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고교 야구 ‘선수 보호’ 부러운 이유
  • 김남우 MLB 칼럼리스트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9.08 16:07
  • 호수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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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청소년 야구도 투구수 제한 절실하다

지난 7월 미국 고교체육연맹(National Federation of State High school Association)은 2017년부터 모든 고등학교 투수들의 투구수를 제한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미국의 50개 주는 각 주에 맞는 투구수 제한 규정을 만들어 내년부터 적용해야 한다. 투구수를 제한하는 목적은 어린 투수들의 혹사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내년부터 전면적으로 투구수를 제한하는데 이미 미국의 고교 야구는 주마다 여러 제한 규정들을 적용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는 1주일에 10이닝을 넘길 수 없고 등판 횟수도 3회로 제한돼 있다. 플로라다주는 1주일 14이닝, 이틀간 10이닝, 한 경기 10이닝을 넘길 수 없다. 미네소타주는 3일간 14이닝으로 제한하는 등 대부분 주에서 투구 이닝을 제한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이닝으로 제한하는 규정은 투수들의 휴식일을 충분히 보장하지 못하며, 제한 이닝을 넘기지만 않으면 몇 개의 공을 던지든 상관없기 때문에 혹사 우려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이런 허점을 없애기 위해 내년부터 전면적으로 투구수를 제한하는 것이다.

 

김광현 선수 ⓒ 연합뉴스


美, 어린 투수 관리 가이드라인 제시

 

미국의 고교 야구는 어느 정도 어린 선수들을 보호하기 위한 환경이 갖춰져 있다. 우선 정규 이닝이 7이닝까지다. 정규 시즌은 대부분 2월 중순부터 5월 중순까지 진행되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학교도 6월 초순이면 시즌이 마무리된다. 약 20경기에서 많게는 30경기를 진행한다. 이후 여름리그와 가을리그 등이 있지만 이는 원하는 선수들만 클럽에 소속돼 참가하는 리그다. 무엇보다 추운 겨울에는 야구를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고교 야구와 비교하면 미국의 고교 야구는 이미 혹사를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내년부터 적용하게 될 투구수 제한 규정을 각 주에서 발표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주는 100~120구 사이에서 제한 투구수를 정할 것으로 보이며, 약 70~80구 이상 투구 시 3일 이상의 휴식일을 보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연투의 경우 25~35구 미만의 투구를 했을 때만 가능하다. 미국 고교 야구에서 어린 투수들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하는 가장 큰 이유는 최근 어린 선수들의 수술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5년간 토미 존 수술을 받은 선수의 48.5%가 만 22세 이하 선수들이다. 이 가운데 39.1%에 달하는 선수가 프로에 데뷔하기 전에 수술을 받았다. 토미 존 수술의 권위자인 제임스 앤드루스 박사는 “젊은 선수들의 과도한 토미 존 수술은 아마추어 시절부터 비롯된 것이다”고 말한다. 어린 선수들의 혹사를 방지하기 위해 메이저리그와 미국야구협회에서도 대책을 제시하고 있다.

메이저리그와 미국야구협회는 제임스 앤드루스 박사가 설립한 미국스포츠의학연구소에 자문을 구해 2014년에 피치스마트라는 단체를 설립했다. 피치스마트에서는 어린 투수들을 관리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이 가이드라인은 만 7세부터 시작해 만 22세까지 각 연령별로 권장 투구수와 권장 휴식일 등을 제시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여러 방안들을 제시한다.

 

고교 선수들에게는 95~105구를 경기당 최대 투구수로 제시하고 있으며, 76구 이상을 던지면 4일 휴식을 권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1년에 100이닝을 넘기지 말 것, 1년에 4개월 이상은 쉬어야 하며 그중 2~3개월은 아예 공을 던지지 말 것, 포수를 겸하지 말 것, 피로의 징후를 항상 체크할 것 등 다양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미국 고교 야구의 규칙이 피치스마트의 가이드라인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미국야구협회를 포함한 20개 기관 및 리그에서 피치스마트의 가이드라인을 준수하고 있다.

 

정영일 선수 ⓒ 연합뉴스


日, 겨울 훈련 금지 휴식 보장

 

피치스마트는 국내에도 소개된 바 있다. 지난해 12월에 열린 KBO 윈터미팅에서 유소년 선수 보호와 육성 방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피치스마트 사례가 소개됐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에 도입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봄에 야구를 하기 위해 겨울 동안 몸을 만들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 대부분의 학교는 겨울 훈련을 강행하고 있으며, 대학 입시가 걸려 있어 성과 위주의 선수 기용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우리나라 고교 야구에서 혹사 문제가 나온 것은 어제오늘 얘기는 아니다. 고교 시절 혹사의 대표적인 사례는 정영일(SK 와이번스)이다. 광주 진흥고 시절 이틀에 걸쳐 242개의 공을 던졌고 그의 맞상대였던 당시 안산공고의 김광현(SK 와이번스)은 이틀 동안 226개를 던졌다. 이후 고교 투수들의 혹사 논란은 계속 이어졌고 토너먼트 대회로 인해 발생하는 에이스 투수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2011년부터 고교 야구를 주말리그로 변경했다.

 

하지만 주말에만 경기를 하다 보니 에이스에 대한 의존도는 더 높아졌다. 매 경기에 에이스를 투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한 보완책으로 2014년에 투구수 제한을 내놓았다. 투수 1명의 제한 투구수를 130개로 정했으며 이를 초과할 경우에 3일의 휴식을 줘야 한다는 규정이다. 바꿔 말하면 여전히 투수들은 공을 몇 개를 던지든 상관없다는 얘기다. 제한 투구수는 정했지만 이 투구수는 던지면 안 되는 투구수가 아닌 단순히 휴식일을 주기 위한 투구수에 불과하다. 즉, 129개의 공을 던지면 이틀 연속 등판해도 괜찮다는 얘기가 된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만 경기가 열리니 토요일 129개를 던져도 일요일에는 130개가 넘는 공을 던질 수 있다.

 

투구수만 문제가 아니다. 겨울철 야구 또한 심각한 문제다. 일본도 우리나라처럼 심심찮게 고교 투수들의 혹사 논란이 나오는 곳이다. 하지만 일본은 한·미·일 고교 야구 중 유일하게 오프 시즌의 휴식을 명문화한 곳이기도 하다. 학교들의 겨울 훈련을 금지시켜 휴식을 보장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어린 선수들을 위한 보호 장치가 마련돼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지난겨울에만 6개의 대회가 열렸다. 겨울에 대회가 열린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미국과 일본에서는 혹사를 방지하려는 노력이 있는 반면에 우리나라는 이에 역행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스포츠의학연구소에서는 어린 투수들의 부상 위험 요소들을 발표했는데 우리나라 투수에 해당하는 사항이 상당히 많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경기당 80구 이상 투구 시 부상 위험 3.8배

2. 1년 중 8개월 이상 투구 시 부상 위험 5배

3. 피로한 상태로 투구 시 부상 위험 36배

4. 1년간 100이닝 이상 투구 시 부상 위험 3.5배

5. 포수를 겸할 경우 부상 위험 2.7배

6. 이틀 연속 투구 시 부상 위험 2.5배

7. 커브·슬라이더 위주 투구 부상 위험 1.6배

과연 우리나라 고교 투수 중에 위에 해당하지 않는 선수가 몇 명이나 될까? 이대로 가면 올해 가장 많은 공을 던진 고교생 1·2·3위는 우리나라에서 나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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