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경제인 / 경제권력 지도, 이재용 등 ‘재계 3세’로 이동 중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6.09.08 15:08
  • 호수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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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아버지 제치고 ‘영향력 있는 경제인’ 첫 1위 등극… 정의선·이부진도 10위권 진입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인은 누구일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10명 중 9명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꼽았을 것이다. 시사저널이 매년 실시하는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의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인(경제 관료 포함)’ 조사 결과도 다르지 않았다. 시사저널은 해마다 10개 분야 전문가 1000명을 대상으로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설문조사를 벌였다. 경제인의 영향력을 묻는 조사에서 항상 이건희 회장이 1위를 차지했다. 2000년 이후부터 지난 16년간 한 번도 1위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2013년에는 지목률이 90%를 넘어서기도 했다. ‘이건희=경제 대통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2014년 5월 이 회장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지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해가 갈수록 이 회장의 지목률이 하락했다. 2014년 75.8%에서 지난해 41.9%로 30%포인트 이상 떨어졌다. 대신 후계자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그 자리를 메웠다. 이 부회장은 2014년 처음으로 10위권에 진입했다. 40대 이하 재벌 3·4세 중에서 10위권에 오른 인사는 이 부회장이 유일했다. 당시 지목률은 11.5%로 4위를 차지했다. 

 

 

‘임기 없는 경제 대통령=이건희’ 공식 깨져 

 

지난해 이재용 부회장의 지목률은 41.6%로, 아버지 이건희 회장(41.9%)에게 근소하게 뒤진 2위를 차지했다. 올해 조사에서는 처음으로 순위가 역전됐다. ‘임기가 없는 경제 대통령’으로 꼽혔던 이건희 회장을 제치고 이재용 부회장이 처음으로 1위를 차지했다. 전문가 1000명 중에서 600명(3명 복수 응답 포함)이 이 부회장을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인으로 꼽았다. 이 회장의 경우 전체의 21.6%를 차지해 2위로 밀려났고,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20.3%로 3위를 차지했다. 삼성그룹이 실질적으로 이재용 체제에 접어들었음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삼성그룹은 최근 2년간 많은 변화를 겪었다. 이재용 부회장이 대주주인 삼성SDS와 에버랜드(제일모직)가 상장에 성공했다. 이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다시 합병하면서 통합 삼성물산이 탄생했다. 현재 시장에서는 지배구조와 관련해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추가로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3세 승계 구도는 상당 부분 마무리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2007년까지 이 부회장이 보유한 비상장사의 지분 가치는 4000억원을 밑돌았다. 에버랜드와 삼성SDS의 지분 평가액은 각각 2789억원과 867억원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10년여 만에 이 부회장의 지분 가치는 20배 가까이 상승한 것이다. 이 부회장의 주식재산은 8월18일 기준으로 6조8935억원에 이르고 있다. 두 여동생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의 지분까지 합하면 평가액은 10조원에 육박했다. 이 돈을 기반으로 이 부회장은 이 회장이 보유한 삼성전자(3.38%)와 삼성생명(20.76%) 지분을 승계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그룹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이 부회장은 현재 삼성물산과 삼성SDS의 최대주주지만, 주력 기업인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의 지분은 거의 갖고 있지 않다”며 “어떤 식으로든 이 회장이 보유한 삼성생명과 삼성전자 지분을 넘겨받아야 승계 구도를 완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그룹은 지배구조 재편과 함께 비주력 계열사들도 대거 매각했다. 2014년 화학과 방위산업 부문을 한화그룹에 매각했고, 이듬해에는 삼성정밀화학 등 석유화학 사업까지 롯데그룹에 팔았다. 전자와 금융을 양대 축으로 건설과 중공업, 서비스 등으로 그룹을 단순화한 것이다. 최근에는 그룹의 상징이었던 삼성생명 태평로 사옥마저 부영그룹에 매각했다. 당장 필요가 없다면 계열사뿐 아니라 사옥과 전용기까지 모두 처분했다. 

 

그 배경에는 차기 총수인 이 부회장의 ‘실용주의’가 작용하고 있다. 일례로 이건희 회장의 경우 해외 출장을 갈 때 수행 인원이 적지 않았다. 이 회장의 입맛을 모르기 때문에 현지 주재원들이 식당을 5개씩 예약하곤 했다. 귀국할 때도 마찬가지다. 공항은 이 회장을 의전하는 삼성그룹 임원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이 부회장은 반대였다. 해외 출장을 갈 때도 최소한의 수행원을 대동했다. 가방도 직접 들고 다녔다. 급하지 않으면 전용기 대신 국적기를 선호했다. 이 부회장의 이런 실용주의 성향이 기업 경영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일각에서는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일례로 한화그룹에 매각된 삼성의 방산 부문 계열사 실적이 최근 크게 개선됐다. 한화 계열사 12곳의 올 상반기 영업이익은 1조4691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33.8% 증가한 수치였다. 한화토탈(옛 삼성토탈)과 한화테크윈(옛 삼성테크윈)의 영업이익 증가율은 각각 169.4%와 96.6%에 이르렀다. 삼성그룹 주변에서는 이 부회장이 지나치게 실용을 강조하면서 자칫 삼성 본연의 경쟁력마저 잃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삼성 사정에 정통한 인사들의 말은 달랐다. 전직 삼성그룹 임원은 “이건희 회장도 1990년대 중반 비상경영을 선포하면서 삼성전자의 부천 반도체 사업장뿐 아니라, 삼성중공업의 발전설비 및 지게차 사업부 등도 해외에 매각했다”고 말했다. 1994년 반도체 호황이 끝나면서 삼성전자의 실적이 급속히 악화됐기 때문이다. 1995년 16조1000억원이던 삼성전자의 매출은 이듬해 15조8750억원으로 감소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4조2820억원에서 1조4470억원으로 3분의 1 토막이 났다. 이 회장은 경영 전 분야에 걸쳐 3년 동안 원가와 경비 30% 절감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주요 계열사나 사업부문을 매각했다. 1998년에는 계열사별로 대규모 명예퇴직을 실시하면서 3만 명 이상 인력을 감축하기도 했다.  

 

 


실용주의 앞세워 삼성그룹 체질변화 지휘

 

최근의 삼성그룹 상황 역시 당시와 다르지 않다. 전자나 화학 등 주력사업이 신흥국의 도전을 받으면서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 무엇보다 삼성전자에 대한 그룹 매출 의존도가 심화되고 있다. 14개 삼성그룹 전체 상장사들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6조9710억원을 기록했다. 삼성전자를 제외한 나머지 13개 상장사의 영업이익은 2592억원에 불과했다. 나머지 6조6758억원을 삼성전자 혼자 벌어들인 셈이 된다. 삼성전자의 이익은 대부분 스마트폰에 편중돼 있다. 스마트폰 사업이 흔들릴 경우 삼성전자, 더 나아가서는 삼성그룹 전체가 위기를 맞을 수 있는 것이다. 이 부회장 입장에서는 스마트폰 위주의 사업 구조를 극복하고 삼성전자의 지속 성장을 이끌어내야 한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삼성 본연의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함이라고 삼성그룹 인사들은 설명한다.  

 

그동안의 성적 또한 나쁘지 않았다. 올해 2분기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8조1400억원을 기록했다. 9분기 만에 영업이익 8조원대를 회복했다. IM부문의 실적 증가가 큰 역할을 했다. IM부문의 영업이익은 2년 만에 4조원대를 회복했다. 덕분에 애플과의 영업이익률 격차는 한 자릿수로 좁혀졌고, 삼성전자 주가는 한때 사상 처음으로 170만원대에 육박하기도 했다. 

 

하지만 잘나가던 삼성전자가 최근 위기를 맞았다. 새로 출시한 스마트폰 ‘갤럭시노트7’(갤노트7)의 배터리 화재가 잇따랐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8월말 원인 조사에 착수했고, 갤노트7 전량을 신제품으로 교환하겠다고 발표했다. 논란이 된 배터리만 교체할 것이라는 시장 예상을 뒤엎은 것이다. 단기적으로 스마트폰 사업부에서 이익 감소가 불가피하게 됐다. 한국투자증권은 보고서를 통해 “리콜을 위한 신제품 제조나 관련 비용이 1조1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갤노트7 판매 부진으로 인한 이익 감소분까지 합하면 3분기 삼성전자 IM부문의 영업이익은 3조8000억원에서 2조6000억원으로 1조2000억원 정도 감소할 것으로 이 증권사는 전망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기업의 이미지나 신뢰 훼손을 막았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박강호 대신증권 연구원은 “갤노트7의 전량 리콜로 삼성전자 주가는 단기적으로 조정이 불가피하다”면서도 “2017년에도 장기적인 상승 추세는 유효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평가했다. 과거에도 이건희 회장은 ‘신경영’을 선포하면서 불량 제품을 ‘암 덩어리’에 비유했다. 현장에서 불량이 발생하면 해당 생산라인을 즉시 중단시켰다. 시중에 깔려 있던 무선전화기 15만 대를 수거해 화형식을 하기도 했다. 이 회장의 ‘신경영’은 삼성의 역사를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선진국에서 3류 취급을 받던 삼성 제품들이 세계 1등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소니나 히타치 등 일본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삼성 제품이 정상에 올랐다. 이 부회장의 이번 조치 역시 ‘품질 경영’을 중시했던 이 회장의 전철을 그대로 밟았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의견도 나오고 있다. 

 

 


정몽구·최태원·유일호·이주열, 3~6위

 

올해 조사에서 또 한 가지 눈에 띄는 결과가 있다. 40대 이하 재벌 3·4세 중에서 지난해까지 10위권에 오른 인사는 이재용 부회장이 유일했다. 하지만 올해는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추가로 10위권에 진입했다. 정 부회장의 지목률은 4.5%다. 아버지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20.3%)을 비롯해 최태원 SK그룹 회장(8.6%),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6.5%),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4.7%)에 이어 7위를 기록했다. 이부진 사장의 지목률은 2.5%로, 구본무 LG그룹 회장(3.5%), 최경환 전 부총리(2.6%)에 이어 10위를 기록했다. 10위권에 들지는 못했지만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도 12위(2.0%)를 기록했다. 이런 조사 결과를 감안할 때 재계의 세대교체가 멀지 않았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하지만 비슷한 나이대의 벤처기업가들의 경우 10위권에 진입한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과 김상헌 네이버 대표,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등이 각각 11위(2.4%)와 13위(1.9%), 공동 14위(1.7%)에 올라 체면치레를 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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