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한비야의 조언, “하고 싶은 일 망설여질 때, 눈 딱 감고 한 발짝만 앞으로 더”
  • 조유빈 기자 (you@sisapress.com)
  • 승인 2016.09.08 15:42
  • 호수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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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구호 전문가 한비야 세계시민학교 교장 “현장-연구-정책 3박자 갖추고 싶다”

등산을 할 때 선두에 서서 눈길을 만들며 전진하는 것을 ‘러셀’이라고 한다. 눈길 밑에는 무엇이 있는지 모른다. 허리까지 쌓인 눈을 헤치고 나가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뒤에 오는 사람들이 만들어진 길을 따라 걸어올 수 있다. 자신을 만든 것 중 하나가 ‘산’이라는 한비야 세계시민학교 교장은 이 ‘러셀’의 과정을 통해 국제 구호의 길을 열었다고 했다. 

 

눈앞에 펼쳐지는 긴급한 상황에 자극을 받아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세계시민으로서 당연히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을 심어주기 위해 세계시민학교를 만들었다. 학기 중에는 이화여대 초빙교수로 국제 구호와 세계시민학교의 필요성에 대해 강의하고, 방학 중에는 해외 현장에서 국제구호전문가로 일한다. 가장 영향력 있는 NGO 지도자 1위에 선정된 한비야 세계시민학교 교장을 9월6일 이화여대 국제교육관 연구실에서 만났다. 

 

 

한비야 세계시민학교 교장 © 뉴스뱅크이미지


가장 영향력 있는 NGO 지도자로 선정된 소감은.

 

국제구호전문가가 아닌 세계시민학교 교장으로 1위가 됐다. 교육을 통해 세계시민들이 서로를 도와줘야 하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만든 것이 세계시민학교다. 이 의미를 인정받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정말 기쁘고 어깨가 무겁다.

 

 

최근에도 구호활동을 다녀왔다고 들었다.

 

얼마 전까지 시리아 난민촌에 있었다. NGO들은 시리아 난민들이 3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처음 시리아 난민들은 국경 근처에 있었다. 전쟁이 금방 끝날 거라 생각해 돌아가기 쉬운 국경 쪽에 있었던 것이다. 이제 난민들이 국경을 떠나 위쪽으로 올라왔다. 난민들이 늘어나면서 집세도 비싸졌고 일자리도 없다. 처음 시리아 난민들이 넘어왔을 때 터키 정부는 이들을 형제·손님이라며 극진히 대했다. 그러나 터키도 이제 더 이상 이들을 돌볼 여력이 없고, 난민들에게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 작년에 얘기되던 평화협정도 모두 깨졌다. 

 

 

그곳에서 어떤 일을 했나.

 

우리는 우선적으로 도와야 할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선정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이 필요한지 파악한다. 우리가 돕고자 하는 700가구 중 105가구를 직접 방문했다. 그중 온 가족이 모두 무사한 가구는 단 한 가구도 없었다. 고향에 두고 온 아들도 있고, 같이 터키로 오다가 실종된 딸도 있었다. 목숨을 잃은 사람들도 많다. 조사를 하긴 해야 하는데 그 자리에 없는 가족 이야기를 꺼내면 사람들이 멍해진다. 온 지 1년밖에 안 된 아이들에게 고향의 어떤 점이 그립냐고 물었더니 눈이 빨개지면서 울더라. 그럼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같이 운다. 얼마나 자기 고향이 그리웠겠나. “친구가 그립다”고 말하는데, 친구들이 살아있느냐는 말이 목까지 나왔다. 차마 물을 수 없었다. 작가로서는 이 현실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궁금함을 가질 수 있지만, 구호전문가로서는 아니다. 작가라는 모자를 벗어던지고 구호전문가로 그들과 함께 있었다.

 

 

구호에 대해 사람들이 보통 갖는 인식이 있다. 식량 지원이 대표적인 것 아닌가.

 

보통 물·식량·보건의료·피난처·보호가 기본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 굶어죽는 사람은 없다. 집세가 200리라, 수도세가 600리라인데, 돈을 낼 수가 없어 집세가 밀리거나 물이 끊기는 상황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건 현금(Cash)이다. 식량을 주면 시장에 나와서 그 식량을 헐값에 팔고 그걸로 집세나 수도세를 낸다. 쌀이 없다면 쌀을 줘야 하고, 돈이 없다면 돈을 줘야 한다. 우리가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큰 실수다. 일각에서는 난민들에게 돈을 주면 도박을 한다, 술을 마신다고 주장하지만 난민들은 노숙자나 의지박약을 지닌 사람들이 아니다. 어제까지 멀쩡하게 살던 사람들이 난을 피해 온 것뿐이다. 우리는 그 사람들을 그렇게 평가할 권한이 없다. 필요한 것을 물어보고 그것을 주는 것이 구호전문가들의 역할이다.

 

 

세계시민학교에 대해 설명한다면.

 

2005년 파키스탄 대지진 긴급구호 이후 TV 모금 방송에서 매달리듯 도움을 호소했다. 순식간에 많은 돈이 모였지만, 하룻밤 사이에 마음이 바뀐 사람들이 많았다. 아예 후원 의사를 철회하기도 했다. 혹시 내가 방송으로 사람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고, 사람들이 그 반응으로 동정을 베푼 것이 아닌가 싶었다. 지도 밖 사람까지 내 이웃으로 생각하는 세계시민 의식을 높이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만든 것이 세계시민학교다. 우리 학교에서는 지구를 ‘지구집’이라고 부른다. 70억 인구는 한 가족이고, 서로를 돕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금 교장을 5년째 맡고 있지만, 평생 할 생각은 없다. 앞으로 딱 5년만 더 할 거다.

 

 

운영과 교육은 어떻게 이뤄지나.

 

세계시민학교는 교실이 없다. 교복·시험·수업료도 없다. 나이 제한이나 재학 기간 제한도 없다. 교사들이 직접 학생들을 찾아가 수업을 한다. 2007년 ‘지도 밖 행군단’이라는 청소년 프로그램으로 50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것에서 시작해 2014년 한 해 650명의 강사들이 ‘찾아가는 수업’을 했고, 지금까지 누적된 학생 수는 100만 명이 넘는다. 지속가능한 교육을 위해 재원을 마련할 다양한 경로를 궁리 중이다. 2009년 출간한 《그건, 사랑이었네》 책의 인세 중 1억원을 세계시민학교에 기부해 교재를 개발하고 보급하는 데 썼다. 독자들에게 받은 ‘독자 장학금’이나 다름없다. 

 

 

구호와 개발의 연계점에 관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고 들었다. 

 

시리아 난민촌에서 돌아오고 싶지 않았다. 현장에 가면 이 사람들에게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보이고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들을 돕고, 그 상황을 전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눈앞의 사람들을 돕는 데 그칠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좋은 연구를 하고 정책을 만들어 실행하게 되면 그것은 지속가능한 구호활동이 된다. 옷가지와 담요를 제공해 추운 겨울을 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살 수 있는 온도를 연구해 난민촌에 난방을 하게 하는 정책을 실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현장-학계의 연구-정책 만들기에 이르는 3박자를 갖추고 싶다. 외교부와 코이카(KOICA·한국국제협력단) 자문위원 등을 지내며 정책 제안의 경험은 있지만, 연구자로서의 도전은 전혀 다른 근육을 쓰는 첫 도전이다. 박사 과정에서 해야 할 필수 과목 중 하나가 통계학이더라. 숫자에 약한데, 통계학 첫 수업을 받고 하늘이 깜깜했다. 그러나 이것도 넘어야 할 산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다. 하고 싶어서 오르지만 힘이 든다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등산과 같다. 현장과 학계를 연결하는 사람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될 수 있어서 다행이고, 행운이다.

 

젊은이들에게 멘토로 많이 꼽힌다.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결정 조건은 ‘이걸 내가 재밌게 할 수 있는가’ ‘열심히 할 수 있는가’ ‘끝까지 할 수 있는가’다. 나는 오랫동안 세계여행을 가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여행을 떠났고, 아프가니스탄 난민촌의 한 아이가 내민 조그마한 빵을 먹고 어려운 이들을 구하는 데 청춘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내 전공은 국제홍보학이다. 전공을 단순히 돈 버는 데 쓸 수도 있지만, 나는 살 수 있는 사람과 살릴 수 있는 사람을 연결하는 일을 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결정은 자기가 한다. 다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망설이는 사람이 있다면 ‘눈 딱 감고 한 발짝만 앞으로 더’라고 얘기하고 싶다. 그 일이 하고 싶어서 준비했던 과정들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마지막 순간 너무 가벼운 이유로 그만두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오래 생각했다면 그것은 하고 싶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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