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민나 도로보데스!
  • 박영철 편집국장 (everwin@sisapress.com)
  • 승인 2016.09.08 18:26
  • 호수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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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당 때 이런 말이 유행했습니다.

 

“민나 도로보데스(みんな泥棒です).”

‘모두가 도둑놈입니다’라는 뜻의 일본어입니다.

 

4·19 직후 첫 민선 서울시장에 당선된 김상돈씨가 취임식장에서 이 말을 해서 더 유명해졌습니다. 덕분에 서울시는 ‘복마전(伏魔殿)’이라는 이미지가 오랫동안 덧씌워졌습니다.

 

당시 신생 대한민국에서 서울시만 복마전이었겠습니까. 대한민국 전체가 그랬습니다. 이런 일본어가 유행한 것만 봐도 말입니다. 자유당 때 유행한 선거구호 ‘구관이 명관이다’는 말도 같은 맥락입니다.

 

해방 후 71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한국은 눈부신 발전을 이뤘습니다. 자유당 때나 5·16 직후와는 차원이 다른 나라가 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IMF 외환위기 이후의 한국은 또 다른 모습입니다. 성장동력이 약해졌고 빈부격차는 커지고 있습니다. 실의(失意)에 빠진 국민이 늘어나면서 대한민국이 ‘분노민국’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IMF 직후 김대중 정권이 출범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 전개된 우리 정치를 보니 별반 다를 바 없더군요. 권력형 비리 때문에 대통령의 아들이 잇달아 구속되더니 대통령의 형이 몇 년 간격으로 수의(囚衣)를 입었습니다. 결말이 어찌 날지 모르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여동생은 1억원대 사기 혐의로 고발당한 상태입니다.

 

정권만 바꾸면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죠. 우(右) 갖고는 안 되겠다 싶어 좌(左)로 바꿨는데 좌로 10년 해도 별수 없어서 다시 우로 바꿔서 10년을 향해 ‘고민항해’ 중인 게 작금의 대한민국호(號)입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습니다. 부정부패를 뿌리 뽑지 않고서는 앞으로 대한민국의 재도약은 결코 있을 수 없을 거라는 사실 말입니다. 이런 점에서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은 비관적입니다. 한 사회를 지키는 최후의 양대 보루가 언론과 사법부인데 이 둘이 꼴이 말이 아니라서 그렇습니다.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 ⓒ 시사저널 자료, 연합뉴스

8월26일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이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의 ‘박수환 게이트’ 연루 의혹을 익명으로 폭로한 데 이어 8월30일에는 유력 언론인이 ‘송희영 조선일보 주필’이라고 실명을 공개했습니다.

 

김수천 인천지법 부장판사는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로부터 억대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9월2일 검찰에 구속됐습니다. 8월초에는 법원행정처 소속 부장판사가 오피스텔에서 성매매를 하다 적발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정치인과 청와대·행정부 고위관료들의 부정부패는 하도 많이 봐서 별로 쇼킹하지 않습니다. 이들 집단의 비리는 언론과 사법부가 살아 있으면 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법부와 언론이 이들과 같은 행태를 보이면 일반 국민들은 어떡해야 하나요? 요즘 저는 기자가 된 것을 처음으로 후회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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