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바이러스 출현 가능성, ‘완전 제로’는 아니다
  • 김형자 과학 칼럼니스트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9.08 17:41
  • 호수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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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적으론 광견병과 인플루엔자 혼합으로 가능…“실제 가능성은 극히 희박”

한동안 좀비 영화가 잠잠한가 싶더니 최근 들어 다시 붐이 일고, 국내에서도 첫 좀비 영화 《부산행》이 등장했다. SF나 공포물에서 좀비는 단골 소재 중 하나였다. 좀비의 공격을 받으면 살아 있는 사람도 좀비가 되기 때문에 일종의 전염성 바이러스라고 설정한 것.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급속도로 퍼지는 정체불명의 유행병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사스·조류인플루엔자 등 신종 전염병이 많이 등장하면서 인류가 대비를 못하고 당할 것 같은 불안감이 좀비 영화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에서처럼 과연 바이러스가 좀비를 만들어내는 일이 실제 가능할까? 또 좀비 바이러스가 퍼져서 인류가 멸망 직전까지 갈 수 있을까?

 

 

대부분의 과학자 “좀비 바이러스는 없다”

 

좀비의 실제 가능성은 전 세계적으로 논란거리다. 조금 전만 해도 분명히 죽은 시체였으나, 어기적어기적 몸을 일으켜 세우고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며 걸어와 산 사람을 뜯어먹는 좀비. 좀비의 유일한 목적은 사람을 감염시키는 것이다. 감염자는 지능이 낮아지고 피부가 썩는 특징을 보인다. 술 취한 사람처럼 흐느적거리며 행동도 느리지만, 팔다리를 물어뜯는 등 매우 공격적인 성향을 가진다. 이렇게 공격을 받아 상처를 입으면 바로 감염된다. 좀비는 보통의 귀신과는 좀 다른, ‘영혼이 없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래서 부모형제도 못 알아보고 주변 사람들을 물어뜯어 먹으려고 한다. 비판의식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꼬집어 우리가 ‘좀비’라고 표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시체가 좀비로 변할 수 있다는 설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걸까.

 

전문가들의 설명은 간단하다. 인류는 시체에 대해 두려움과 경외감이라는 이중적인 감정을 갖도록 진화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시체를 그대로 두면 기생충이 들끓고 전염병이 돌아 주변 사람들이 위험해진다. 이런 시체를 두렵게 생각해 사는 곳으로부터 먼 곳에 파묻는 장례의식을 진화시켜 생존 능력을 높였다. 그러나 조금 전만 해도 살아 있던 자신의 부모·가족·친척에 대한 애정을 바로 끊고 시체를 내다 버릴 수는 없었다. 시체에 대해 갖게 되는 이런 혼란스러운 감정들이 시체에서 빠져나온 혼령이라는 존재를 낳았고, 좀비 또한 시체에 대한 이런 복합적인 감정에서 나온 ‘진화적 부산물’로 보인다. 

 

그렇다고 좀비가 실제로 존재할 수 있다고 보는 과학자는 드물다. 한 번 죽은 시체가 다시 일어난다는 설정은 말도 안 된다는 게 중론이다. 좀비 바이러스 또한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한다. 바이러스는 살아 있는 생물체에만 기생하기 때문에 이미 죽은 시체인 좀비에서는 서식이 불가능하다는 것. 또 지금까지 그렇게 빠르게 퍼지는 바이러스가 없었다는 것도 이유다. 좀비 바이러스의 경우, 감염자가 다른 사람을 물면 몇 분 안에 좀비가 된다. 이처럼 자기복제를 빨리 할 수 있는 바이러스는 현재 없다. 또 단시간 내에 신체 기능을 완전히 장악할 바이러스도 없다. 일단 바이러스가 체내에 침투하면 신체조직을 장악하고 자기복제를 하기 시작하고, 다시 몸 밖으로 나와 다음 사람에게 옮겨진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최소 2~3일이 걸리는데, 2~3일이라는 잠복기는 보건 당국이 바이러스를 통제할 수 있는 시간이다. 

 

좀비가 등장하는 영화 《부산행》의 한 장면 © new


실제 인간을 영혼 없는 좀비처럼 만든 사례도

 

반면 일부 과학자들은 시체가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신경계를 공격하는 바이러스가 뇌를 파괴하고 좀비처럼 무의식적으로 행동하게 하는 것은 상상해 볼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밝힌다. 실제로 뇌수술이나 약물을 이용해 인간을 영혼이 없는 좀비처럼 만들어 노벨상을 받은 사례도 있다. 1940년대 후반, 포르투갈의 신경외과의사인 안토니우 모니스는 2만 명의 환자에게 ‘전두엽 절제수술’을 해 1949년 노벨상을 받았다. 이 수술은 눈 밑으로 칼을 넣어 뇌의 전두엽 일부를 파괴하는 것인데, 우울증이나 정신분열증 같은 정신질환을 치료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수술받은 환자들이 병세는 나아졌지만, 자발성·창의성이 약화되고 인격까지 변하는 등 부작용이 너무 커 1960년대 이후 사라졌다. 고등한 정신 활동을 맡은 뇌의 전두엽이 망가지면 자아가 상실되며 좀비 같은 행동이 나올 수 있다. 

 

한편 미국의 마이애미대학 바이러스 학자 사미타 안드레안스키는 ‘좀비가 이론적으로 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전염성이 높은 변종 광견병을 통해 좀비 바이러스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 말 그대로 ‘미쳤다’로 표현되는 광견병 증상은 이성을 상실한 난폭함이다. 광견병에 걸린 동물이 상대를 가리지 않고 사납게 물어뜯는 건 광견병 바이러스가 신체의 신경조직을 통해 뇌신경조직에 도달한 뒤 대뇌의 변연계(邊緣系)를 감염시켜 망가뜨리면서 오작동한 결과다. 변연계는 감정을 조절하는 편도 같은 기관이 포함된 부분이다. 이런 성질의 광견병 바이러스와 다른 바이러스가 결합하면 좀비 바이러스가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왜 굳이 돌연변이를 거친 변종 광견병 바이러스라야 할까. 보통 광견병의 경우 전염성이 낮고 잠복기가 1~3개월로 매우 길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 안에 신체의 다양한 세포를 감염시켜야 다음 사람에게 빠른 속도로 전파될 수 있는데, 잠복기가 길면 좀비를 이길 방법이 생겨난다. 좀비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전에 치료약을 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잠복기가 없는 좀비 바이러스가 출현하면 인류는 단 4일 만에 멸망하게 될 것이라는 게 영국 옥스퍼드대학 수학과 토머스 울리 박사의 설명이다.

 

과학자들은 광견병 바이러스의 유전자가 자외선 손상이나 유전자 복제 과정에서의 실수로 돌연변이를 경험하면 잠복기가 극적으로 감소할 수 있다고 말한다. 만일 잠복기가 짧은 변종 광견병 바이러스가 출현한다면 그 유전물질을 추출해 독감이나 뇌염 바이러스와 같이 전염성이 높은 유전 물질과 섞어 좀비 바이러스를 만들어낼 수 있다. 안드레안스키 박사는 광견병 바이러스를 독감 바이러스와 결합시켜 공기 중으로 전염되게 하고, 홍역 바이러스와 합쳐 사람 성격을 바꾸게 하고, 뇌염 바이러스와 결합시켜 고열에 시달리게 하고, 에볼라 바이러스와 결합시켜 피를 흘리게 할 수 있는데, 이러한 반응들을 모두 합치면 좀비 바이러스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현대의 분자생물학은 유기체에서 유전 물질을 추출해 복제 생물을 만들어낼 수준까지 발전한 상태이므로 그 가능성 또한 높아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광견병과 독감, 뇌염과 같이 본질적으로 다른 계통의 바이러스들이 자연에서 간단히 혼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혼합 바이러스의 창조는 이론적으론 가능하지만 현재의 유전공학 기술로는 극히 어려워 이들 모두를 조합할 경우 죽은 바이러스를 얻을 가능성이 크다. 이것이 바로 좀비 바이러스의 한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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