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산업 불 밝히는 ‘등대’들이 꺼져간다
  • 원태영 시사저널e.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9.06 14:49
  • 호수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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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적 근무시간에 저임금·고용불안까지…3重苦에 시달리는 게임업계 노동자들

한 중소 게임개발사에 근무하는 김영민씨(가명·29)는 거의 매일 야근을 하고 있다. 업무는 보통 오후 10시가 넘어서야 마무리된다. 업데이트 일정이라도 있는 날에는 새벽 1시가 넘어 택시를 타고 집에 가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김씨는 “게임이 좋아서 이쪽 업계에 뛰어들었지만, 고된 업무로 인해 정작 게임할 시간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내 게임업계의 근로시간은 가히 살인적이다. 게임업계에서 야근은 일상이다. 대형 게임업체 사옥에는 대부분 수면실과 샤워실이 마련돼 있다. 일부 업체들은 직원들에게 컵라면과 커피를 무제한으로 제공하기도 한다. 직원 복지 차원에서 보자면 좋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만큼 야근이 많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게임업계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대부분 추가근로 수당도 없이 야근에 시달리고 있다. © 시사저널 자료


“‘직원을 갈아 게임을 만든다’고 할 정도”

 

게임업체에 근무하는 개발자들은 회사 규모와 상관없이 대부분 고된 업무에 시달린다. 게임의 경우, 실시간으로 유저들과 피드백을 주고받아야 하기에 문제가 생기면 즉각적인 수정이 필요하다. 특히 대규모 업데이트 일정이라도 잡히면, 개발자들은 집에 가는 것을 아예 포기하고 회사에서 숙식을 해결하기도 한다. 게임업체가 밀집해 있는 구로와 판교에는 ‘등대’라 불리는 업체들이 있다. 자정을 넘긴 시간에도 퇴근하지 못한 사람들이 남아 사무실 불을 밝히면서 주변을 환하게 비춘다는 자조(自嘲) 섞인 별명이다. 

 

현재 한국의 법정 근로시간은 주당 40시간이다. 이외에 주중 12시간, 주말 16시간을 추가로 일할 수 있다. 그러나 법정 근로시간을 지키는 게임업체는 많지 않다. 주당 100시간을 훌쩍 넘기는 경우도 비일비재한 상황이다. 이렇다 보니 건강에 적신호가 오는 경우도 많다. 익명을 요구한 한 개발자는 “개발업무를 1~2년 하다 보면 몸이 망가지는 것을 느낀다”며 “실제로 퇴직하는 개발자들 중에는 자기 몸에 이상을 느껴 그만두는 이들이 상당수에 달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개발자들의 처우는 어떨까. 일부 대형 게임업체들을 제외하곤 초임연봉이 2000만원 중후반대를 넘기기 어렵다. 이마저도 대다수 업체들이 포괄임금제를 적용해 야근 수당을 따로 받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포괄임금제란 일정 범위 내의 추가근로 시간을 추가근로 여부와 관계없이 연봉에 포함시켜 계약하는 것을 말한다. 포괄임금제 역시 기존 계약을 넘어선 추가근로에 대해서는 수당을 지급하도록 돼 있지만, 이를 지키는 업체는 많지 않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일부 개발자들의 경우, 전체 근로시간을 다 계산해 보면 법정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비개발직군 근무 환경은 더 열악해

 

게임업계에는 현재 노조가 전무하다. 개발자들의 열악한 상황을 대변해 줄 만한 곳이 없는 셈이다. 그나마 2013년 개발자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만든 ‘게임개발자연대’가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김환민 게임개발자연대 사무국장은 “그동안 정치권이나 정부가 게임을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바라봤을 뿐, 그 안에 존재하는 열악한 업무환경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며 “국내 게임업계의 성공신화 뒤에는 수많은 개발자들의 희생이 있었다”고 말했다. 김 사무국장은 “현재 업계에서는 ‘직원을 갈아 게임을 만든다’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개발자를 혹사시키고 있다”고 강조했다.

 

개발자들의 경우, 고용 안정성도 상당히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로 프로젝트 팀 단위로 개발이 진행되기 때문에 중간에 프로젝트가 중단되면 회사를 떠나야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최근엔 게임시장이 PC온라인게임에서 모바일게임 위주로 재편되면서 개발 기간이 점차 짧아지고 있다. 김 사무국장은 “과거 온라인게임의 경우, 3~4년 정도 개발 기간이 있어서 어느 정도 고용이 보장됐지만, 모바일게임의 경우 짧게는 한두 달 만에 프로젝트가 중단돼 회사를 떠나야 하는 상황도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문용 녹색소비자연대 ICT소비자정책연구원 정책국장은 “게임 개발자들은 오래전부터 저임금과 격무에 시달려 왔다”며 “최근엔 중국 업체로의 인력유출이 심각한 상황이다. 업계 스스로 이를 깨닫고 개선안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인력유출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고 밝혔다.

 

 

경기도 성남시 판교에 위치한 게임회사. 늦은 시간까지 사무실 불이 켜져 있다. © 황의범 제공

경기도 성남시 판교에 위치한 게임회사. 늦은 시간까지 사무실 불이 켜져 있다. © 황의범 제공

 

이런 사정은 게임업체에 근무하는 비(非)개발직군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국내 게임업체에서 게임운영 업무를 맡고 있는 김민정씨(가명·26)는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시즌만 되면 야근할 생각에 눈앞이 캄캄해진다”고 말했다. 게임업계의 성수기라고 할 수 있는 방학 시즌에 유저들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게임에 대한 불만사항 및 개선사항 문의가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김씨는 “방학기간 중 대규모 업데이트가 잡힌 기간에는 열흘 동안 새벽 1시가 넘어서야 겨우 퇴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홍보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이아무개씨도 “새로운 게임이 출시되면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며 “게임업계의 경우, 1인 미디어도 상당수 포진해 있기에 일일이 대응하기도 쉽지 않다”고 밝혔다.

 

또 비개발직군의 경우, 몇몇 업체들을 제외하곤 개발직군에 비해 낮은 대우와 보수를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이러한 현상은 운영직군에서 두드러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아직까지 운영업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곳은 많지 않다”며 “임금체계 역시 개발직군에 비해 턱없이 낮아 전문적으로 인력을 키우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정부와 정치권이 게임업계에 좀 더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고 있다. 특히 경제적인 부분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존재하고 있는 열악한 개발 환경 등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김환민 사무국장은 “게임업계 종사자들의 여건이 개선되기 위해선 먼저 대형 업체들을 중심으로 노조가 결성돼야 한다”며 “노조를 중심으로 부당한 업무 환경을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법적 근로시간이 정해져 있지만 이를 준수하지 않는 업체가 많은 만큼, 관리·감독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 중”이라며 “정부와 정치권도 여기에 동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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