이 공무원일 경우 처벌 수위는 더 높아진다. 모나 살린 전 부총리는 공공카드로 생필품 34만원어치를 사고 자기 돈으로 카드대금을 메웠으나 정보공개 과정에서 이 사실이 드러나 부총리직에서 물러났다.

 

뉴질랜드는 2008년 태국인 불법 체류자에게 불법비자를 발급해 주고 돈 대신 집수리 등을 시킨 국회의원 타이토 필립 필드에게 뇌물수수 혐의로 징역 6년을 선고하기도 했다. 

 

물론 이 같은 외국 사례를 우리나라에 바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독일만 해도 크리스마스에 사과 3개를 예쁘게 포장해서 선생님에게 주는 것도 과한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크고 좋은 사과가 가득 담긴 한 상자를 선물해도 과일박스가 작지 않은가를 고민하는 우리 정서로 보면 납득이 안갈 수도 있다. 

 

독일에서 박사과정을 다니고 있을 때 지도교수에게 5유로(6300원)짜리 양초를 들고 갔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그냥 넘어가기가 뭔가 미안해 정말 작은 선물을 들고 갔던 것이다. 그런데 지도교수는 아주 따끔하게 필자를 혼냈다. “학생은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지. 이런 걸 들고 다니면 서로 맘이 다른 곳에 간다. 특히 받은 나도, 준 너도 서로 떳떳하지 못하다. 절대 이러지 말거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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